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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Apr 15. 2024

250년 전 아버지의 편지에서 찾은 인생 최고의 교훈

필립 체스터필드의 '아버지의 가르침'

18세기 영국의 정치인이자 문인인 체스터필드 백작.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소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다.


"아들아, 서두르되 허둥대지 마라."

"너의 결점을 칭찬하는 친구와 멀리하라."


"아들아, 화장실에 일 보는 시간도 허투루 쓰지 마라. 책이라도 읽어라." 


만약 지금 시대에 부모가 서른이 넘은 아들에게 이런 식으로 잔소리를 한다면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최근 화제가 된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교육관을 들여다보면, 체스터필드 백작의 가르침이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손웅정 감독은 "자식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부모로서 직무 유기"라고 말한다. 자식이 잘못된 습관을 형성했을 때, 주위의 친구는 지적할 수는 있어도 끝까지 고치라고 말해줄 수 있는 건 부모뿐이라는 것이다. 연간 200~300권의 책을 읽는 손웅정 감독이라면 분명 체스터필드의 '아버지의 가르침'도 읽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18세기 영국과 현대 사회는 신분 구조, 성 역할, 사회 변동의 속도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체스터필드의 편지'가 담고 있는 교훈과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도중에 책의 앞날개에 적힌 저자에 대한 소개를 여러 차례 확인해야 했다. 250년 전이 아니라 25년 전이라고 말해도 충분히 믿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폭넓은 교양과 예의범절을 강조한 체스터필드의 가르침은 현대 사회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 때와 장소에 맞는 예의 있는 행동은 시대를 불문하고 원만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체스터필드는 특히 상대방의 단점이나 약점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을 경계하면서, 친밀한 관계일수록 상대의 부족한 면을 포용하고 보듬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속성을 고려한 조언이라 할 수 있다.


예의범절은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지역과 시대, 문화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도 해당 지역의 예의범절과 관습을 익히고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예의범절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원활한 소통과 관계 형성을 위한 문화적 기반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의 연구 결과는 사회적 기술, 감성 지능, 공감 능력, 배려심 등이 개인의 성공과 조직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에서도 심리적 안정감, 배려, 존중 등이 팀워크와 생산성의 핵심 요소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교양과 예의범절이 실질적인 역량임을 방증한다.



한편, 체스터필드는 시간 관리와 자기 절제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그는 짧은 시간이라도 알차게 활용할 것을 강조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독서 등 유익한 일에 할애하라고 조언한다. 심지어 아들에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시간조차 헛되이 쓰지 말고 책이라도 읽으라고 권한다. 또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계획적으로 처리하는 습관을 들일 것을 당부한다. 이는 부지런함과 분별력에 더해 체계적인 시간 관리 능력이 뛰어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간 관리와 집중력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이 '노 미팅 데이'를 도입하거나 업무 시간 중 SNS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찰스 두히그의 '파워 오브 해빗'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것 역시 자기 절제와 습관 형성에 대한 현대인의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


나아가 '아버지의 가르침'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실용적 기술과 영향력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소프트 스킬'로 통용되며 그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과 대니얼 골먼의 '감성지능' 이론이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것은 대인관계와 설득, 감성 역량이 개인과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임을 방증한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직원 채용 시 소프트 스킬을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체스터필드는 아들에게 냉철한 판단력과 통찰력을 갖출 것을 강조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는 개인의 성공은 물론, 조직의 흥망을 가르는 핵심 역량으로 부상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시대를 앞서간 비즈니스 리더들의 성공 스토리는 탁월한 분석력과 혜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이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 조직을 이끌었으며,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을 주도했다. 체스터필드의 가르침은 현대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의 자질을 예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업과 조직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량을 갖춘 인재가 절실히 요구된다.


'아버지의 가르침',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아버지의 가르침'은 18세기 영국이라는 특정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지혜는 시대를 관통한다. 격변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격(人格) 도야(陶冶), 실용적 역량 계발, 대인관계 능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이 책의 가르침은 영원한 companion(동반자)으로서 곁을 내주고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현재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체스터필드의 교훈을 되새기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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