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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an 20. 2020

지금은 청정라거의 시대, 테라

[국내기업] 하이트진로


"오늘은 '테슬라'로 하시죠."

당시 내가 이 말을 들었던 곳은 테슬라 전시장이 아닌 신사동 어느 한 식당이었다. 우리 부서의 팀원분이 너무 자연스럽게 '테슬라'를 술집에서 언급해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얘기냐고 물었더니 과거 오비맥주 '카스'와 롯데주류 '처음처럼'을 합친 '카스처럼'과 같은 소맥의 대세 조합이라고 했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녹색을 띤 맥주병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있었다.


'테슬라'의 의미; 출처: jobsN


2019년 3월 출시된 테라는 그간 히트상품을 내지 못한 하이트진로에게 큰 전환점이 된 제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판매량이 시선을 끄는데 지난해 약 4억 6천만 병이 팔렸다. 초당 19.3병이 팔린 것이다. 이런 테라의 돌풍으로 인해 OB맥주는 2019년 10월 카스의 출고가를 평균 4.7% 내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종량세 시행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가격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하이트진로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같은 모회사 내 다른 브랜드 버드와이저는 11월과 12월 두 달간 23.5% 할인의 대대적인 가격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국내 맥주기업 시장 점유율 추이; 출처: 인베스트조선


저자가 브랜드매니저로 특정 브랜드를 운영한 경험에서 볼 때 연말에 예정에 없던 파격적인 가격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는 대부분 연 목표 매출 달성에 차질이 생겼을 때이다. OB맥주 입장에서는 시장의 포지셔닝이 다른 제품까지 끌어와서라도 회사의 연매출을 견인해보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축구로 예를 들자면, 공격만 하던 공격수에게 갑자기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긴 것과 같다. 아마 버드와이저 담당자 입장에서는 많이 난처했을 것이다. 그렇게 연말에 가격 할인으로 많이 출고하면 시장에 미판매된 재고로 인해 다음 해 1분기에 매출을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상의 반란' 어디까지…1억병 '테라'; 출처: 이투데이


이렇게 막강한 기존 제품들이 버티는 국내 맥주시장에서 테라는 어떻게 출시 100일 만에 1억 병 그리고 출시 160일 만에 2억 병이 넘게 팔린 걸까?



"난 달라. 난 나야", '하이트'를 지우다

하이트진로는 그동안 전통적인 브랜디드 하우스 전략을 고수해왔다. 이전에 블랭크코퍼레이션 관련 글에서 설명하였지만 브랜디드 하우스는 기업의 제품군을 하나의 빅 브랜드 아래 브랜드 아키텍처를 단순화하는 것을 말한다. 유니레버(2004), P&G(2011) 그리고 코카콜라(2015)가 하나의 빅 브랜드에 집중 투자하여 빅 브랜드의 후광효과를 활용하여 카테고리를 확장하였다. 물론 빅 브랜드가 주는 인지도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효과적이었기에 그런 전략을 택하였다. 테라의 경우, '하이트'의 후광을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다. 되려 취약한 브랜드이미지를 보유한 빅 브랜드는 신규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어 'one of them' 브랜드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어디서 이런 용기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테라는 출시 당시부터 제품 라벨과 프로모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철저히 빅브랜드 '하이트'를 배제했다. 


테라 라벨; 출처: 하이트진로


대신 브랜드명 'TERRA'를 강조하고 'AUSTRALIAN GOLDEN TRIANGLE MALT'와 'MADE FROM PURE AGT MALT'라는 영문 표현을 눈에 띄도록 배치하여 마치 수입 맥주처럼 이국적인 감성을 불어넣었다. 브랜드의 모델 공유가 출연하는 영상 광고는 물론 키비주얼에서도 '하이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삼성'의 글로벌 진출 케이스를 생각하면 왜 브랜드가 특정 이미지를 배제하는지 조금 더 쉽게 이해가 간다. 미국 대학 재학 시절 삼성제품을 종종 봤는데 어디에도 '대한민국' 혹은 'Made In Korea'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당시 의아했다. 2005년 코트라의 국가 이미지 현황 조사에 따르면 한국산 제품을 구입하는 외국인들 중 약 20%만이 'Made In Korea' 제품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삼성'과 '현대'는 알아도 이 브랜드들이 한국산이라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2015년 국가 브랜드 가치; 출처: 무역협회


10년이 지난 2015년에도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는 1조 92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브랜드 가치 비율이 76%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은 GDP 대비 브랜드 가치(20조 5740억 달러) 비율이 111%에 달했다. 심지어 국가 브랜드 가치 금액이 한국과 비슷한 네덜란드(1조 1210억 달러)의 경우 GDP 대비 가치는 한국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146%에 달했다. 그리고 이렇게 저평가된 국가 브랜드 가치는 한국 상품과 서비스가 제값을 못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졌다. 결국, 삼성과 현대는 'Made In Korea'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제품 자체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최근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많이 상승해서 2019년 Top10에 선정되었다.


2019년 브랜드 가치; 출처: Brand Finance


잘 가꾼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뉴질랜드 케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1999년 도입한  '100% 순수 뉴질랜드'라는 국가 브랜드 슬로건을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고 자국의 청정 이미지를 통해 많은 관광객들을 모객하고 있다. 



"난 깨끗해", '청정함'을 입다

하이트진로가 한때 오비맥주를 제치고 국산 맥주 1위를 한 적이 있다. 1996년 '지하 암반수'로 깨끗함을 강조했던 '하이트'로 말이다. 테라는 이런 '하이트'의 성공 공식을 답습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통상, 브랜드 매니저는 제품의 브랜드 전략을 정할 때 큰 맥락에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공략할 것인지 아니면 추상적이지만 감성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고민한다. 맥주시장의 많은 경쟁자들이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달리 테라는 조금 더 객관적인 제품력으로 어필했다. 


청정맥아 100%; 출처: 하이트진로


예로, 맥주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젋은이들을 화면에 담는 대신 전 세계 공기질 부문 1위로 평가받는 호주 내 보리 재배 지역의 맥아만 100% 사용한 점을 강조했다. 위의 스틸컷만 얼핏 봐서는 맥주광고인지 농산물 소비 촉진 광고인지 구분이 쉽지않다. 아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광고한 쌀소비 활성화 TV광고 중 한 장면인데 '테라'광고화면과 이질감이 없다.


쌀소비 활성화 TV광고;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테라'라는 브랜드명 또한 땅, 토지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가져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탄산을 별도로 저장하는 기술과 장비를 도입하여 라거 특유의 청량감을 강화하였다. 이로 인해 거품이 조밀하고 탄산이 오래 유지된다고 광고했다. 


리얼탄산 100%; 출처:하이트진로


사실 호주산 맥아 사용과 리얼탄산이라고 브랜딩한 제조공법이 맥주 맛에 정확하게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구매를 하는 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를 통해 경쟁사 맥주들은 비교적 깨끗하지 않은 맥아를 쓰고 인공탄산을 사용함으로써 맥주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을 시사했다. 


현재 외국에서는 이미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재배한 원재료로 생산한 오가닉 맥주가 이미 흔하다. 맥주 브랜드들이 어떻게 해서든 건강에 백해무익한 기호식품으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자연친화적인 브랜딩을 제품에 입히려는 시도가 옅보인다. 


허니듀 오가닉 골든에일; 출처: Fuller's Brewery


영국에는 1946년에 농장주, 과학자, 영양사들이 모여 만든 Soil Association이 있다. 이 곳에서 1960년 처음으로 오가닉 식품의 기준이 세워졌다. 제품에 대한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 오가닉 인증을 발급한다. 사실 이전에는 대부분 일반 식료품에 대한 인증을 많이 진행했는데 최근 건강관리에 대한 필요성과 가공식품의 원재료에 대한 소비자들이 관심이 높아져 오가닉 인증을 시도하는 카테고리가 점차 확장되는 추세이다. 


호주 퓨어 블론드 오가닉; 출처 퓨어 블론드


이외 호주 등 많은 국가에서 다수의 맥주 브랜드들이 오가닉 인증을 받아 출시되었다. 물론, 나라마다 오가닉 인증 기준이 달라 오가닉 인증을 포기하거나 관련 법규가 바뀌지 않는 한 국내 마트에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테슬라 마시는 난 인싸야, 인싸", '트렌드'를 만들다

테라의 성공적인 자리매김에 또 다른 기여자는 트렌딩 요소를 잘 내재시킨 기획자의 기획력이다. 하이트진로는 소맥 조합 '테슬라'(테라+참이슬)를 전혀 염두하지 않고 제품을 출시했다고 하지만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유행어의 파급력이 굉장하다. 이제는 많은 소비자들이 소맥하면 '테슬라'를 먼저 생각할 정도이다. 


테라 X 참이슬; 출처: 하이트진로


지난 7년간 소비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카스를 습관처럼 주문했는데 이런 무의식적인 습관을 바꿔버린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테슬라'에 흠뻑 빠지게 만들게 한 걸까? 혹시 '테슬라'라는 단어가 풍기는 우아하고 진취적인 이미지가 어딘가 거칠고 자유분방한 소맥에 품위를 더한 것은 아닐까? 사실, 맥주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전기차 브랜드명을 운운하며 술자리를 가지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소소한 재미가 있다. 


편승효과; 출처: 마케팅시크릿마스터


그리고 이런 신선함이 '카스처럼'을 주문하는 것을 상당히 진부하고 유행에 뒤쳐진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유행(fashion)은 일시적인 다소 짧은 시간 내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전파되는 행동성향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어떤 사회집단 속에서 일정수의 사람들이 일정기간 동안 유사한 행동양식과 문화양식을 택함으로써 생기는 사회적인 동조현상을 말한다. 유행을 채택함으로써 자신도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얻으려는 동조심리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유행을 채택함으로써 그것을 채택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만족감인 차별화 심리가 복합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편승효과가 심화되면 포모증후군으로 발전될 수 있다.


FOMO 증후군; 출처: BKReader


포모증후군은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심각한 두려움 또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 제외되고 있다는 공포를 나타내는 일종의 고립공포감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인해 초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는 현시대는 포모증후군을 사회병리 현상의 하나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50%가 넘는 성인이 포모증후군 증세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불과 몇 년 전, '캐나다구스'라고 하는 캐나다산 브랜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많은 사람들이 구매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전에는 '노스페이스'를 많은 학생들이 교복처럼 입었던 적이 있다. 물론 주류의 흐름에 동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큰 어려움 없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적 현상으로 일어난 구매 붐은 시간이 지나며 그 영향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주위의 누군가가 '캐나다구스'를 입거나 '노스페이스'를 입는다고 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거나 다른 이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즉, 테라의 돌풍이 일시적인 사회적 현상이라면 유행이 시들해짐과 동시에 다시 매대 뒤편으로 사라질 수 있다. 더욱이 테라는 저관여식품인 맥주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하다. 혁신적인 마케팅 시도를 통해 꾸준히 소비자들의 입에 계속 거론되고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진로이즈백'이 복고풍의 두꺼비집을 통해 브랜딩을 하고 소비를 촉진시켰다면 브랜드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테라'는 조금 더 소비자들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이네켄 박물관; 출처: 하이네켄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하이네켄 박물관이 리노베이션을 주기적으로 거듭하며 암스테르담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단순히 하이네켄을 마시고 구매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부터 양조과정까지 상당히 입체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하이네켄 박물관 내 영상 활용; 출처: 하이네켄


최근에는 고화질 디스플레이, 인터랙티브 콘텐츠, 미디어파사드를 도입해서 더욱 몰입감 있는 경험을 통해 방문자에게 확고한 브랜딩을 하고 있다. 


하이네켄 박물관 내 미디어파사드; 출처: 하이네켄


테라가 이러한 시도를 통해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전 세계 공기질 부문 1위로 평가받는 호주 내 보리 재배 지역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몰입감 있는 시청 경험을 제공하고 화려한 미디어파사드와 조명으로 리얼탄산을 표현한다고 상상해보자. 이제는 내가 마시는 맥주가 왜 테라여야 하는지 내 몸이 기억을 하고 마시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7070574291

https://www.byscoop.com/india-ranks-7th-in-brand-finance-nation-ranking-2019-united-retains-top-spot/

https://www.pureblonde.com.au/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0537945&memberNo=27908841

https://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755404092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31/2019123100025.html

https://nvsvy.com/HEINEKEN-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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