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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un 07. 2024

미팅에 노쇼한 해외 거래처에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았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어릴 적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중국이 한국을 이르던 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나라'라는 뜻이었다. 난 그 말이 교과서에 실릴 때마다 왠지 모를 자부심이 느껴졌다. 외국에서 공부할 때도 한국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외국에서 한국의 문화를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Traditional"


한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단순히 '전통적'이라는 한 단어로 축소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자부심을 가졌던 '예의'라는 가치가 그들의 눈에는 진부하고 낡은 관습으로만 비추어졌다. 이런 인식의 괴리를 목도하며, 나는 더 이상 예의의 틀에 갇혀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길을 개척해 나가리라 결심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한 스타트업에 갓 합류했을 때, 동료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가 얼마 전 CES에 참가했을 당시, 해외 바이어와 미팅 약속을 잡아놓고 장소와 시간까지 철저히 확인했건만 정작 당일에 상대방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불쾌감과 허탈감에 휩싸였다. 약속을 하고 지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는 단순히 예의의 문제를 넘어, 비즈니스 상의 신뢰와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당한 일도 아닌데 피가 끓었다. 나는 노쇼를 한 거래처 담당자의 이메일을 적어두고 동료에게 말했다.


"저희가 앞으로 여기와 거래를 할 일이 있을까요?"


"설령 하고 싶어도 못할 걸요. 약속된 미팅에 나타나지도 않을 정도로 무시한 기업인데 협업을 하고 싶어 할 리 없잖아요."


그의 말대로였다. 노쇼 이후 외국인 담당자는 동료의 이메일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난 그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를 손에 꼭 쥐었다. 동료를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건은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제가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이들과 계약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도 괜찮죠?"


사실 나는 애초에 이 회사와 비즈니스를 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약속을 저버리고 연락조차 없던 그 글로벌 기업 담당자에게 불편한 경험을 안겨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마침 우리 회사에서도 이미 포기한 거래처라고 하니, 뭔가 통쾌한 복수극을 펼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성급한 복수보다는 절제된 대응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대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회인의 자세라고 믿었다. 그래서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정중한 어투로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담당자님. 지난 CES에서 만날 예정이었는데 우리 직원들과 엇갈려 미팅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미팅을 재조율하고 앞으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오해가 있었을 수 있으니 처음부터 굳이 상대를 자극하거나 도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급적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그에게 이 난처한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예로운 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야 향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러나 나의 이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내가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수용하리라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그런 문화에서 자라온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는 그가 속한 사업부의 부장을 찾기 시작했다. 대기업일수록 조직도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시간만 투자하면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능청스러운 어투로 그의 상관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귀사의 OOO 과장님과 CES에서 미팅 예정이었는데 만나지 못했습니다. 혹시 그분이 퇴사하셨나요? 아니면 담당자가 바뀐 건가요? 그렇다면 새로 부임한 담당자분과 협의를 진행할 수 있을까요?"


역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마 그 과장이 누구에게서 비즈니스 매너를 배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유럽에선 이런 식이 통할지 몰라도, 나는 이 굴욕을 그냥 삼킬 수 없었다.


나는 그들 기업의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샅샅이 뒤져가며 점점 권력의 정점을 향해 전진했다. 물론 보고라인을 타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내 메일에 호응해 주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생각뿐이었다.


'아... 이런 식으로 사업하니 삼성, LG한테 밀리고 사업부 매각하면서 겨우겨우 버텨왔구나.'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냈지만 그 누구로부터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결국 나는 해당 기업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CEO에게까지 메일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도했던 그 거대 기업의 수장이, 우리 같은 무명의 중소기업으로부터 이런 식의 문의를 받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정중한 어조를 유지하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절제되면서도 위력적인 메시지가 되어야 했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통해 그들이 아시아, 특히 한국 기업들에 밀려난 이유를 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다. 


CEO마저 답이 없자 나는 다음 행동을 모색했다. 사실 그 이상의 타깃은 없었기에 CEO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계획이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압박하려는데...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모든 사단의 원인 제공자인 그 담당자에게서 메일이 온 것이다. 


"어이쿠, 그때 CES에서 만나지 못해 미안했어. 업무가 너무 바빴던 탓에 신경을 쓰지 못했지. 차후에 협업 기회가 있으면 먼저 연락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주면 안 될까?"


그의 이메일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CEO가 이상한 메일이 자꾸 온다고 담당자를 찾아 경위를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전까지 자기 외 다른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지 말라는 부탁도 있었다. '미안했다면 진작에 연락했어야지, 이제 와서...' 속으로 한탄하면서도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


"오, 너 아직 여기 근무하고 있었구나. 연락이 없어서 딴 데 간 줄 알고 후임자를 찾아 헤매던 참이었어. 그래, 협업 기회가 생기면 꼭 연락 달라고. 기다리고 있을게."


그 후로 그들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아마도 그들 눈에 우리 같은 작은 중소기업은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하찮은 거래처 정도로 비췄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결코 무시당하거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끈질기게 그들을 추적하고 사과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대한민국의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해외 기업 앞에서 그저 고개 숙이고 침묵하는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에게도 당당히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으며, 부당한 대우 앞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내 시장에서조차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종종 부당한 대우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그 누가 우리를 지켜주겠는가. 이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리 스스로 당당하고 확고한 자세로 우리의 권리를 지켜나가야 할 때다. 해외 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중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 우리가 이뤄낸 성과와 잠재력은 이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하다. 당장은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지언정, 끊임없이 도전하고 전진하는 우리의 모습에 세상이 주목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자신감과 열정만큼은 그 어떤 해외 기업도 꺾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하지 않는 법이다. 해외 거래처라고 해서 그들의 부당한 처우를 감내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고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때에만 세상은 변화할 수 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서로의 권익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해 나간다면, 국내외 어떤 기업과의 관계에서도 대등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각자가 먼저 변화의 주체가 되어 당당히 맞서 나갈 때, 우리가 마주한 부조리한 현실도 반드시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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