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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Nov 06. 2024

미슐랭 3스타 식당의 셰프가 된 고등학교 동창

라면도 안 끓이던 친구가 미슐랭 셰프가 되기까지

20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Paul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우연히 본 그의 제주도 사진 한 장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지금 한국이야?"라는 나의 물음에 그가 답했다. "응, 얼마 전에 왔어." 서울에 오면 만나자는 제안에 그는 흔쾌히 응했고, 우리는 홍대의 한 식당에서 재회했다.


Paul을 마주한 순간, 20년 전 고등학교 카페테리아에서의 첫 만남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If you speak English, you can sit at this table. If you don't, you can sit at another table."


영어를 구사하면 자신과 같은 테이블에 앉고 아니면 다른 자리에 앉으라니. 그의 당돌한 첫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전학 첫날이었던 터라 사춘기 반항아였던 나도 그의 말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종종 어울렸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저 전형적인 재미교포라고만 여겼다. 졸업할 무렵에야 그 불편했던 첫 만남에 대해 기억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자신이 정말 그랬냐며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오히려 그의 뜻밖의 사과에 내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난 Paul은 고등학교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한때는 장난기 많은 친구로만 보였던 그가 이제는 캘리포니아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Saison(세종)의 Culinary Director가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라면 한 번 끓여주지 않았던 녀석이 세계적인 셰프가 되어 있다니, 인생이란 참 예측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aul Chung


Saison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Benu(베누), The French Laundry와 함께 최고의 식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Paul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캘리포니아의 제철 향토 식재료를 활용하고 오픈키친 컨셉에 나무 화덕을 고집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덕분에 오픈한 지 3년 만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인당 80만 원에 육박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지만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했다.


Paul의 과거는 내가 전혀 몰랐던 이야기로 가득했다.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하방에서 자취했다는 것, 고등학교 시절 수업이 끝나면 바로 우리 집 앞 IHOP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까지. 이 모든 경험이 그의 독립심과 모험심의 씨앗이 되었던 것 같다.


ⓒSaison


요리사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Paul은 담담하게 답했다.


"음식을 만드는 게 정말 좋았어.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지만 실제로 요리할 기회가 너무 적어서 바로 식당으로 뛰어들었지."


그의 '과감한 도전'은 상상 이상이었다. 파리에서 8개월, 일본에서 몇 달간 무급으로 일하며 요리를 배웠다고 했다.


"제발 써달라고 매일 식당에 찾아가서 빌었어. 파리에서는 매일 아침 일찍 가서 야채 다듬고, 바닥 쓸고, 그릇 닦고... 힘들었지만, 요리하는 걸 배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 일본에서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달랐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만은 통했어."


Paul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은 예측불가능한 여정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저 장난기 많은 재미교포로만 여겼던 그가 이제는 세계적인 셰프로 변모해 있었다. 나 역시도 한때 방한한 롤스로이스 사장이 자신만만하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무급으로라도 옆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실행하지 못다. 하지만 Paul은 실제로 파리와 일본에서 무급으로 일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도전정신과 열정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Saison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다 그만두고 한국에 왔어. 주변에서 다들 만류했지만, 내 뿌리를 찾아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20년 전 카페테리아에서 마주친 Paul과 지금의 Paul은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그동안 얼마나 쉽게 타인을 단편적으로 판단해 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의 용기가 진정으로 존경스러웠다.


Saison에서 보여준 그의 혁신적인 접근이 한국에서도 빛을 발하리라 기대된다. 현지 식재료 활용과 오픈 키친이라는 그의 요리 철학이 한국의 식문화와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낼지 궁금하다. 한국의 토종 식재료로 빚어내는 창의적인 요리, 전통 장(醬)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소스 등. Paul의 창의성이 한국 고유의 맛과 어우러져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 믿는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2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나눈 이 대화는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 주었다. 이번 만남을 통해 인연의 소중함과 함께, 우리 모두에게 숨겨진 이야기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Paul의 새로운 모험이 그의 인생에 또 다른 흥미진진한 장을 열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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