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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Oct 10. 2024

글을 쓴 경험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다른 회사 소개를 내가 다니는 회사 소개보다 더 잘하는 재능에 대하여

투자사와의 미팅을 위해 대표님과 함께 공덕을 찾았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사무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운데, 투자사의 센터장이 나를 보자마자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그날 활약이 정말 대단했어요. 행사 끝나고 운영사들끼리 얘기를 나누던 중에 인스피리오 얘기가 화제의 중심이었죠."


그의 말에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가 말하는 '그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주 전 있었던 투자사 주관의 기보벤처캠프 네트워킹 미팅이 떠올랐다.


원래는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지방 일정으로 내가 대신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역삼까지의 먼 거리에 내심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게다가 행사 일정에 '보물찾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해본 적 없는 보물찾기를 이제 와서 다시 한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싶었다.



행사장에 도착해 보니, 분위기는 의외로 활기찼다. 외부 강연자의 열정 넘치는 강연이 끝나고, 이어서 운영사들과 스타트업들의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아 즉흥적으로 내가 근무하는 회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대표님들, IT 프로젝트 외주 많이 줘보셨죠?"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마 불시에 외주사 PM에게 전화해서 공정률을 물어보면 크게 세 가지 답이 나올 겁니다."


청중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으며 나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첫 번째, '예?' 두 번째, '잠시만요.' 세 번째, '이렇게 마이크로 매니지하시면 저희 같이 일 못해요'라고요."


웃음소리가 들리자 나는 자신감을 얻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이유를 막론하고 공정률을 모른다는 겁니다. IT 프로젝트 관리는 에포소(EPOSO)를 통해서 하세요. 중재원에 가실 일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 기업 소개를 마치고 나니, 대망의 보물찾기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시늉만 하려 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곳저곳을 열심히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포기하려는 찰나, 한 대표님이 내게 다가와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물을 찾은 사람은 다른 기업과 짝을 이뤄 등록해야 상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운 좋게 탐색력이 뛰어난 대표님과 짝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자, 이제 각자의 짝의 기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순간 당황했지만, 내 짝인 대표님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는 현대차 출신으로, 지금은 퇴직 후 창업을 했다고 했다.


"저희 회사는 제 포함 직원이 3명인데요, 저희가 하는 건 공장 내 측정 장비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 원격으로 촬영하고 저장하고 기록하는 걸 대신해 줘요. 10초마다 사진을 찍어서 와이파이나 블루투스로 전송하죠. 제가 공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이게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어쩔 땐 기계를 열어봐야 하는 일도 생기고요."



그의 설명을 듣는 중에 갑자기 사회자가 우리를 호명했다. 단 3 문장밖에 듣지 못했는데, 어떻게 설명을 할지 고민하던 그 순간, 그간 150명이 넘는 창업가들을 인터뷰하고 콘텐츠로 발행했던 경험이 빛을 발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옆에 계신 분은 최재호 대표님의 기업명이 카라멜소프트예요." 


나는 부드럽게 말을 시작했다. 


"처음 들었을 때 혹시 제빵이나 제과 쪽 회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하드웨어에 강점이 있는 기업이어서 놀랐어요."


청중들의 관심을 끌자 나는 본격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최재호 대표님은 사실 현대차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셨던 베테랑이세요. 제조업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시죠. 그런데 이분이 근무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공장 내 측정기를 매번 찾아가 수기로 적고 다시 컴퓨터에 입력하던 과정이었다고 해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했다. 


"제조업 현장에서 데이터 수집의 정확성과 효율성은 품질 관리와 생산성 향상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수동 측정 방식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측정값을 수기로 기록하고 재입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적 오류, 넓은 공장 내 여러 지점을 오가며 발생하는 시간 낭비, 그리고 때로는 기계 설비를 열어 측정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이 그 예입니다."


청중들의 눈빛이 점점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여러분, 제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지속적인 프로세스 개선과 효율성 증대입니다. 식스 시그마, 린 생산방식, 전사적 품질관리(TQM) 등 현대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경영 혁신 기법들은 모두 정확한 데이터 측정과 분석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중요한 데이터 수집 과정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현대차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과제입니다."


나는 최 대표님을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어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재호 대표님의 혁신적인 솔루션이 빛을 발합니다. 카라멜소프트가 개발한 스마트 모니터링 시스템은 기존의 수동 측정 방식을 완전히 자동화합니다. 고해상도 카메라와 IoT 기술, 그리고 첨단 AI 알고리즘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시스템은 측정기 앞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10초마다 정밀한 이미지를 캡처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중앙 서버에 전송합니다."


ⓒ카라멜소프트


"여기서 핵심은 바로 AI 기반의 이미지 처리 기술입니다.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카메라가 포착한 측정기의 바늘 위치와 각도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수치화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서, 인간의 눈보다 더 정밀한 측정을 가능케 합니다."


"이 혁신적인 시스템의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실로 막대합니다. 인력 의존도 감소로 인한 운영 비용 절감,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즉각적인 이상 감지, 그리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생산 공정의 최적화가 가능해집니다. 또한, 작업자들은 반복적인 측정 업무에서 벗어나 더 가치 있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청중들의 반응을 살피며 결론을 맺었다. 


"카라멜소프트의 이 혁신적인 기술은 단순한 효율성 개선을 넘어, 제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속화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기술이 제 전 직장인 네슬레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조업계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카라멜소프트와 최재호 대표님의 혁신이 만들어갈 스마트 팩토리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강당 내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내 옆에 선 카라멜소프트의 대표님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사회자가 재치 있게 말을 걸었다.


"두 분 오늘 처음 만나신 거 맞죠? 방금 소개하신 분 카라멜소프트의 영업사원 아니시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방금 전 명함을 주고받은 사이가 맞습니다."


우리는 상품 추첨에서 각각 건강기능식품과 커피쿠폰을 받았다. 나는 연장자이신 최대표님께 건강기능식품을 건네며 상품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최대표님은 상품 교환보다도 내가 그의 회사를 멋지게 소개해준 것에 더 감동한 듯했다.


"저희 회사에 영입을 하고 싶을 정도로 회사 설명을 잘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의 진심 어린 말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 대표가 부탁한 홍보는 뒷전이고, 오히려 다른 회사 홍보에 열을 올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잠시, 행사가 끝난 후 운영사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짧고 사무적이던 인사가 이제는 반갑고 친근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여러 번 인사를 받았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무대 위에서 갑자기 다른 회사를 자신의 회사처럼 열정적으로 소개한 것이 큰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그간의 기업 인터뷰 경험과 글쓰기 능력이 이렇게 빛을 발할 줄은 몰랐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어떤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노력이 언제, 어떻게 빛을 발할지 모르는 법이다. 오늘의 경험은 앞으로의 나의 행보에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기회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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