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후 May 15. 2021

"퍼포먼스마케팅 몰라서 죄송합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모르지만 퍼포먼스는 나옵니다.

"네? 대표님이 여기로 찾아오신다고요?"


몇 년 전 한 스타트업 대표이사가 당시 내가 근무하는 회사 근처로 찾아오시겠다고 하셨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스타트업 대표들은 인재 채용을 인사 담당자에게 전적으로 위임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요즘은 이렇게 대표가 직접 잠재적 파트너를 찾아 가볍게 티타임을 갖으며 '핏'을 맞춰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전화를 받은 나 역시도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아오시는 분이라면 큰 부담 없이 식사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대화를 통해 시각과 관심사가 잘 맞는다면 최소 좋은 멘티-멘토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내심 있었던 것 같다.


Serkan Göktay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매체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만 친숙한 인상을 가지신 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를 들은 것이 전부였지만 단번에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우리는 대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체 그렇게 세상 어색한 첫 조우는 이뤄졌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대표님, OOO입니다. 먼 길 직접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가까운 식당으로 가시죠."


회사 가까이 있는 식당이어서 다른 직원들과 마주치면 괜한 오해를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멀리서 오셨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식 주문하고 식사하시면서 편하게 말씀 나누시죠."


그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별 다른 고민 없이 면 종류를 선택했다. 이번에 느낀 것이지만 평소 일면식이 없는 상대방과 식사를 할 경우 면은 결코 추천하지 않는다. 대화하며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특히, 나 같이 면을 최대한 끊지 않고 식감을 음미하는 경우에는 더욱.


Karolina Grabowsk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식사가 나오기 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세계적인 IT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스타트업 대표를 제안받아 본인이 직접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분의 선택에 대해서 감히 평가할 순 없지만 상당한 고민과 용기가 수반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도 나와 같은 외국계 기업 출신인이어서 상당히 많은 공감대가 이뤄질 것 같다는 기대가 들 때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면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자 간을 맞추고 있는 와중에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A회사 대표: OO님, 외국계 기업에 있다가 스타트업으로 옮긴 이유가 뭐예요?

나: 그 질문을 자주 받는데 한 기업에서 장기근속을 하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아무래도 편해지면 안주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자연스레 도태되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실제로 오픈이노베이션을 담당하며 외부 스타트업들을 만나면서 외국계에서 보기 힘든 기민함과 독창성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다소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다시 나 스스로를 정글에 던져 생존법을 익히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A회사 대표: OO님, 앱 마케팅 경험 많으세요?

나: 기간이 짧아 감히 전문가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사실 저는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재경팀에서 원장관리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외화관리를 주로 하는 자금업무을 담당하였어요. 그 와중에 내부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담당자로 선임되었고 나중에는 마케팅 임원의 요청으로 신제품론칭 매니저를 맡아 새로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지원을 하는 업무를 하였어요. 그러다가 담당자가 미정인 신규 브랜드를 제가 맡으며 마케팅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앱과는 전혀 무관한 커리어를 밝고 있었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중고거래 플랫폼에 합류하며 무형의 서비스를 업으로 하는 산업에 발을 디디게 되었어요.


나는 단 한 번도 나 스스로를 앱 마케팅 전문가로 소개한 적이 없다. 플랫폼 서비스에 종사하며 전국적으로 바이럴이 된 프로모션과 소소한 성과를 낸 캠페인이 있었지만 스스로 전문가라고 지칭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커리어에 많은 부분 무형의 서비스보다는 유형의 브랜드 마케팅을 해왔기에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August de Richelieu 님의 사진, 출처: Pexels


A회사 대표: 그로스해킹은 어렵더라도 퍼포먼스 마케팅은 할 줄 알아야죠.

나: 네,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저도 해당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제가 하는 일과 맞닿아있는 부분을 계속 늘리고 있는데 대표님이 보시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순간에도 인생 선배이자 커리어 컨설턴트와도 같은 그분의 말씀이 이어졌다. '우리가 불과 몇 십분 전에 만난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체적이지 않은 조언이었다. 퍼포먼스 마케팅과 그로스해킹이 중요한 것은 비전문가인 나도 Sean Ellis의 'Hacking Growth'라는 책을 읽었을 정도로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였다. 다만 모든 산업이 그로스해킹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내가 길게 몸 담았던 외국계 소비재회사는 그로스해킹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을 경험하고 얻었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로스 해킹, 출처: https://blog.growthhackers.com/


그리고 예정에 없던 커리어 컨설팅은 계속되었다.


A회사 대표: 요즘 데이터 안 보고 마케팅한다고 말하면 힘든 세상입니다.

나: 네, 제가 주로 제품을 위주로 한 식료품업에 있다가 앱을 운영하는 서비스업으로 와서 아직 경험이 부작합니다. 생각하시는 쿼리를 만들어서 DB를 분석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은 확인하면서 빅 스윙을 하기 앞서 영점을 잡는 단계로 이해해주십시오. (면과 함꼐 나의 집중력도 식어갔다.)


어느덧 그릇을 비울 때쯤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 분은 아무래도 데이터 분석을 통한 효율적인 마케팅이 주효하다는 것을 내게 말씀하려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분의 기준에서는 매스마케팅에 조금 더 비중을 둔 나의 커리어패스가 우려가 되었던 것 같다. 


'잠깐, 내가 언제 나 스스로를 데이터 전문가 혹은 퍼포먼스 마케팅 전문가라고 말한 적이 있었나?'


Andrew Neel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이런 것을 모르고 나와 식사하자고 한 것은 아닐 텐데 식사하느라 분산되었던 집중력이 한 곳으로 모이며 꽤나 불편한 점심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문 3개 정도 받았으니 나도 이제 질문을 하기로 했다.


나: 대표님, 영업 제안서 거래처 별로 특화된 제안서 300개 써봤어요?

A회사 대표: 네? 아니요. 제가 굳이..


맞다. 나는 스타트업에 합류한 후 B2B 영업 전문가도 아닌데 일일이 기사를 찾아가며 업계의 잠재적인 클라이언트들을 대상으로 제안서를 300개 정도 작성했다. 단순히 300개를 복사-붙이기를 한 것이 아닌 제안서 한 장 한 장에 해당 기업의 로고와 슬로건을 녹여서 마치 순전히 해당 기업을 위한 제안서처럼 만들었다. 그렇게 수소문해 찾은 미국 D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에게 cold-email을 보냈더니 전혀 cold하지 않은 회신이 돌아왔다.


D사 담당자: "I can tell you did your homework. Let me introduce you to the person in charge." (사전에 충분한 숙제를 했군요. 담당자를 소개해 줄게요.)


cottonbr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물론 모든 담당자들이 앞의 임원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무시하는 경우가 오히려 80%~90% 이상 되었다. 수많은 거절과 무시 후 한 건이 성사되면 그 앞의 모든 과정은 단순히 해프닝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기업에서 근무하고 바로 대표로 취임한 이분이 그런 거절과 무시를 경험해보았을까? 그분 말씀처럼 데이터를 근거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런 소프트웨어를 구비할 환경도 이해도 부족하기에 일단 몸으로 부딪히며 계속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나: 대표님, 서비스나 회사가 저녁 9시 뉴스에 소개된 적 있어요?

A회사 대표: 아니오..


적잖이 당황한 그의 표정에서 나도 모르게 희열을 느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근무하면서 대대적인 홍보나 마케팅 예산을 쏟지 않고 이끌어냈던 사례에 대해 설명드렸다. 순전히 이용자들의 성향과 서비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하여 기획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용자들의 참여와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거워 각종 매체에 소개되었다. 


나: 대표님, 저는 사실 대표님 회사에 대해서 전혀 몰랐어요. B2C 사업하신다고 하는데 이미 기존의 플레이어들이 유사한 혹은 더 국내 시장에 특화된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님 서비스는 정확히 어떻게 다른 거죠?


방금 전까지 데이터 근거한 마케팅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던 그분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서로에 대해서 과감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로 이해했는데 정작 피드백을 받는 것은 어색하였나 보다. 만족할만한 답변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나: 그로스 마케팅 그리고 퍼포먼스 마케팅 말씀하셨는데 운영하시는 소셜미디어 채널들을 보면 이용자 참여율이 상당히 저조하던데. 말씀하신 마케팅 기법들은 어떤 효과가 있었던 거죠?


데이터에 근거한 마케팅이 중요하다면 그로 인한 성공사례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일반 소비자의 시점에서는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마일스톤이 보이지 않았다. 


점점 말수가 적어지는 그분의 모습에서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초면인데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날 때 내가 기대하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우리 모두 유한한 시간과 리소스를 갖고 있고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역량은 단순히 경력의 합이 아니다. 도전과 역경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개개인에게 내재된 역량과 근성이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모르지만 퍼포먼스는 달성하는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사람과 함께 한 점심으로 기억해주셨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엄마만 우유로 세수하는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