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화로운 우리 회사
"책임님, 올해 그 프로모션 다시 또 진행할 뻔했어요."
그래. 파도를 거스를 수 없다면 파도를 올라타자
우선 프로모션 명칭은 여러 의견(나를 포함 두 명)이 있었지만 메인기획자인 내가 낸 '전국이색매물자랑'이 채택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전국노래자랑'에서 힌트를 얻었다. 간략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취지가 UHD급으로 선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도달한 프로모션 명칭이다. (비록 이용자들은 만우절 이벤트로만 기억하지만..)
그렇다면 예시가 왜 굳이 엑스칼리버일까?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여러 안을 제안했는데 그 중 장난감 칼이 가장 이해하기 쉽고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 무엇보다 해당 커뮤니티에서 정말 거래될 것 같은 아이템이라는 부분이 컸다. (다들 엑스칼리버 하나쯤 허리에 차고 다니지 않나? 휴가결제 안해주는 대표님 처방용으로..) 그리고 당시 영화 '킹 아서: 제왕의 검'을 본 지 별로 안되어 아직 감흥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이용자 친화적'이라고 쓰고 기획자의 개취라고 이해)
거기에 왜 뜬금없이 층간소음이냐고?
당시 아파트로 이사한 지 아직 1년이 안되었는데 층간소음으로 조금은 예민한 시기였다. 게다가 범인들이 우리 집에 사는 나를 닮은 60개월 미만 구성원들이어서 마음 한편이 항상 불안했었는데 당시 프로모션 기획에 그러한 고민이 묻어난 듯하다. (이 역시도 기획자의 개인사가 반영..) 내가 초안을 작성하고 옆에 마케팅 팀원이 포토샵으로 비주얼화하였다. 전문 디자인팀이 따로 있지만 당시 급하게 토요일 소집되어서 차마 디자인팀까지 출근시킬 수 없었다. (나란 남자는 역시.. 배려의 끝판왕..)
그리고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는 非디자인 전문가 팀원에게 여러 차례 말했던 것 같다.
"나도 내가 이런 말 하게 될지 몰랐는데 지나친 정성이 오히려 커뮤니티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것이 되려 광고 같지 않고 모두가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프랭크(가벼운 장난)처럼 이용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절대 집에 일찍 퇴근하고 싶어서가 아냐. 하지만 막차는 타야 되지 않겠니?)"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기획자의 개취와 개인사 시즈닝이 올라간 만우절 기념 '전국이색매물자랑대회'가 탄생되었다. PR대행사를 따로 고용하지도 않았고 바이럴 대행사에 의뢰를 하지도 않았다. (결코,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다... 눈가 촉촉..) 그래서 되려 오늘도 평화로운 커뮤니티의 온전한 티켓파워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터졌다. (대표나 상사한테 터진게 아니다.) 전화와 카톡이 여기저기서 왔다.
A: "OO, 너네 회사 지금 난리야!"
기획자: "야. 우리 회사는 이전부터 난리였어.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B: "이거 설마 너희가 한거야? 노리고 한 거 아니지?"
기획자: "노리긴 노렸지. 주말근무 시킨 배후자의 뒤통수를."
C: "뉴스에서 봤어. 올해 만우절은 OO나라가 다 하는구나."
기획자: "기획자가 다 했다라고 하자. 그리고 주위에 소문 좀 내줘. 이걸 기획한 마케팅 담당자 몸값이 무척 낮다고."
기획한 프로모션이 저녁 뉴스에 소개된 것도 나중에야 알았을 정도였다. (거실 TV에는 뽀로로와 핑크퐁밖에..) 우리도 이렇게 많은 호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1명이 이미 회원이어서 커뮤니티를 굳이 홍보할 이유는 없었다.
순전히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에게 재미요소를 제공하고 그들의 불편한 시선을 유쾌하게 풀어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를 예시로 쓰면서 이보다 신박한 아이템은 나오기 힘들거라고 내심 생각했다.
"나의 기발한 발상이 오히려 이용자들의 참여에 허들로 작용하는 거 아닐까?" (어깨 으쓱)
나의 우려는 크게 빗나갔다. 참여한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제출한 아이디어들이 압도적으로 기발했고 반응이 좋았다. 이래서 유튜버들이 이용자들의 댓글을 읽어주고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온라인 라이브방송들이 대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전국이색매물자랑' 응모작들 중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동동이 앞발'님의 '미개봉 박혁거세 알'이었다. 이건 당최 견줄 상대가 없었다. 너무 반응이 압도적이어서 아예 상장까지 만들어서 상품과 함께 전달드렸다. 사실, 이 정도면 마케팅부서에 입사시켜야 하는데 혹시라도 '동동이 앞발'님이 거절할까봐 차마 묻지는 못했다. (내가 과민성 거절기피 증후군이 있어서..)
당시 대상 당선자 '동동이 앞발'님과의 전화통화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평화로운 나라의 OOO입니다. '전국이색매물자랑'에 참여해주셨는데 혹시 '박혁거세 알' 주인 되시나요?"
상당히 앳된 이제 갓 변성기를 졸업한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정말 제가 대상인가요?"
"네, 박혁거세 알 3천만 원에 판매는 어렵겠지만 약속드린 경품 에어팟은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너무 즐거워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 또한 덩달아 신이났다. 에어팟이 아니라 아이폰 10개(물론 중고..)를 보내드려도 모자를 정도로 큰 기여를 해주었다.
프로모션 결과를 말하자면 만우절 하루동안 256개의 상품이 '전국이색매물자랑'에 출품되었고 평균 단가 3천만 원에 최고가는 5억 8천만 원을 상회횄다. 다행히도 실제 거래로 이어진 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휴우~ 프로모션이 경제면이 아닌 사회면에 실릴 뻔..)
그렇게 프로모션이 성황리에 마쳤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마케터의 기획력보다는 이 커뮤니티가 가진 파급력이 진가를 발휘한 것이야' (뭐지. 이 쉐이크쉑 같은..)
다소 생뚱맞은 발언이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다른 서비스에서 같은 방식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면 결코 이 정도로 흥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나와 동료들은 커뮤니티 이용자들에게 비치는 서비스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용자들의 시선에서 이용자들이 즐겁게 놀아 줄 판을 깔아 준 것이 전부다. 올해 만우절 역시 이용자들을 즐겁게 하는 유쾌한 프로모션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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