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불가능해서 명료했던 시절, 가장 생생했던 나날들
몇 달 전, 미국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통과했던 친구가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1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리가 마주한 건 고작 세 번뿐이었다. 그가 결혼 소식을 들고 찾아왔던 날, 그리고 6년 전 뉴욕 출장길에서 스치듯 만났던 짧은 순간. 우리의 재회는 평균 7년에 한 번꼴로 실현되는, 지극히 희귀하고도 귀한 사건이었다.
약속 장소인 종각에서 멀리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얼굴 그대로였지만, 곁에는 자신을 꼭 닮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를 민망함이 앞섰다.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 나를 향해 저토록 순수한 기쁨을 터뜨리는 것이 낯설어진 것이. 그리고 언제부터 나 역시, 반가움조차 적당히 갈무리하는 '어른의 표정' 뒤로 숨는 데 익숙해진 걸까.
한국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건 어쩌면 감정을 거르는 체가 촘촘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차오르는 환희는 억누르고, 터져 나오려는 슬픔과 분노는 삼켜내는 일. 진실한 감정이 빠져나간 텅 빈 자리를 '성숙'이라는 이름의 서툰 역할극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시절의 나는 참으로 염치없는 아이였다. 그의 집에서 며칠씩 묵으며 밥을 얻어먹는 일이 예사였다. 훗날 한국에서 다시 만난 친구의 부모님은 나를 마치 친자식인 양 넉넉히 품어주셨다. 어렸을 때는 알지 못했다. 남의 집 자식에게 내어주는 그 방 한 칸과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얼마나 커다란 사랑이었는지를.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그 호의들이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은, 누군가의 깊은 배려와 희생이었다는 것을.
친구는 나의 불꽃 같던 성격과 모난 구석들을 묵묵히 받아내 주던 사람이었다. 왜 하필 나처럼 다루기 힘든 아이 곁을 지켜주었을까. 단순히 그가 나보다 한 살 어렸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나보다 훨씬 넓은 마음의 지평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이 통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미국이라는 토양 위에서, 우리의 순수한 우정은 비로소 가능했을 것이다.
그를 마주하고 있으면 좌충우돌하던 그 시절의 풍경들이 홀로그램처럼 떠오른다. 그때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가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그저 거리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매일 웃었다. 딱히 웃을 일이 없는데도 모든 순간이 그저 재미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웃을 조건들이 훨씬 많아졌지만, 정작 그때만큼 웃지는 않는다. 아무런 이유 없이 터져 나오던 그 가벼운 웃음소리가 때때로 지독하게 그립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삶의 무게에 밀려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가슴 뛰던 꿈은 흐릿해졌고, 뜨거웠던 열정은 식었으며, 탁해진 눈빛은 세상에 길들여졌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옛 친구가 불쑥 나타나면, 내가 잃어버렸던 '나'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잖아"라고 조용히 속삭여주는 듯하다.
그 시절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불안이 공존하는 기묘한 시간을 견뎌냈다.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면서도, 동시에 절대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느껴지던 날들. 눈앞에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오히려 우리를 스쳐 간 감정과 순간들은 더 선명하고 투명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던 절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불쑥 물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살고 싶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국에서의 20년은 미국에서의 기억을 이방인의 꿈처럼 낯설게 만들었다. 다시 그곳에서 살 용기가 내게 남아 있을까. 아니, 어쩌면 더 본질적인 질문은 '그곳에 내가 돌아갈 이유가 여전히 남아 있는가'였다.
결국 우리는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유목민인지도 모른다. 물리적인 고향뿐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온전히 품어주던 마음의 고향까지도 말이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가끔은 그 기억의 파편들만이 현재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일 테다. 현실이라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다가, 과거의 따뜻했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오늘의 고단함을 달래는 일. 그리고 아주 가끔 찾아오는 오래된 친구가 건네는 온기 어린 기억 한 점으로,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