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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Sep 18. 2020

지금, 전 세계 명품 재고는 한국으로

소비문화는 곧 그 시대의 자화상


전 세계 명품 재고는 한국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소비심리가 장기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소상공인 업계는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장은 일감이 줄어들어 불이 꺼진 지 오래되었고, 자영업자는 줄어든 손님으로 빈자리가 더 많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일주일에 3일만 일하거나 직원들을 감축하고 있다. 일감을 모아둔 뒤 한 달 일하고 한 달을 쉬는 업체도 있다. 아직 폐업 신고는 안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 업체가 꽤 된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은 참담한 상황을 실감케 한다. 그런데 이런 현실과는 다르게 호황인 산업이 있다. 바로 명품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국내 명품 수요는 계속 증가 추세이다. 베인앤드컴퍼니가 이탈리아 명품 생산업체 연합인 폰다치오네 알타감마와 공동 작업한 '2020 상반기 럭셔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명품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5%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유로모니터 역시 올해 세계 명품 시장은 18%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한국 명품 시장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가 계속 늘어나다 보니 심지어 가격을 잇달아 인상하고 있다. 2020년 8월까지 백화점 주요 상품군 매출은 대부분 감소했지만 명품 매출은 되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증가했다.


명품 매출만 오르는 백화점들; 출처; 한국경제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2020년에 가격 인상을 결정한 브랜드만 샤넬, 고야드, 롤렉스, 루이뷔통, 셀린, 티파니, 디올, 페라가모 등 총 10여 개에 달한다. 특히 샤넬은 지난 5월 주요 제품 가격을 최대 20% 인상하면서, 인상 전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의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LVMH가 야심차게 인수합병을 추진하였다가 최근 철회한 티파니는 2020년 한 해 동안 가격 인상만 두 번했다. 마치 티파니가 인수합병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애꿎은 소비자들을 재물 삼아 급하게 매출을 끌어올린 인상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인상하는 이유는 본사의 가격 정책, 환율, 원가 상승, 인건비 상승 등 다양하지만 감소한 매출과 이익을 만회하기 위한 인상 가능성이 가장 크다. 마치 다른 국가에서 달성하지 못한 매출 목표를 국내에서 모조리 만회하겠다고 럭셔리 브랜드들이 작정한 듯하다.


펜디 바게트백; 출처: Fendi


펜디는 2020년 봄여름 시즌 '바게트백' 국내 물량이 동나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물품을 공수했다. 국내 판매 속도가 예년보다 빠르자 이탈리아 본사가 미국, 유럽에서 물량을 빼 한국에 배정했다. 까르띠에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과 싱가포르의 신상품 및 재고 입고 순위를 앞으로 변경했다. 말 그대로 전 세계 명품 재고가 국내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티파니 T1 컬렉션; 출처: 티파니


티파니앤코는 전 세계에 단 3개 출시된 2억 3000만 원 상당의 '티파니 T1 다이아몬드 초커 네클리스'를 한국에서 제일 먼저 선보였고 역시나 진열 즉시 판매되었다. 이렇게 명품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으로 물량을 넘기는 배경에는 그만큼 수요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명품

명품 소비 확대에 장년층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변화가 최근 감지되고 있다. 젊은 층이 주도하는 고각의 패션상품의 온라인 구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명품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하는 MZ세대의 명품 소비 욕구가 커진 것이 주효하다. 유명 연예인들은 물론 SNS 인플루언서들의 명품 착용을 보고 이를 따라 하고 싶다는 심리와 더불어, ‘플렉스(Flex, 사치품 구매에 큰돈을 소비하며 부를 과시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다.


2030 플렉스 소비 항목; 출처: 사람인


이전 세대는 명품을 ‘소장’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MZ세대는 그때그때 유행과 패션 스타일에 맞춰 ‘착용’하는 것이 차이다. 명품을 개인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으로 인지한다. 아직 구매력이 크지 않은 젊은 층들은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명품을 소유하려고 중고명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 익숙한 이들은 ‘중고’를 바라보는 관점도 기성세대와 다르다. MZ세대는 중고명품을 더 이상 남이 쓰던 낡은 것인 ‘유즈드(Used)’의 개념이 아니라 오래되어 더 희소하고 가치가 있는 ‘빈티지(Vintage)’로 받아들인다. 중고명품을 통해 자신만의 색과 멋을 표현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MZ세대들은 필요에 따라 중고명품을 사고파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과거에는 급하게 돈이 필요해 명품가방을 전당포에 처분했다면 지금의 중고명품 거래는 급전이 아닌 새로운 소비를 위한 자산의 현금화의 한 방법에 불과하다.


'전당포의 메카'; 출처: 헤럴드경제



이전 중고명품 거래는 구구스나 고이비토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주로 이뤄졌다면 젊은 세대들이 합류한 중고시장의 최근 트렌드는 역시 ‘온라인’이다. 많은 젊은 세대들이 기존의 중고명품 거래 매장 방문을 꺼리고 귀찮아하는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장 방문 횟수가 절대적으로 감소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플렉스'라고 하는 과시욕 문화도 명품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한 요소인데 중고명품 매장을 드나드는 모습이 외부에 노출되면 이러한 의도와 상충한다. 또한 결정적으로 매장마다 상품 수가 한정적이라는 점이 방문을 주저하게 만든다. 결국 여러 상품을 한눈에 보고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있는 온라인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소비문화 = 시대의 자화상

소비문화는 곧 그 시대의 자화상을 반영한다. MZ세대들이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명품 혹은 중고명품에 아낌없이 소유욕을 발휘하는 것은 어쩌면 암담한 현실을 부정하고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를 현시점으로 빨리 감고 싶은 욕구가 분출된 것은 아닐까? 질병과 테러 등 신변 위협, 공포에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삶이 위협받으면 '자기애'가 강하게 발현되고 저축의 의미가 반감되는데 결국 '티끌모아 티끌'을 체감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젊은 세대가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닌 지금 당장 아프고 허한 가슴을 달래줄 위로인지 모르겠다.


Wendy Her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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