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가지 무고가 증명되어도 사과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괴물
18년 동안 인사(HR)라는 외길만 걸어온 베테랑 지인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수많은 노사 갈등과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꺼낸 첫마디는 충격적이었다. 팀원들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당해, 이미 한 달째 회사 출입이 금지된 채 재택 격리 중이라는 것이었다.
더욱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 건 신고 건수였다. 무려 42가지의 혐의. 숫자가 주는 압박감은 대단했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라지만,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에게, 그것도 40건이 넘는 신고를 당했다면 이 사람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평소 그는 내가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냉철하게 진단해 준다고 믿었기에 나를 찾았노라 말했다. 나 역시 그의 기대대로 객관적인 의견을 주고자 사정을 다 듣기도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형, 예전에도 비슷한 갈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잖아. 회사를 옮긴 뒤에도 이런 구설이 반복된다면, 형의 실력이나 인품과는 별개로 형 특유의 철저한 업무 스타일이 상대에게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사는 건 아닐까?"
수년간 지켜본 그는 타인을 부당하게 대할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결백을 굳게 믿으면서도, 제삼자의 시각에서 갈등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과거의 일 역시 결코 감정적인 괴롭힘이 아니었으며, 업무 태도가 불성실한 팀원에게 실망해 사적인 교류를 줄이고 철저히 '공적인 관계'로만 대응했던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의 답변을 듣고 상황이 명확해졌다. 원칙주의자인 그가 견지한 '공사 구분'의 엄격함이, 관계의 온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뜻밖의 서운함이나 거리감으로 비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실체는 황당함을 넘어 기괴한 코미디에 가까웠다. 지인이 내민 42가지 신고 목록 중 압권은 단연 '잦은 미팅'이었다. 기업에서 팀장이 부하 직원과 업무 회의를 하는 것이 괴롭힘이라니, 그렇다면 월급은 왜 받는단 말인가? 알고 보니 미팅이 잦았던 이유는 명확했다. 팀원들의 업무 역량이 바닥을 기는 수준이라, 팀장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입에 넣어줘야만 조직이 굴러갔기 때문이다. 스스로 제 밥값도 못 하는 이들에게 업무 가이드는 '성장'이 아니라 '괴롭힘'으로 느껴졌을 테고, 성과 독촉은 '격려'가 아니라 '학대'로 들렸을 것이 분명하다.
백미는 따로 있었다. 신고자 중 한 명은 특정 업무의 인수인계를 무려 3년째 받고 있었다. 올림픽도 4년이면 준비가 끝나고, 강산이 변하는 데 10년이라는데, 대체 이 인물은 3년 동안 무엇을 인수한 것인가? 전임자가 퇴사하지 않고 보직 변경되어 뒤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침몰했을 부서였다. 거의 대통령 인수위원회급의 긴박함으로 5년 내내 배우기만 할 작정이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이 정도면 업무 의지가 없는 것을 넘어, 월급을 받는 행위 자체가 회사에 대한 기만이다.
결국 이들의 전략은 치졸했다. 자신들의 처참한 무능이 팀장의 꼼꼼한 성과 관리로 인해 탄로 날 위기에 처하자,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신성한 법적 보호망을 오염된 방패 삼아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실력을 키울 노력 대신 팀장을 매장할 각본을 짜는 데 머리를 쓴 그들의 행태는, 조직의 기생충들이 생존을 위해 숙주를 공격하는 비겁한 발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들에게 지인은 첫 번째 희생양이 아니었다. 이미 앞서 두 명의 베테랑 시니어가 동일한 수법의 허위 신고를 견디지 못하고 조직을 떠난 전례가 있었다. 이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보호망이 아니라, 눈엣가시 같은 실력자들을 차례로 제거해 온 학습된 사냥 도구였다. 이번 42가지 신고 역시 그 성공적인 연쇄 사냥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가장 경악스러운 사실은 사장과 신고인들 모두 법의 허점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이를 '무기'로 휘둘렀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조항과, 설령 무혐의가 나더라도 신고 내용 자체가 악의적임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무고'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을 그들은 영악하게 파고들었다.
신고인들은 이 법이 자신들을 어떠한 보복으로부터도 지켜줄 '철갑 갑옷'임을 알고 42가지라는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사장 역시 이 법적 방어막을 핑계 삼아 지인을 격리하며 사실상 조직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신고가 들어왔으니 절차상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비겁한 중립은 실상 악의적인 신고자들과의 묵시적 공조였다. 법은 선량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이들에게 법은 한 사람의 인생을 합법적으로 난도질할 수 있는 면죄부이자 퇴로가 없는 감옥이었다.
이러한 법적 공조 덕분인지, 한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라는 자는 사실관계 확인이라는 경영의 기본조차 망각한 채, 이들이 쏟아내는 감정적인 선동에 속절없이 휘둘렸다. 조직의 수장이라면 마땅히 갈등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실체를 파악하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했으나, 그는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18년 경력의 베테랑을 범죄자 취급하며 격리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진실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제 손에 피 묻히기 싫어 충직한 인재를 제물로 바치는 길을 택한 셈이다. 이는 기강 확립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무뢰한들에게 "이렇게 떼쓰면 팀장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확신만 심어준 꼴이 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18년 차 인사팀장이었다. 그는 격리된 채 홀로 42가지 혐의를 입증 자료와 대조하며 하나씩 해체해 나갔다. 메일 기록, 메신저 대화, 업무 일지라는 객관적 데이터 앞에서 일방적인 주장은 힘을 잃었다. 결과는 42건 전 항목 '혐의 없음'. 숫자로 몰아붙인 다수의 공세가 기록의 사실관계 앞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진짜 비극은 복귀 후에 시작되었다. 업무로 결함을 찾지 못한 사장은 사소한 생활 습관을 파고들었다. 급기야 어느 날은 '공용 그릇 미세척'을 문제 삼아 18년 차 전문가를 거세게 몰아세웠다. 하지만 정작 지인은 그날 사무실에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앞뒤 맞지 않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비루한 집착이었다.
경영 전략 대신 그릇의 위생 상태를 캐묻는 수장의 모습은 기업가라기보다 옹졸한 참견꾼에 가까웠다. 혐의 없음이 증명된 베테랑에게 사과하는 대신, 부재중인 날의 책임까지 뒤집어씌워 퇴사를 유도하려는 치졸한 압박이었다. 이 먼지떨이식 보복은 결국 조직의 수준이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증거였다.
조직의 냉혹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복귀 당시 "절대 그만두지 말라"며 어깨를 다독이던 글로벌 본사 임원의 따뜻한 위로는, 실상 유통기한이 정해진 정교한 연기에 불과했다. 지인이 신년 인사와 함께 당시의 격려에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서늘하게 안면을 바꿨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다. 단지 네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어서 그 말을 전했을 뿐이다."
인간적인 공감은커녕, 철저히 비즈니스적 효용 가치에 따라 위로마저 '외주'를 준 셈이다. 그 찰나의 순간, 지인은 자신이 조직 내에서 얼마나 철저히 고립된 섬이었는지, 그리고 이 거대한 시스템이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값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지 뼈저리게 목도해야 했다. 필요할 때는 '가족'이라 부르다가, 위기가 지나가면 '부품'으로 격하시키는 글로벌 기업의 세련된 위선은 사장의 졸렬한 지적질보다 더 깊은 상흔을 남겼다.
복귀 후의 상황은 더 참담하다. 42가지 거짓이 밝혀졌음에도 회사는 음해를 주도한 이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조직 내 파벌을 형성하고 동료를 매장하려 했던 자들은 아무런 페널티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위 신고가 방치되는 조직에서 정의나 원칙은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지인은 자신을 음해했던 이들과 매일 아침 불편한 공기를 나누며 '기괴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가해자들은 건재하고 피해자만 일상을 잃은 현실. 무고한 이를 짓밟으려던 자들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는 조직에서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이미 비극이다.
이러한 허위 신고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질병에 가깝다. 미국 직장괴롭힘연구소(WBI)의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괴롭힘 수법의 부동의 1위가 '저지르지 않은 실수에 대한 허위 고발'이라는 사실이다. 집단이 한 개인을 표적 삼아 고립시키는 '모빙(Mobbing)'은 피해자에게 전쟁 포로가 겪는 것과 유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남길 만큼 잔혹한 정신적 살인 행위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직장은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독려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되는 기이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의 숭고한 취지는, 역설적으로 무능을 가리고 권력을 찬탈하려는 이들의 가장 강력하고도 비겁한 무기가 되었다. 사실 관계를 가리기보다 목소리 큰 다수의 편에 서는 것이 편안한 경영진, 그리고 명백한 허위가 드러났음에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무능한 수장이 존재하는 한, 조직의 정의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원칙과 신의성실을 추구하는 직원은 '불편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음모와 왜곡된 감정을 앞세운 이들은 '보호받는 약자'로 둔갑한다. 정의가 상실된 일터에서 인재가 느끼는 무력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치졸한 암투와 방관뿐이다. 문제를 바로잡기보다 덮기에 급급한 리더십 아래에서 조직의 미래가 밝을 수 있을지, 씁쓸한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