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이유는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람이라는 환경 때문이다
"다음 회사는 어디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늘 화려하다. 더 높은 연봉, 글로벌 무대, 혹은 이름만 대면 아는 유니콘 스타트업. 이직의 이유는 각자의 커리어 목표만큼이나 미래지향적이고 입체적이다.
하지만 "왜 퇴사하나요?"라는 질문의 답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비슷하다.
이직이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이동이라면, 퇴사는 오늘을 견딜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오늘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업무의 난이도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이직은 기회를 보고, 퇴사는 한계를 본다.
흔히 급여가 적어서, 일이 힘들어서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라. 급여가 낮아도 나를 인정해 주는 리더가 있다면 버틸 명분이 생긴다. 일이 힘들어도 함께 구르는 동료가 있다면 전우애로 이겨낸다.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타는 나를 소모품으로 대하는 무례함과 신뢰가 무너진 관계다.
우리는 퇴사를 개인의 인내심 부족이나 적응 실패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의 관계는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직장은 하루의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착취당할 때, 우리 몸과 마음은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신호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버티는 것이 오히려 독이다. 따라서 퇴사는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망가진 환경으로부터 나를 구출해내는 가장 적극적인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퇴사는 무능함이 아니라 정상적인 반응이다.
현재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월급과 쌓아온 경력이 아까워 퇴사를 주저한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틀어보자. 정말 아까운 것은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시간과 무너져가는 자존감이다. 나쁜 관계 속에서 허비하는 시간은 경력이 아니라 경력의 손실이다. 여기서 버틴 시간이 아까워서 못 나간다가 아니라, 더 버티면 앞날까지 잃게 된다는 깨달음이 올 때 퇴사는 비로소 완성된다.
퇴사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무시당한 회의, 가로채기 당한 공로, 부당한 비난들이 켜켜이 쌓여 심리적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일어난다.
마지막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혹은 무심한 표정 하나가 마지막 지푸라기가 되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 그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인내의 근거들이 무너져 내린다. 아, 더 이상은 아니구나. 이 명료한 자각이 퇴사의 진짜 시작이다.
이력서에는 새로운 도전이라 적고, 면접장에서는 성장의 갈증을 말할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언어일 뿐이다. 속마음은 훨씬 더 본질적이다. 나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섞이고 싶지 않아서. 일터에서 인간다운 존중을 받는 삶을 회복하고 싶어서.
우리는 일을 찾아 모이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남고, 사람 때문에 떠난다.
퇴사는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감당해야 할 환경이 비정상적이었을 뿐이다. 회사를 떠나기로 한 당신의 결정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겠다는 가장 용기 있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