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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Dec 25. 2021

"대표님, 잘 지내시는 거 확실하죠?"

7년 차 스타트업의 생존을 넘어 성장을 목격하다

최근 꾸준하게 연락드리는 스타트업 대표가 있다. 취재는 이미 마쳤고 발행한 콘텐츠는 포털 메인에도 올라올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강남역을 지날 때면 잠시라도 좋으니 얼굴만 보자고 여러 번 문자를 보냈다. 여러 차례의 방문 시도는 결국 불발이 되었지만 집요하게 연락을 하였다. 연애하던 시절에도 이렇게 상대방에게 매달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왜 나는 딱 한번 만난 창업가에게 집착하는 걸까?'


그동안 많은 스타트업 대표를 포함하여 종사자를 인터뷰를 했지만 당시 그와의 인터뷰는 유독 무거웠고 버거웠다. 인터뷰 내내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셨고 그저 테이블과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수년 전 창업 초창기에 진행한 인터뷰 기사에 실린 꿈 많은 청년 창업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사업이 힘겹고 일상에 지친 사업가만 있었다. 마치 오랜 고난 끝에 절벽 앞에 서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조금 더 솔직하고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를 인터뷰한 마지막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그의 사무실 근처에서 미팅을 가졌고 다시 그에게 혹시 오늘 잠시라도 좋으니 보자고 문자를 보냈다. 그와 그의 회사의 생존을 확인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끈질기게 매달린 덕분인지 오후에 잠시 시간이 된다고 하였다. 덕분에 추운 겨울 강남역 주변에서 1시간 30분가량 배회하였지만 오늘은 꼭 그의 안녕을 확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출처=JÉSHOOTS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모습은 예상과는 다르게 이전보다 밝았다. 그를 향한 나의 첫마디가 반사적으로 나왔다.


"대표님, 잘 지내셨어요? 연락이 쉽지 않아 제가 정말 걱정했어요."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덕분에 잘 지냈어요. 그때 써주신 콘텐츠 덕분인지 이후 투자유치도 잘 되어 좋은 파트너사를 확보하게 되었어요."


"다행이네요. 저는 대표님과 인터뷰 후 마음이 내내 불편했어요.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대표님이 혹시나 이후 모든 걸 내려놓으면 어쩌나 혼자 고민하고 끙끙댔어요."


너무 기쁜 나머지 내면 깊숙이 꾹꾹 눌러두었던 솔직한 심정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서 나는 몇 년 전 인터뷰 기사에서 보았던 젊은 창업가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전에 그를 찾아왔었던 콘텐츠 제작 외 또 다른 이유를 하나 더 말씀드렸다.


Sora Shimazaki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사실 그때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생각한 서비스의 핵심기능 3가지를 모두 구현한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나름 혁신적이다고 생각했던 기능들을 일찍이 모두 실현한 스타트업을 본 것도 충격이었는데 그럼에도 사업이 순조롭지 않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좋은 기술과 서비스를 가진 스타트업이 도대체 왜 오랜 기간 침체기를 거치고 있는지."


"오, 정말요? 그래서 그 당시 인터뷰를 하실 때 이 쪽 분야에 대해 꽤 이해를 하고 계셨고 말이 잘 통했던 거군요."


예정에 없던 나의 고백으로 그는 순간 놀랐지만 그의 다음 발언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그래서 말씀인데 저희가 곧 투자금이 들어오는데 저희 스타트업에 합류하여 같이 회사를 성장시켜보는 것은 어때요?"


ROMAN ODINTSOV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대표님, 이런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실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게 너무 감사하네요.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고요. 지금은 깊게 고민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제안하셨을 수 있으니 더 고민하셔도 좋고 그 결과 제안을 철회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대표님과 서비스가 생존을 넘어 성장을 하는 것을 밖에서 봐도 충분합니다."


사실 그의 제안도 감사했지만 혹여라도 그가 충동적으로 내뱉었다면 그로 인해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살아있음은 물론 건강함을 확인했으니 올해 걱정이 하나 줄었든 것으로 충분했다. 벼랑 끝에 선 스타트업 창업가들 만나면서 감명을 받기고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 수명이 짧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그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도 데스밸리를 거치는 수많은 창업가들은 지금이 연말인지 연초인지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모든 의혹과 의심이 곧 해소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고 밤을 설치게 만드는 고생과 고민이 일시적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서있던 한 창업가가 새로운 기회를 찾은 것을 보면 끝까지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는 창업가만이 긴 터널의 끝에 다다르는 것 같다.


Kasum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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