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는 'who gives a crap'
때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한 해이다. 혹여라도 공감할 수 없다면 초등학생들이 토요휴업제 전면 도입으로 인해 토요일에는 등교를 하지 않게 된 첫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는 비영리 기업에서 다니던 세 친구가 세상을 구하겠다고 모였다. 그리고 무리 중 두루마리 화장지의 두께만큼 키가 더 큰 사이먼이 말했다.
"야, 너네 전 세계 인구 중에 화장실을 이용 못하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사이먼, 요즘 세상에 화장실이 없는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옆에서 듣고 있던 또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나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전 세계 인구 중 약 30%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고 하던데."
"맞아. 24억 인구가 화장실이 없어서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 3명 중 1명이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일을 보고 심지어 손도 씻지 못하지.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야."
세 남자는 화장실의 부재로 인해 인류가 겪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우선 화장실이 없으면 위생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없어서 질병이 쉽게 퍼질 수 있다. 아프리카 남부의 경우 손만 잘 씻어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가 반이 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년 1400명의 5세 이하의 유아와 영아들이 위생 관련 질병으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에는 큰 장애물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화장실이란 주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불쾌하고 불편한 상상이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들은 화장실이란 주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아예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화장실 내 결코 빠질 수 없는 한 요소를 생각했다. 바로 화장지였다.
'백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왜 화장지는 변하지 않는 거지?'
그들은 조금 더 색다른 화장지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화장실 위생에 무관심인 현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화장지 브랜드의 이름을 'Who gives a crap'이라고 정했다. 의미는 '아무도 신경 안 써'인데 여기서 'crap'의 의미는 똥이다. 아무도 똥에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심심했던 화장지에 알록달록한 색을 더하고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슬로건을 넣기 시작했다.
"모든 뒷정리는 소중하다."
"화장지가 너무 부드러워서 엉덩이가 웃게 될 거야."
영국과 아일랜드의 4인조 보이 밴드 '원디렉션'의 막내인 해리 스타일즈는 젠더벤딩 스타일을 선보이며 많은 화제가 되었다. 젠더벤딩은 기존의 성 역할 바꾸기 혹은 성 역할 파괴를 말한다. 'who gives a crap'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리 스타일즈의 젠더벤딩 패션 포스팅과 자신들의 제품을 색맞춤을 한 포스팅을 올리는 센스를 발휘하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댓글에는 다음에는 BTS 버전을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도 있었다.
이 브랜드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를 보면 단순히 제품 이미지를 올리기보다는 소비자들의 댓글과 공유를 유발하는 포스팅이 주를 이룬다. 화장지와 관련한 모든 주제에 관심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다수의 브랜드가 소셜미디어를 단순히 일방적인 공지 채널로 활용하는데 'Who gives a crap'은 고객과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채널로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였다. 아래 포스팅을 보면 신체의 특정부위에 진심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정기적으로 마치 유명 아티스트인 것 마냥 특별 에디션을 내며 정기적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덕분에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색은 더 진해졌고 이를 지지하는 팬덤은 더 굳건해졌다. 그중 스페셜 에디션 '화장실을 찾아서'는 1987년 발매된 이후 전 세계 32개국 언어로 번역돼 약 6천500만 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월리를 찾아서'를 연상시킨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이 부족한 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도 부족함이 없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재치 있고 직설적인 문구는 소비자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계획은 그저 유머러스한 슬로건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탐스나 봄바스는 각각 신발과 양말을 판매된 제품 수만큼 신발과 양말을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곳은 제품이 아닌 수익의 50%를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기부금은 현재 누적 90억 원을 돌파하였고 개발도상국에 화장실을 짓고 공중보건을 개선하는데 쓰이고 있다.
그들이 기부하는 비영리단체는 'Wateraid'로 물, 위생 및 위생에 중점을 둔 국제적인 비정부기구이다. 보통, 기부를 할 때 특정 프로젝트에만 자신들이 기부금이 쓰일 수 있도록 설정을 하는데 'who give a crap'은 설정을 하지 않고 기부를 했다. 'Wateraid'가 이에 대해 묻자 'who give a crap'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의 지원은 조건이 없어요. 왜냐하면 케냐의 시골 캄보디아 마을 주민들이나 농부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Wateraid'와 같은 기구를 통해 도움이 가장 시급한 곳에 기부금이 쓰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who give a crap'이 가장 잘 하는 일, 즉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들은 제품 자체에서도 품질개선에 신경을 쓰고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선한 의도를 가진 사업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들의 주력제품인 화장지는 우선 100% 재생지로 만들어 친환경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화장지를 만들기 위해 P&G, 킴벌리클락 등 글로벌 생필품 기업들에 의해 27000여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현재는 대나무 펄프로 만들어 100% 자연분해가 되는 대나무 화장지도 제공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대나무라는 명칭에 '나무'가 들어가 목본식물(나무)로 이해하고 있는데 사실 대나무는 초본식물 즉 풀 종류에 속한다. 나무로 분류되려면 형성층이 있어 부피생장을 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대나무는 위로는 자라도 옆으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비 온 뒤에 여기저기서 죽순이 금세 돋아나 자라나는 것에 비유하여 여기저기서 무언가가 마구 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대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화장지로서 더 이상적인 소재인 이유는 워낙 빠르게 자라는 생육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반 나무로 만든 화장지보다 지구에 덜 미안한 마음으로 뒤처리에 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who gives a crap' 브랜드를 운영하는 굿굿즈는 현재 비콥(B Corp) 인증까지 받았다. 비콥 인증이란 기업의 사회성과 공익성을 측정할 수 있는 국제적인 인증 도구이다. 단순히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평가하는 것이 아닌 기업이 창출하는 긍정적인 사회적, 환경적 성과를 전반적으로 측정하는 유일한 인증제도이다. 현재 60개국 150개 의 산업에서 3,000개가 넘는 기업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큰 기업, 파타고니아, 더바디샵, 일리도 비콥 인증을 받았다.
누구나 좋은 제품을 생각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수익의 반을 기부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처럼 행동으로 증명하는 기업은 드물다. 이처럼 이타적인 미션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작은 일부가 아닌 기업의 설립 근간에 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앞으로도 'who gives a crap'과 같은 소비자의 공감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선한 미션을 가진 브랜드들이 계속 등장하여 경종을 울릴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