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에, 네슬레의 품 안에서 빛나는 예술적 감성
90년대 초, 페리에가 '벤젠 스캔들'로 위기에 처했을 때, 네슬레는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1992년 페리에의 주가가 최저점에 달하자, 네슬레는 빠르게 페리에를 인수하여 자신의 제품군으로 포함시켰다. 네슬레는 거대한 규모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페리에가 적자를 내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지원해줄 수 있었다. 사실, 페리에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후 12년 동안 네슬레의 수익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페리에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였다. 페리에는 네슬레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브랜드 정체성과 시장 전략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페리에의 시장 점유율은 8.3%(Statista 기준)로, 30년 전의 15%에서 크게 하락했지만, 페리에는 여전히 세계적인 스파클링 워터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지키고 있다. 브랜드 인수와 매각이 잦은 네슬레가 왜 수익성이 낮은 브랜드를 오랫동안 손보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아마도 페리에가 가진 힙하고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가 이유일 것이다. 네슬레가 갖지 못한 페리에만의 독특한 감성 말이다.
페리에는 예술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독보적인 브랜드를 구축해 왔다. 1980년대 앤디 워홀이 페리에의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광고계를 놀라게 했고, 2013년 15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작품을 병에 인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도메르게, 사비낙, 쟝 끌로드 포레스트 등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화려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그래픽 아티스트 베르나르 빌모의 작품 '라 팜 누아르(흑인 여성)'는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페리에를 1위 브랜드로 만들어줬다.
페리에는 예술의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해왔다.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라틀라스(L’Atlas)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아네스 베(Agnès B) 역시 페리에와 손을 잡았다. 2015년 라틀라스는 페리에의 병과 캔에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입혀 현대적인 감각을 선사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었던 협업은 일본의 대표적인 네오 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작업이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예술과 상업이 자연스럽게 섞이길 바라며 시대가 바뀌면서 경계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 때문에 비난받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시도 때문에 제게 돌을 던지다 해도 괜찮습니다. 제게는 단단한 모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페리에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한정판 ‘Perrier x MURAKAMI’를 출시했다. 병 전체에 무라카미 다카시의 상징적인 캐릭터, 카이카이 키키가 그려져 있어 페리에의 병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다.
또한 페리에는 한국의 신진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페리에 그린 보틀을 통해 페리에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표현했다. 한국 예술 문화의 트렌드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페리에를 보다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아티스트들의 자유분방하고 키치한 해석은 브랜드에 신선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더했다.
"시대가 바뀌고 소비자도 바뀌지만, 페리에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