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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Apr 20. 2022

어쩌다 프로N잡러가 된 스포츠 아나운서

아나운서, 전문 MC, 모델, 컨설턴트, 학생으로 사는 정혜민의 이야기

창업진흥원에 외부 기고를 하면서 영상 콘텐츠를 담당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스타트업을 같이 취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나중에 카톡이 왔다.


"잘 계시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논문을 위한 설문조사를 요청드리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바쁘시겠지만 부탁드려요. 졸업... 하고 싶어요❤"

우리가 벌써 하트를 주고받을 사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처에 민감한 내 영혼을 보호하고자 더 이상 상상은 접어두었다. 도와줄 방법을 찾다가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카톡방에 지인 논문에 필요한 설문이라는 설명을 남겼다. 역시나 현실은 냉혹했고 졸업이 간절한 대학원생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직장인은 없었다. 그래서 책으로만 배운 그로스해킹(창의성, 분석적인 사고, 소셜 망을 이용하여 제품을 팔고, 노출시키는 마케팅 방법)을 시도해봤다. 설문조사 요청을 보강하는 문자를 남겼다.


"앞서 요청드린 대학원생 설문조사에 참여하는데 참고하실 수 있도록 대학원생의 카톡사진을 남깁니다."


그로스해킹이 제대로 작동을 하였는지 그녀는 그 후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로부터 식사대접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상당히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였다. 신문기사에서만 보았던 프로N잡러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혜민님, 인터뷰 콘텐츠 한번 하는 게 어때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Q. 간단하게 3문장 혹은 200자 이내로 본인소개 부탁드려요.

이 질문이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3행시로 제 소개를 해볼게요. 운을 한번 띄워주세요. (당황했지만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인 것처럼 응했다.)


 - 정말

 - 혜(해)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고

 - 민하지 않고 고고고 하는 정혜민입니다.


(손발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기능상 문제는 없는 듯하여 정형외과 예약은 미뤘다.)


프로N잡러 정혜민, ⓒ정혜민


Q. 학창시절에 정혜민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당시 지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중고등학교 때 저의 별명은 4차원 혹은 악바리였어요.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데 알고 보면 저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다소 독특한 사고를 한다고 친구들이 말해줬어요. 물론 저의 그런 면은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친구들에게만 편하게 공유하는 편이에요. 악바리라는 별명은 제가 일단 뭐 하나 시작하면 쉽게 포기를 안 해요. 어떻게든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하고 밤에 잠이 와요.


대학교 때는 주위에서 소신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유하고 맞춰줄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소신 있는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애할 때도 저는 저를 변화시키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상대방도 저로 인해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요. 서로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전 좋다고 봐요.

 

Q. 체육대학을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 물리를 선택해서 공대를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공대를 지원했는데 전부 떨어졌어요. 혹시 몰라서 지원했던 보건 계열의 학과에 붙었는데 너무 가기 싫었어요. 그래서 머리를 싹둑 자르고 부모님께 재수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때 저희 어머니가 저를 빤히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혜민아, 너는 재수를 해도 안 돼. 재수는 평소 공부를 잘했는데 수학능력평가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이들이 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 너는 수능에서 컨디션도 좋았고 찍은 것도 다 맞았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거야.”


사실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크게 낙담하거나 상처받지 않았어요. 결국, 부모님과 상의한 결과 반수를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재수에 대한 결의로 커트한 머리는 일주일 만에 미용실에서 당시 20만 원 주고 붙임머리로 다시 붙였는데 이후 탈모가 와서 고생했어요. 그렇게 붙인 머리를 찰랑거리며 학교에 다녔는데 역시나 수업이 적응이 쉽지 않았어요. 대학교 수업보다 봉사활동 등 대외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며 계속 겉돌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호주에서 잠시 살았는데 당시 너무 만족스러웠고 행복했어요. 귀국하고 제가 마음의 병이 생겼을 정도로요. 그 당시 심적인 스트레스로 10kg 이상 몸무게가 줄며 건강이 나빠져 결국 자퇴를 결정했어요.


그런데 막상 등교하지 않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래서 건강을 회복할 겸 운동을 시작했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자라면서 운동을 꾸준히 했더라고요. 중고등학교 때는 검도를 5년 했고 태권도도 6년 정도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운동을 너무 좋아하니 '운동 관련된 일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길로 체대로 편입을 결심하고 부족한 학점은 학점은행제를 통해 채우고 입시 체육을 1년 정도 준비했어요.


프로N잡러 정혜민, ⓒ정혜민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아 체대 출신인 친구들보다 배는 노력을 했어요. 예로, 윗몸일으키기를 원래 제가 한 개도 못했는데 정말 죽도록 연습해서 2분에 135개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1등급이 될 정도로 하니까 덤으로 복근까지 생겼어요.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아령을 들고 쪼그려 뛰기로 올라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몸을 혹사하다 보니 나중에는 무릎 연골도 닳고 디스크에 발목 인대도 손상되었어요. 그렇게 이를 악물고 1년 동안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편입을 준비해서 체대에 갈 수 있었어요. 제 인생에서 그렇게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머리와 몸을 동시에 그렇게 혹사한 적은 처음이었어요.


Q. 아나운서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시작하는 편이에요. 고민하는 시간에 직접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카메라 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방송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특히 관중들의 함성과 선수들의 긴장감이 전달되는 경기장 직관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현장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경기 종료 후 수훈선수를 인터뷰하는 김보경 아나운서를 보고 그때 딱 떠올랐어요.


‘아! 스포츠 아나운서! 그거라면 내가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겠다!’


스포츠 아나운서 정혜민, ⓒ정혜민


그 후 고민하지 않고 바로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Q. 다양한 프로그램에 아나운서, MC, 리포터로 참여하였는데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들이 있을까요?

제가 스포츠 아나운서를 시작할 무렵인데 대학 스포츠 협의회에서 활동할 때였어요. 그때는 아직 미숙해서 실수를 종종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시합 전 선수들이 무척 예민해져서 최대한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극도로 조심해요.


선수 인터뷰 중인 스포츠 아나운서 정혜민, ⓒ정혜민


주위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는 어떻게 선수들 이름을 다 외우냐고 질문을 많이 하세요. 처음에는 등번호와 이름을 매칭하지 못해서 실수하기도 했어요. 보통 인터뷰 전 각 팀의 구성원들은 물론 전략에 대해 꽤 오랜 시간 연구를 해요. 그래야 경기를 진행할 때 감독의 선수 교체 목적을 이해할 수 있고 작전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죠. 보통은 해설위원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스포츠 아나운서 역시 경기와 선두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좋은 질문을 할 수 있고 해설위원 혹은 인터뷰 대상자로부터 좋은 답을 끌어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배구경기라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역대급 대혈투였는데요. 1세트부터 시소게임이 이어졌습니다. 2세트도 근소하게 앞서다 상대편의 14번 선수의 공격과 서브에이스로 균형을 맞춘 후 이후 시소게임이 이어졌고요. 하지만 20번 선수의 블로킹으로 세트를 잡으며 세트스코어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경기가 길어져 체력적으로 힘드실 것 같은데 작전타임 때 어떻게 풀어가셨는지요?”


그렇게 선수는 물론 팀의 전략에 대해서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선수들 이름이 자연스럽게 외워지더라고요.


감독 인터뷰 중인 스포츠 아나운서 정혜민, ⓒ정혜민


가장 힘든 것은 질문지 만드는 거였어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고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질문 내용이나 경기 결과에 따라 바뀌거든요. 스포츠 아나운서를 하면 단순히 경기 중계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 대한 질문지도 계속 신경을 쓰고 있어요. 사실 경기의 결과는 알 수 없기에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해 대비를 해야 돼요. 그리고 어떤 선수가 인터뷰에 응해줄지 알 수 없기에 경기에 참가한 선수별로 예상 질문을 준비하고 경기의 내용에 따라 다시 수정해요. 그래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어요.


Q. 난데없이 중앙대에서 창업학 석사를 하였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의외의 결정을 했다고 보시는데 저는 사실 항상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언젠가 꼭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체대에 입학하고 방송을 했지만, 사업에 대한 고민과 갈증은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였는데 창업학 석사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제 꿈을 실현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업학 석사과정에 진학을 하게 되었죠.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시작한 학생 정혜민, ⓒ정혜민


Q. 컨설턴트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컨설팅 사례는 무엇이었나요?

강원도 소상공인 컨설팅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2년 동안 강원도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컨설팅을 진행하였는데 약 300명의 소상공인들의 애환을 직접 보고 들으며 그분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제가 강원도 내 막국수 전문점만 7곳을 방문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곳은 동치미 국물에 직접 100% 메밀면을 뽑는 곳이었어요. 어머니가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몸이 편찮으셔서 따님분이 운영하고 계셨어요. 이후 제가 거리가 다소 먼 다른 지역에서 컨설팅을 진행하는데 제가 예로 좀 전의 막국숫집 사례를 들었더니 막국숫집 1대 사장님의 어렸을 적 친구분이시더라고요. 그분이 말씀하시길 막국숫집 어머니가 학창 시절 비록 학구파는 아니었지만, 손맛 하나는 끝내주었고 특히 막국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분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데요.


"이럴 거면 막국숫집이나 하나 해봐"


그런데 정말 그렇게 오랜 기간 막국숫집을 운영할지 몰랐다고 했어요. 강원도가 땅은 넓지만, 그곳에 사시는 분들이 촘촘하게는 아니더라도 느슨하게나마 모두 연결되어있는 것 같았어요.


소상공인 컨설턴트 정혜민, ⓒ정혜민


Q. 다양한 직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N잡러가 되겠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거 바로바로 하다 보니까 어느새 다양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종종 주위의 친구들이 한 분야에 장기간 종사하며 전문성을 쌓아가는 것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굳이 지금의 삶의 방식을 사회 규범에 맞추어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일이 지겹게 느껴지지 않고 외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이 아닌 제가 중심인 삶을 살다 보니 저의 시간이 소중함을 알기에 더욱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의뢰받은 일도 주어진 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해서 임하게 돼요.


방송인 정혜민, ⓒ정혜민


다행히 저희 부모님은 너무 좋아하시고 지지해주세요. 아마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지금도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외부의 의견이 필요할 때면 구글보다 부모님을 먼저 찾아요. 사실 창업학 석사과정도 아버지가 먼저 추천을 해주셨어요. 어머니는 정말 객관적인 피드백을 여과 없이 해주세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고 다방면에 관심 있는 저의 성향도 잘 이해하고 계셔서 제가 너무 다양한 일을 하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면 바로 말씀하세요. 덕분에 진행 중인 업무의 우선순위를 계속 재설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Q. 유튜브에도 출연하였는데 목적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사실 별다른 목표는 없었어요. 기존에 없는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여자 프로축구단은 물론 여자 아마추어 축구가 조금 더 활성화되지 못하는 부분이 항상 아쉬워 축구를 좋아하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모여서 축구단을 만들게 되었어요. 구단주는 YTN의 최영준 아나운서로 남자분이었어요. 아나운서라는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재밌는 콘텐츠를 제작해보고 싶었죠. 지금은 '골 때리는 여자'가 많은 애청자들을 확보하고 여자축구가 많은 관심을 받는 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사실 시작한 시기만 보면 저희가 먼저 시작하였어요.


유튜브에 출연한 유튜버 정혜민, ⓒ정혜민


유독 기억나는 촬영은 당시 초등학생들이랑 시합을 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렇게 승부욕이 강한지 몰랐어요. 하마터면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어요. 아쉽게도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더 이상의 유튜브 영상 촬영은 어렵게 되었고 모두 본업에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코로나19가 안정화되면 다시 해보자고 멤버들과는 논의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여축시대' 구단주 옆에서 사회생활하는 유튜버 정혜민, ⓒ정혜민


Q. 축구 관련된 프로그램이 유독 눈에 띄는데 스포츠 중 축구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사실 저는 농구와 배구를 훨씬 좋아해요. 농구는 진행속도가 정말 빨라요. 축구는 득점을 많이 해봐야 4골 혹은 5골인데 농구와 배구는 두 자릿수의 점수가 나오죠. 그리고 실내경기라서 타격 소리가 너무 잘 들려요. 공이 바닥에 튕기는 소리, 공이 손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관객들의 함성 등 다양한 소리가 선명하게 전달돼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체대 졸업생 정혜민, ⓒ정혜민


Q. IR피칭 전문 강사로도 활동 중인데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석사과정 중 IR과 피칭(발표)에 대한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특강을 듣고 더욱 관심이 생겨서 특강을 해주신 강사님에게 연락을 드리고 배우고 싶다고 무작정 매달렸어요. 알고 보니 강사님이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IR 작성부터 피칭까지 컨설팅을 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강사님처럼 될 수 있냐고 묻고 또 물었더니 일단 강사 과정을 수료하면 그 후에는 실무를 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 분야에 관한 관심이 생겼는데 강사님이 마침 잘할 것 같다고 말해주셔서 겁 없이 뛰어들게 되었어요.


여러 스타트업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사업발표(피칭)을 위한 피칭덱을 효과적으로 구성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스타트업의 비전을 외부인에게 선명하게 전달할지 창업자와 같이 고민하고 논의의 결과를 피칭덱(투자유치 발표자료)의 구성에 녹여내죠. 의뢰를 주시는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업계 그리고 내세우는 핵심 기술력이 다르다 보니 매번 업과 IT기술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스타트업 경진대회 진행하는 프로 MC 정혜민, ⓒ정혜민


Q.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실제로 창업을 해볼 계획은 없나요?

저는 창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요. 오늘 아침에도 제가 가지고 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벤다이어그램도 그리고 수익모델과 마케팅 전략도 세워보고 했어요. '어떻게 하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매 순간 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창업하기 앞서 조금 더 체계 있는 기업에서 실무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해요. 스타트업들을 컨설팅하다 보면 창업자가 회사 경험 없이 바로 창업을 한 경우, 체계가 없거나 체계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해 사업이 커질수록 조직 내 잡음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봐요. 1인 창업이 아닌 이상 구성원들과 관계가 무척 중요한데 기업의 구성원으로 근무하며 미리 경험하고 체득할 수 있다면 미래에 창업했을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Q. 기자, 리포터, MC, 아나운서, 컨설턴트, 학생 중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저에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에요. 자신 있게 아나운서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아나운서를 평생 하기 위해서 다른 나머지를 모두 하는 거라고 보셔도 무방해요. 소상공인이 되었든 아니면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되었든 저는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아마 지금의 ‘유퀴즈’와 유사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더 좋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해요.


Q. 아나운서를 커리어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

너무 틀 안에 갇혀 미래를 고민하거나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플랫폼도 다양하고 방송 매체도 많아졌어요. 꾸준하게 문을 두드리면 결국엔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방송을 할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다면 지속해서 그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언젠가 그 분야에 관련한 방송을 할 기회가 올 거로 생각해요. 그래서 저 역시도 창업에 관한 관심이 크기에 계속 경험을 쌓고 있어요. 지금 당장은 창업자를 인터뷰하는 방송을 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제가 적임자가 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만들고 있어요.


아나운서 정혜민, ⓒ정혜민


아나운서는 단순히 대본을 그대로 읽는 꾀꼬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실과 이상을 잇는 다리이자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더 유연하고 흡입력 있는 창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Q. 프로N잡러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

일전에 오은영 박사님이 방송에서 “일반적으로 숙제나 일을 미루는 습관을 지닌 이들을 보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잘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안정적인 직업이 아닌 프로N잡러를 고려하는 분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분들이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다양해서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계속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는 것도 방법이고 그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1964년 “문학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잘못”이라며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가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다”라는 말을 했어요. 우리 인생에 정해진 것은 탄생과 죽음뿐이니 그사이는 우리가 계속 기회를 창출(Creation)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성공에만 성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도 성장이 있으니 끊임없이 도전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잡을 만들 것 같아요. 이게 어쩔 수 없는 저의 숙명인 것 같아요. 지금 아나운서, 전문 MC, 모델, 강사, 컨설턴트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창업을 하게 되면 경영인이 추가되겠죠. 이외 준비하는 소설도 있고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있어요. 앞으로도 꿈꾸는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더디더라도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것 같아요. 꿈이 있는 지금이 행복하고 꿈 실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내일이 기대가 돼요.


프로 N잡러 정혜민, ⓒ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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