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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Apr 13. 2022

서른은 도전하기 가장 좋은 나이라고 말하는 마케터

'월간서른'의 기획자이자 천상 마케터인 강혁진의 이야기

어느 날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름을 가진 한 분이 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의 이름을 찬찬히 되씹어 보니 마케팅 사례 분석을 공유하는 마케팅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었다. 그는 바로 마케터들의 마케터라고 불리는 강혁진이었다. 그렇게 그와 의도치 않게 온라인에서 느슨한 연대를 이어오던 중 그의 충격적인 선언을 접하게 된다.


"저와 함께 할 회사를 찾고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 중입니다.)"


그간의 프리랜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기업으로 급여수급자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그의 지난 발자취를 참고하였기에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이 너무 궁금했다. 주저할 틈 없이 그에게 바로 메신저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강혁진님. 포스팅은 잘 보고 있었는데 기회가 되면 차나 식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답이 왔다.


"안녕하세요! 송락현님 인터뷰를 시작으로 저도 종종 글 보고 있었어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후, 합정의 공유사무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책을 3권이나 출간한 작가이자 각종 강연을 진행한 언변의 달인인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밑도 끝도 없이 질문들을 뿌려보았다.




Q. 간단하게 3문장 혹은 200자 이내로 본인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사람 모으고 일 벌이는 걸 잘하지만 사실 아내와 함께 여행할 때가 가장 행복한 강혁진입니다. 


*작가 도움말: 이 질문을 드릴 때 이렇게 한 문장에 자신의 정체성을 응축해서 소개한 분은 그가 처음이었다.


강혁진, ⓒ월간서른


Q. 토익성적이 만점에 가까운데 혹시 해외에서 장기간 거주하셨나요?  


저는 순수 토종 한국인이에요.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은 없지만 영어를 좋아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대학교를 토익 전형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토익성적으로 입시를 준비하겠다고 했더니 당시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선생님들도 토익 전형에 대해서 전혀 모르셨고 반대를 하셨죠.


“혁진아, 토익으로 대학을 간다는 게 말이 되니?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야?”


제가 외려 선생님들에게 토익 전형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설득을 하였어요. 덕분에 저는 평택이 집이었는데 정규 수업이 끝나면 토익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서울로 학원을 다니기도 했죠.


그렇게 토익시험을 준비하고 1998년 삼성역 경기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토익시험을 보는데 당시 미성년자에 대한 신분증 규정이 없었어요. 학생증을 내밀었더니 감독관이 어쩔 줄 몰라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시험을 다 보고 나오려는데 같이 당시 시험을 봤던 누나 형들이 주위로 몰려와서 제 나이를 물으며 상당히 신기해하셨죠.


2019년 연령별 토익 응시율, ⓒYBM


그런 노력 끝에 제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자 이후 학교에 공식적으로 토익반이 만들어졌고 후배들이 토익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했어요.


Q. 2008년 프랑스 파리 지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셨어요. 넷플릭스의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연상되는데 강혁진님의 파리 생활은 어땠나요?

  

찌질했어요. 돈이 없었거든요. 무역협회에서 대학생을 선발해서 전 세계로 보냈는데 저는 파리로 가게 되었어요. 당시 월급이 국내에 있는 통장에 한화로 입금되었는데 당시 유로가 거의 2천원 하던 시기여서 환전을 하면 빠듯했어요. 미용실에서 머리 만지는데 거의 5만원 낼 정도였어요. 그래서 3개월 동안 머리도 자르지 않고 매일 도시락 싸가지고 다녔어요. 맛집은 둘째치고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무역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일도 배웠지만 많이 혼나기도 했는데 힘들어서 몰래 운 적도 있어요. 그래도 샹젤리제 거리를 걷고 개선문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가시더라고요.


샹젤리제 거리에서 본 개선문


Q. 인턴 이후 첫 직장이 BC카드인데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업무를 담당하였나요?


저는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취업준비를 하며 100개 기업에 지원하였는데 금융권 중에는 현대캐피탈과 BC카드만 원서를 냈어요. 그런데 모두 떨어지고 BC카드만 최종 합격되었어요.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BC카드에 입사하였죠. 복지나 처우가 좋다는 것은 입사하고 알았어요.


BC카드 서초사옥, ⓒ비씨카드


입사 후 담당한 업무는 BC카드의 소셜미디어 채널이었어요. 2009년부터 트위터라는 소셜미디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당시 기업 내부에서도 운영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마케팅팀에서는 선배들이 낸 기획안이 벌써 두 차례나 내부결제에서 반려가 되었어요.


트위터, ⓒ twitter


그러다가 막내인 저에게 해당 건이 넘어왔는데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저의 기획안이 일사천리로 승인이 되어서 제가 트위터 채널을 맡게 되었어요. 10년 이상 연차가 차이가 나는 선배들이 저를 찾아와 설득의 비결을 묻기도 했죠.


“혁진아, 도대체 넌 어떻게 한 거냐? 뭐라고 했길래 한 번에 승인이 난 거야?”


지금은 기업들이 소셜미디어만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매체라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12년 전에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어요. 2010년도에는 ‘메트로’와 같은 무료로 배포하는 신문들이 상당히 파급력이 높을 때였어요.


과거 지하철 광경, ⓒ오마이뉴스


당시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분들이 무가지를 보고 두고 내리면 할아버지들이 지나가면서 수거해 갔어요.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보편화가 덜 된 시점이어서 무가지를 보는 분들이 상당했어요. 덕분에 노출률이 높고 광고 효과도 높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사내에 트위터를 새로운 광고 채널로 활용하자고 신입사원이 떠들고 다닌 거죠.


Q. BC카드 광고브랜드팀에서 브랜드 캠페인을 총괄하였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캠페인은 무엇인가요?


BC 스트리트박스(Street Box, 전원이 연결되고 무선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카드 결제가 가능한 이동형 팁 박스) 프로젝트가 가장 애착이 가요. 퇴사 직전 2년을 진행했던 캠페인인데, 그동안 제가 쌓은 경험들과 회사 생활하며 쌓은 관점을 총체적으로 잘 녹여낸 캠페인이었죠. 캠페인의 모티프는 홍대에 버스킹 하는 뮤지션들이 많고 공연도 활성화되고 있는데 청중들이 카드를 주로 쓰는 세대이다 보니 후원을 쉽게 하지 못한다는 것 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카드를 주로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도 후원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현장 카드 결제가 가능한 스탠드형 카드 결제기를 기획한 거죠.


BC 스트리트 박스 버스킹 공연, ⓒBC카드


미스틱엔터테인먼트와 협업을 하였는데 뮤지션 장재인, 에디 킴 그리고 조정치씨가 홍대 앞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캠페인 영상을 제작해서 전국의 CGV에 상영하기도 했죠. 이외 실제 인디밴드 열한 팀을 섭외해서 공연 영상 제작, 콜라보 앨범 발매, 연말 콘서트 기획 등 다양한 이벤트 및 프로모션을 진행하였어요.


하지만 브랜드 캠페인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남들 눈엔 허울 좋아 보이지만 효과가 잘 드러나지는 않아요. BC자체 예산이 아닌 BC카드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은행이나 카드사들이 내는 분담금으로 집행하는 만큼 일일이 회원사들을 만나고 마케팅 계획, 예산 운영 등 모든 걸 하나하나 소개했어요. 그리고 회원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꾸준하게 보도자료도 내보내고 다수의 시상식에도 출품을 하였어요. ‘&어워드’ 그랑프리, ‘IoT 이노베이션어워드’ 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자 프로젝트가 조금 더 힘을 받을 수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덜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하며 버틴 것 같아요.


BC 스트리트 박스, ⓒBC카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기자 나중에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먼저 저희를 찾아주셨어요. 하루는 BC카드 대표번호로 ‘BC스트리트박스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더라고요. 알고 보니 ‘마녀사냥’과 ‘효리네 민박’을 담당했던 정효민 PD가 JTBC의 ‘말하는 대로’라는 버스킹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BC 스트리트박스가 꼭 필요하다고 요청을 해온 거였죠. 강사들이 길거리에서 버스킹 강연을 하면 청중들이 BC 스트리트박스를 통해 카드결제로 기부하는 방식이었죠. 덕분에 저희는 광고비용을 들이지 않고 BC 스트리트박스를 인지도가 있는 방송 프로그램에 노출할 수 있었죠. 덕분에 BC카드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아 BC카드 CEO 표창을 수상하며 승진도 하게 되었어요.


‘말하는 대로’, ⓒJTBC

Q. 회사에서 나름 인정도 받고 승진도 잘했는데 왜 굳이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나요? 가족(부모님, 아내 등등)의 반대는 없었나요?

  

2016년 1월에 과장으로 승진하고 4월에 결혼을 했는데 6월에 퇴사를 했어요. 주위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 있어요.


“혁진아, 이제 과장으로 승진도 했으면 여유를 갖고 회사생활을 하면 되는데 왜 굳이 퇴사를 하냐?”


그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을 하였지만 그 와중에 쌓인 피로도는 쉽게 가시지 않더라고요. 사실 이후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여기서 더 근무하고 경력이 쌓이면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을까? 과연 더 성장할 수 있을까?’


회사라는 조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온전한 저로 살아나가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런 고민이 겹겹이 쌓여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고 아내와 상의를 하였어요. 그리고 아내가 말했죠.


“그래, 그럼 그만둬.”


아내가 반대한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지지해주었어요. 덕분에 회사라는 곳을 나와 온전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볼 수 있게 되었죠. 되돌아보면 퇴사라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이 퇴사를 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을 주면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직서, ⓒ인간 강혁진


Q. 퇴사 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었나요?

  

퇴사 직후 수입은 나쁘지 않았어요. 직장을 다닐 때만큼 버는 때도 있고 때로는 그 이상의 수입도 기대할 수 있었어요. 주로 강의를 통한 수익이 가장 컸어요. 마케팅 강의와 레고를 활용한 비즈니스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했어요. 이외 ‘월간서른’의 오프라인 모임을 운영하고 기업에서 발행하는 콘텐츠의 원고를 작성하며 또 다른 부수입을 만들었어요. 나중에는 ‘월간서른’이 상당히 성장하여 충분히 사업화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어요. 제 머릿속에만 머물던 생각들이 구현되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이룰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며 모든 상황이 변하며 제가 준비했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대면하는 자리가 사라졌고 기업들은 필수가 아닌 교육 커리큘럼을 취소하거나 온라인 방식으로 변경했죠. 수입은 코로나19 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미래가 불확실했어요. 수입이 즐어든 것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인생을 괜찮지 않다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여길 이유는 없었어요. 오히려 그 과정에서 저는 계속 성장할 수 있어서 스스로 만족스럽고 행복했어요. 물론 눈에 보이는, 남들이 인정하는 성과로만 평가받는 시대에 이런 과정을 묵묵히 지속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렇게 자신이 성장하는 경험들이 계속 쌓이면 그 사람의 가치는 분명 높아진다는 거예요.


강혁진, ⓒ월간서른


Q. 배민아카데미와 월간서른 콜라보 강연을 기획하셨는데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월간서른은 매월 연사를 모셔서 강연을 하는 모임이었고 그걸 제가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 포맷을 그대로 배민 아카데미에 옮겼어요. 배민아카데미의 성격과 찾아주시는 분들의 관심사에 맞춰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을 연사로 모셨어요. 첫 번째 달은  대기업 직장인에서 술과 책을 함께 즐기는 ‘책바’를 만든 정인성 대표, 두 번째 달에는 ‘도레도레’라고 하는 카페를 운영하시는 김경하 대표, 세 번째 달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을 운영하는 신경철 전무를 연사로 초빙했어요.


월간서른 x 배민아카데미, ⓒ월간서른


세 달에 걸쳐서 한 달에 한 명씩 각자가 운영하는 브랜드에 대한 얘기를 하였어요. 배민아카데미와 같이 기획을 하고 홍보 및 모집은 배민아카데미 채널과 월간서른 채널에서 동시에 했어요. 신청하신 분들이 입장하면 제가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잠시 진행방식과 일정을 설명드린 후 연사의 이야기를 40분에서 60분 정도 듣죠. 이후 30분은 제가 모더레이터로 Q&A를 진행하는 순으로 진행돼요.


사실 무료로 진행되기에 노쇼를 어느 20%~30% 감안을 해서 신청을 받는데 항상 몇 시간 만에 마감이 되고 참석하는 분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어요. 석촌에 있는 배민아카데미 강당에서 진행하였는데 매번 자리가 부족해서 추가로 의자를 둬야 할 정도였어요.


월간서른 x 배민아카데미, ⓒ월간서른


Q. 서른마켓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무엇인가요?

  

서른마켓은 일종의 플리마켓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월간서른을 진행하면서 강연 중 질문을 받기 위해 카톡방을 따로 운용을 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하나의 커뮤니티가 되었어요. 어느 날 그 카톡방에 글을 하나 올렸어요.


“플리마켓 해볼까 하는데 관심이 있는 분 계실까요?”


그랬더니 10명 정도 빠르게 회신을 주시며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그 후에는 공간도 섭외하고 외부 셀러도 모집하여 조금 더 규모를 키웠죠. 하루에 딱 8시간만 운영했는데도 하루에 900명 정도 찾아주셨어요. 판매하시는 분들 중 다시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어요.


서른마켓, ⓒ월간서른


Q. 요즘 직장인들이 부업으로 퍼블리, 폴인과 같은 매체에 기고하고 싶어 한다. 카카오, 폴인, 퍼블리와 제휴 콘텐츠를 기획하셨는데 이런 매체와 협업을 잘하기 위한 팁을 부탁드립니다.

  

질문이 너무 갑작스럽긴 한데 저는 글쓴이만의 콘셉트가 명확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엔 기획을 잘해야 하는데 독창적인 것이 결국 살아남고 롱런할 것이라고 봐요. 저는 ‘인간 강혁진’이라는 뉴스레터를 만들어서 인간 강혁진이 생각하는 얘기를 월간도 일간도 아닌 주간으로 만들어서 보내고 있어요. 75주를 보내자 책으로 출간해도 될 만큼의 분량이 나왔어요.


인간 강혁진, ⓒ인간 강혁진


그렇게 책을 출간 후 또 다른 프로젝트로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라는 곳을 만들어서 5명의 아이 아빠들이 육아, 멘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논의를 했어요. 아빠들이 육아일기 쓰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다양한 환경의 아빠들이 모여서 각자의 얘기를 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라고 봤어요. 5명 중 아들이 셋인 분도 있고 육아휴직 중이거나 다녀오신 분들도 있어요. 이외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에세이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있어요. 자녀들의 수부터 성별과 나이가 모두 다르니 다양한 시각을 서로 나눌 수 있었어요. 시작한 지 8 주 정도 되었는데 벌써 출간 제안도 받고 매거진 기고 요청도 받았어요. 심지어 육아 브랜드에서 협업 제안을 받을 정도로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어요. 저는 결국 이게 선명하고 명확한 콘셉트의 힘이라고 봐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


개인적으로 퍼블리에도 콘텐츠를 발행한 적이 있는데 글의 제목은 ‘회사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였어요.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인데 최근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꽤 많은 분들이 읽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폴인의 경우, 제가 ‘월간서른’에서 저자 인터뷰를 자주 했었는데 비즈니스 관련된 서적들이 많다 보니 폴인에 제안하여 인터뷰 내용을 텍스트화하여 시리즈로 발행하였죠. 이렇게 콘텐츠의 콘셉트가 명확하면 콘텐츠의 메시지 역시 선명하게 전달돼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퍼블리


Q. 책을 3권이나 쓰셨다. 3권이 전부 주제가 다른가요?

  

첫 번째 책은 ‘마케팅 차별화의 법칙’이라는 마케팅의 경영 경제로 분류되는 책이고 그거는 제가 마케팅 어벤저스라고 하는 팟캐스트를 6년 동안 진행하면서 ‘이거 우리 6년이나 했는데 뭔가 남겨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매번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례를 분석해주는 멤버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책으로 써보자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분이 흔쾌히 동의해준 덕분에 제가 출간 제안서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출간으로 이어질 수 있었죠.

‘마케팅 차별화의 법칙’


두 번째 책은 아는 지인의 소개로 출판사를 소개받아 출판사 담당자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어요. 앞으로 쓰고자 하는 책이 마케터로서의 에세이를 기획하고 있고 책의 대략적인 기획을 말씀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출간을 해보자고 말씀해주셨어요. 굳이 분류하자면 경영 경제와 자기 계발 그 사이에 위치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케터로 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책은 월간서른을 운영하고 있으니 30대에 대한 책을 써달라는 출간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자기 계발과 에세이 그 중간지점에 위치한 '눈떠보니 서른'을 쓰게 되었죠.


‘눈떠보니 서른’


Q. 책을 이렇게 부지런하게 출간할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인가요?  


딱히 비법은 없어요. 끊임없이 일을 벌이니까 관심을 가져주시고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스스로를 관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해요. 저는 저라는 사람을 표현해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제 안에 담기만 할 수는 없으니 저만의 방식으로 배출을 시키는데요. 저에게는 글이 제일 잘 맞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걸 명확하게 잘 정리해서 내보내면 거기에서 오는 쾌감이 있어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결국 공감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마케팅은 물론 커뮤니케이션도 잘하는 것 같아요.


Q. 페이스북에서 취업을 하실 거라는 포스팅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항간에는 월간서른이 30대를 위한 30대에 의한 30대의 이야기인데 강혁진님이 신체적으로 법률적으로 불혹에 들어서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사실 대학내일 사장이 20대 대학생은 아니잖아요? 뽀로로를 6살 아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이유식을 꼭 어린아이들이 파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30대를 위한 얘기를 꼭 30대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를 떠나, 30대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무엇보다 30대를 위한 채널이 하나 정도는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봤어요.


강혁진 페이스북


정작 ‘월간서른’을 내려놓은 이유는 따로 있어요. 저는 월간서른 그 자체는 매우 의미 있다고 믿었는데 좋은 일도 결국 지속 가능할 때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장에서 더 신나게 마케터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제게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월간서른은 나중에도 다시 할 수 있지만 조직에 속해서 도움을 주는 마케터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월간서른은 이제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건가요? 지난 수년간 동안 쏟은 시간과 에너지가 커 상당히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월간서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만든 브랜드를 내려놓는다는 게 엄청나게 큰 용기와 전환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큰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브랜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콘텐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에요. 이 모든 것들이 온라인에 남아있기에 현재 월간서른을 중단한다고 해서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든 자양분이었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 월간서른


저는 마케터로서 아직도 제가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기업이 맞닥뜨리는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저만의 해석과 관점으로 해결책 혹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런 생각이 확고해지자 바로 입사 지원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분명 저의 경험과 지식이 요긴하게 쓰일 곳이 반드시 있다고 믿어요.


Q.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월간서른이 꽤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콜라보 전용 브랜드를 만들 계획이었어요. 20대를 위한 미디어는 존재하지만 30대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는 없어요.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것은 40대와 50대이지만 사실은 그게 돈을 쓰는 주체의 의지나 주체를 위한 소비가 아닌 가족을 위한 소비가 많아요. 반면 30대는 자신을 위한 소비 혹은 자기 계발을 위한 지출이 커요. 저는 기업들이 대부분 20대와 30대 초에 집중하지만 저는 20대 중반부터와 40대 초반까지 자신을 위한 소비가 많은 구간에 조금 더 집중하는 브랜드가 된다면 충분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 월간서른


코로나19가 이렇게 장기화될 줄 모르고 연말에 성대하게 행사를 진행해보려고 진행을 맡아 줄 전문 MC도 알아보고 대규도 공간 대관도 기획하였어요. 음악 공연과 강연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 같은 행사를 꿈꿨죠. TED가 상업적인 면이 강하고 세바시는 자기 계발적인 부분이 크다면 월간서른은 상업적인 면은 물론 자기 계발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할 수 있다고 봤어요. 30대가 진정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로 가득 채울 계획이었죠.

 

Q. 전국에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한 말씀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시겠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다만 퇴사가 꼭 답은 아니에요.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는 게 중요해요. 내가 퇴사를 하고 싶은 건지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건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해요. 후자라면 그 수단은 퇴사밖에 없으니 명확해져요.


최근에 지방에 아는 지인으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았어요. 그분은 아이가 둘이고 부업으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퇴사를 하고 전념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계셨어요. 저는 이미 퇴사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상 회사 밖 세상을 한번 경험해봐야 미련이 남지 않을 거라고 말해줬죠. 그런데 막상 퇴사하기에는 자신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육아휴직을 권해드렸더니 그러면 회사가 대체인력을 채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길래 그 걱정은 온전히 회사의 몫이지 직원이 할 걱정은 아니라고 말씀드렸어요.


ⓒ 월간서른


월간서른을 운영하면서도 수차례 말했지만 퇴사를 무조건 권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 역시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처럼 10년 후를 준비하는 30대의 모임이 월간서른의 본래 취지였어요. 퇴사 후 창업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이직 역시 또 다른 방법이죠. 그런데 다들 고민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TED나 세바시를 보면 정말 희소성 있는 스토리를 가진 분들이 많이 나와요. 그런 영상이나 강연을 보면 감명은 받지만 막상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어쩌면 우리와 너무 먼 위치에 있는 사람의 얘기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월간서른에서는 유명한 사람보다는 어디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조건의 사람을 연사로 모셔요. 내가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나의 관심사와 성향에 대해 알아가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게 더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Q. 반대로 불안정한 수입에 불안한 프리랜서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시겠어요?

  

제가 퇴사를 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직후였어요. 지인의 요청으로 지방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달짜리 마케팅 강의를 하게 되었어요. 사실 강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지만 마케팅원론 책 3권을 들고 강의 하루 전날 내려가서 첫날 강의 준비를 마쳤죠. 그리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강의를 하고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다음날 강의를 준비했죠. 그렇게 한 달을 하니 천만 원의 수익이 발생하더라고요. 그때는 앞으로 꾸준히 강의를 하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강의가 정기적인 게 아니다 보니 어느 달은 강의가 하나도 없는 때도 있어요. 당시 초조해지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내가 지금 불안해한다고 강의가 들어오지 않아.’


생각을 해보니 발로 뛰면서 영업을 하던지 아니면 강연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서 강연자료를 만드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었어요. 불안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준비를 하는 게 지금의 불안감을 줄여주고 강의 요청이 들어왔을 때 즉각적으로 응할 수 있어요.


올해 1월에는 외부 강의가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그간 꾸준히 발행한 콘텐츠와 도서 덕분에 적지 않은 인세를 받을 수 있었죠. 결국은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봐요. 불안해할 시간에 무엇인가를 해보는 게 답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 월간서른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계획은 없어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은 지 3년이 넘었어요.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저는 맞다고 봐요.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으니 입사하면 그 회사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제 모든 경험과 지식을 쏟는 게 현재로서는 최우선 순위죠.


강혁진


대신 어떤 일을 하고 살까에 대한 고민은 오래했어요. 저 스스로 어떤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지 생각을 해봤는데 마케팅과 글쓰기였어요.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보다는, 마케팅 업계에서 실력자가 되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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