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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Feb 21. 2022

행복을 찾아 헬스케어 기업 떠나 헤드헌터로 사는 그녀

외국계 헤드헌팅 기업에서 최연소 임원이 된 정유경의 이야기

지난해 초 매일유업에서 헬스케어 모바일 서비스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링크드인을 통해서 낯선 여성 헤드헌터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이직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에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는데 일반적인 내용과 달랐다.


“시간 괜찮으실 때 런치 신청드리고 싶어서 메시지 드렸습니다. 이직하시라고 메시지 드린 건 아니고요.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서요. :) 점심 한 끼 어떠신가요!”


예상했던 메시지 내용이 아니어서 혹시라도 링크드인 프로필 사진이 잘못 올라갔나 확인했다. 다행히 익숙한 아저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여성 헤드헌터는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이메일이나 통화로 진행하는데 이분은 초면에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러시죠.”


그리고 며칠 후 그녀와 약속한 식사 당일이 되었다. 약속이 가까워지자 더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헤드헌터가 이직을 제안하는 게 아니면 왜 만나자고 하는 걸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거울을 봤다. 역시나 링크드인 프로필 사진보다 더 살이 오른 아저씨가 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처를 주지 않고 상대를 거절하는 8가지 팁’을 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약속 장소였던 샐러드 가게로 향했고 그곳에서 메시지의 주인을 만났다. 분명 초면인데 오래된 친구를 본 것 마냥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로버트 월터스 코리아의 정유경입니다.


그녀와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하였는데 정말 이직 관련한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외려 거울을 보고 나온 내가 머쓱할 정도로 담백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저 그동안의 커리어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그 후 그녀와는 종종 이직에 대한 논의 없이 편하게 식사하고 차 마시는 관계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리크루팅 전문 회사에서 계속 승진을 거듭하여 최연소 임원에 올라 큰 팀을 운영하게 되었고 나는 그 사이 퇴사를 하고 스토리텔링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글 너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ㅎㅎ 저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불러주세요!!”


그녀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적극적이었다. 그런 기세에 질 수 없어 바로 답신했다.


“내일 시간 되세요?”


그렇게 나는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헤드헌터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Q.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A. 저는 글로벌 인재 채용 전문 컨설팅 회사 로버트 월터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유경입니다. 많은 분들이 헤드헌팅으로 알고 있는 인재 채용을 의뢰받아 진행하고 있어요. 외부에서는 헤드헌팅하면 높은 보상을 떠올리는데 사실 어느 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성과가 좋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르는 직업임에는 분명해요. 그런데 그저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만 보고 장기간 종사하기에는 스트레스 역시 많은 직업이기도 하죠. 저는 커리어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고객사들이 좋은 인재를 찾는 데 도움을 드리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이 커서 이제까지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정유경 Associate Director / ⓒ로버트월터스


Q. 학창 시절에 지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사실 공부 이외의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저는 면접 전형으로 들어간 소수의 인원 중 한 명이었어요. 만약에 시험을 보았다면 저는 외고 입학이 쉽지 않았을 거로 생각해요. 흥미롭게도 막상 외국어고등학교를 들어가니 친구들이 학업에 너무 몰두하는 나머지 공부에 관한 관심이 적었던 제가 오히려 반장을 맡게 되었죠. 당시 기숙사 학교였는데 야간자율학습도 자주 빠지며 모범적인 반장이 아닌 매 순간을 즐겁게 사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사실 대학교에서도 최소한의 시간을 학업에 투자함과 동시에 최대한의 성적을 내는 방향을 항상 고민했어요.


Q. 한국외국어대에서 이탈리아어를 전공하였는데 로마와 밀란에 대한 로망이 있었나요?


A.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사실 대학교도 정시는 자신이 없어서 수시를 지원하였는데 SKY 대학의 경영학과로만 지원하였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입시 때처럼 운이 좋아서 될 줄 알고 너무 자만했던 거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전부 불합격 통보를 받았죠. 덕분에 옆에서 보다 못한 부모님이 이때부터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셨어요.


“수시는 너 마음 가는 대로 했다면 정시는 부모의 의견을 따라줬으면 좋겠다.”


재수는 하기 싫기도 했고, 그렇다면 안전하게 지원해 보자는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현실과 타협하여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를 가게 되었어요.


Q. 대학교 재학 시절 5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하였는데 항공권을 지르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대학교 시절 해외여행을 꼭 가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죠.


“엄마, 나 유학 가려고 모아둔 돈으로 그냥 놀러 가도 돼?"


등짝 스매싱을 각오했는데 너무나도 흔쾌하게 허락해주셨어요.


“그래, 어차피 너를 위해 마련해둔 거니까 네 마음대로 해라.”


그래서 바로 항공권 결제하고 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죠. 이탈리아어를 전공하였지만, 로마와 밀란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어서 이탈리아는 고려하지도 않았어요. 함께 떠났던 친구는 교환학생이 목적이어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헤어졌어요. 그렇게 혼자 미국 동부의 뉴욕부터 워싱턴을 거쳐 중부를 넘어 오리건주까지 갔어요. 이동수단은 버스부터 비행기 그리고 현지 친구들의 차 등 다양했어요. 5개월 동안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별의별 경험을 다 했던 것 같아요.


미국의 땅이 정말 넓다고 체감한 때가 있는데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옐로스톤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적 있어요. 순수하게 차에 탑승한 시간만 16시간이 넘었어요. 그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과 합승해서 다녀왔는데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해요. 아마 이러한 다채로운 경험을 하였기에 제가 외국계 기업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협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역시 고생은 젊어서 사서라도 해야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아요.


출처=pexels.com


Q. 졸업 후 인바디 해외사업부에 입사하였는데 헬스케어의 미래를 내다보신 건가요?


저는 오래전부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중 헬스케어는 인류의 건강과 삶에 직결된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마침 경영학 수업에서 중소기업 관련 리포트를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이때 주제를 ‘인바디’로 정하고 열심히 매달려서 졸업 논문에 가까운 수준으로 작성하였어요.


그리고 인바디에 지원하고 인바디의 당시 이라미 부사장 (현 사장)을 면접관으로 마주했을 때도 당당하게 말했어요.


“제가 인바디에 관심이 너무 많아 이렇게 논문까지 작성했어요.”


당시 기업명은 지금의 인바디가 아닌 ‘바이오스페이스’였는데 지금처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아 저만큼 열의를 보인 지원자가 흔치 않았는지 대표님을 포함해 다들 신기해하시고 좋아하셨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지원을 한 ‘인바디’에 덥석 합격하며 남들처럼 취업준비를 하며 자격증을 딸 겨를도 없이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인바디


Q. 한국외국어대에서 이탈리아어를 전공한 덕분에 인바디에서 해외시장을 담당하신 것 같은데 당시의 경험은 어땠나요?


A. 저는 무조건 해외 영업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대기업 해외 영업팀에 가지 않을 거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인바디에서 기업 대비 인원들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기회가 상당히 컸거든요. 해외 출장도 상당히 많이 다녔는데 각종 학회부터 전시회까지 전부 섭렵하며 실무부터 현장까지 폭넓게 경험을 쌓을 수 있었어요. 아직도 그런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인바디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른 곳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인바디는 수습사원이 들어오면 과제를 줘요. 그리고 그 과제를 통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죠. 저에게 할당된 과제는 해외 대리점들을 위한 뉴스레터였어요. 사실 난감했어요.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실적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과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저도 특이한 게 머리는 혼란과 불만으로 가득한데 이미 손은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어요. 한 장 한 장 수작업으로 자료의 구성을 짜고 교열을 거친 후 디자인을 적용하여 최종본이 나왔어요. 그런데 막상 해외 대리점에서는 자신들이 이전부터 필요했던 자료를 만들어서 주니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덕분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뉴스레터는 정기적으로 발행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사례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해외사업부가 10명 안팎이다 보니 엄두를 못 냈던 거죠.


Q. 인바디에서 상도 받으며 나름 인정받으며 근무하였는데 퇴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저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에요. 매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결정을 내리면 행동으로 바로 옮겨요. 인바디에 합류한 지 2년이 넘어가면서 기업의 분위기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제가 변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더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고 회사 내에서 동기부여를 찾을 수 없었어요. 아마도 기업의 구성원들이 일정 수준과 경력에 도달하면 새로운 도전을 부여하며 구성원들이 꾸준히 동기부여가 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저는 당시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후회 없이 바로 퇴사를 결정하였죠. 아직도 퇴사를 앞두고 부사장님과 나눴던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입사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게 너무 행복해 보였는데 왜 퇴사를 결정하였나요?”


“이제는 이전만큼 행복하지 않아서요.”


저한테는 많은 기회와 성장을 준 곳이지만 새로운 도전에 임하면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맞게 될 거로 생각했어요.


Q. 퇴사 후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동기와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A. 해외 영업을 담당하면서 이탈리아는 여러 번 갔고 스페인과 덴마크도 가보았어요. 그런데 정작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프랑스는 가본 적이 없었고 영국은 히스로 공항에서 미팅 후 바로 출국해서 공항 외엔 본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영국으로 입국해서 프랑스에서 출국하는 항공권만 결제하고 무작정 떠났어요. 사실 혼자 한 달 이상 여행을 떠날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요. 제가 워낙 즉흥적으로 하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별다른 계획은 없었어요.


ⓒ정유경


하루는 구글맵을 보다가 아일랜드가 영국 가까이 위치한 것을 보고 기네스 맥주가 떠올랐고 바로 비행기 표를 끊어서 아일랜드로 향했죠. 그렇게 한 달 동안 정처 없이 느슨한 여행을 즐기며 낯선 곳에서 저 스스로에 관해서 많은 탐구를 하였어요. 그리고 다음 직장에 대한 기준도 나름 세웠죠.


(작가’s note: 기네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St. James’s Gate 양조장의 아서 기네스로부터 유래한 아일랜드 흑맥주이다. 흥미롭게도 1759년에 아서 기네스가 양조공장에 대해 9,000년 임차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양조 업계 최초로 과학자를 채용하여 연구소를 이끌도록 하였다.)


ⓒ아일랜드 관광청


Q. 2016년 갑작스럽게 로버트 월터스라고 하는 외국계 헤드헌팅 기업에 합류하였는데 왜 이러한 결정을 내렸나요?


A. 지원하는 직장의 첫 번째 기준을 건전한 조직문화를 가진 곳으로 정했어요. 물론 조직문화는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입사하기 전까지 정확하게 알 수 없죠. 그래도 외국계 기업이 서로 더 존중하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잘 자리 잡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무조건 외국계 기업으로 가기로 정했어요.


두 번째 기준은 담당 업무였어요. 저 자신을 깊게 들여다본 결과 영업이 저의 성향과 잘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영업 혹은 컨설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지막으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곳이었어요. 제가 헬스케어 기업을 다녔을 때도 크로스핏과 같은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며 건강관리를 하였어요. 그래서 그다음에도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로버트 월터스였어요. 마지막 조건의 경우, 굉장히 개인적인 사유이지만, 다니던 스쿼시장을 기준으로 회사 위치를 잡았어요. 당시 스쿼시에 푹 빠져 있던 시기라, 스쿼시장 멀리 있는 기업은 고려하지도 않았죠. 제가 스쿼시를 좋아하는데 마침 스쿼시를 할 수 있는 곳이 사무실 가까이 있어서 완벽했어요.


이곳은 특이하게 지사장 면접부터 먼저 봤어요. 그런데 면접 이후 연락이 없어서 문의하였더니 회사에 사정이 있어서 채용을 당분간 진행할 수 없다는 거예요. 대신 기다려준다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사실 믿지 않았어요. 그저 외국계 기업은 불합격도 상처받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 주 후 정말 연락이 왔어요. 그것도 지사장님이 직접이요. 조직의 수장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제안을 주는데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정식 인터뷰 과정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당시 지사장님이 먼저 오퍼 레터(입사 제안서)를 건넸어요. 그래서 받자마자 바로 서명했죠.


ⓒ로버트 월터스


Q. 헤드헌터로 커리어를 전환하며 어떠한 점이 가장 어려웠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였나요?


A. 보통 제조업에서는 제조과정을 거쳐 생산된 최종 제품은 생산 이후엔 변수가 적어요. 그런데 헤드헌터들이 관리하는 지원자 혹은 후보자 그리고 고객사들은 시시각각 변해요. 한 후보자가 분명 오늘까지는 괜찮았는데 내일 갑자기 아파서 면접에 참석 못 할 수 있고 아니면 입사 지원을 취소할 수도 있어요. 그런 모든 변수를 사전에 관리한다고 발생 안 할 수는 없기에 항시 돌발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입사 초기 한창 일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저의 사수가 한 달도 안 돼서 갑자기 퇴사하였어요. 그래서 남들은 보통 10개 정도의 채용 건을 진행하면 저는 경험도 부족한데 한 번에 30개 40개의 채용 건들을 감당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정량적인 목표는 어떻게든 달성하겠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어떻게든 후보자들을 확보해서 나갔어요. 그런데 정작 최종 성과는 무척 저조했어요. 당시 제가 느꼈던 허탈감이 커 헤드헌팅이 나와 잘 맞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퇴사까지도 고민하였어요.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후회 없이 끝까지 해보고 이후 다시 고민하자고 마음을 먹었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운동하고 돌아와서 밤늦게 사무실 불 끄고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어요.


Parna Gohil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제가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것을 당시 매니저이자 지금의 대표이사가 보고 딱하게 여겼는지 조언을 해주었어요. 무작정 많은 일을 하려 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그에 맞춰서 진행하는 것은 어떠냐고 했어요. 덕분에 무리해서 모든 건을 다 하려 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택했는데 그때부터 실적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당시의 조언은 여러 팀을 운영하며 인력들을 관리하는 지금도 유효하죠.


Q. 2017년 2018년 로버트 월터스에서 우수 컨설턴트로 계속 선정이 되었어요. 헤드헌터를 시작하자마자 실적이 좋았던 것을 보면 천직을 찾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사실 저는 뭔가 하나를 진득하게 파는 성격이 못돼요. 제가 담당하는 일이 한 분야를 깊고 길게 파고들어야 하는 연구개발과 같은 일이었다면 저 스스로 무척 괴로웠을 거예요. 그런데 헤드헌팅은 사실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 한 번에 다양한 채용 건들을 진행하기에 빠르게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면서 짧은 호흡으로 집중해서 일하는 게 중요해요. 이전에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몰라 항상 늦게까지 야근을 했었는데 지금은 칼퇴근하는데도 실적이 잘 나오죠. 그리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남들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즐겁고 많은 에너지를 얻어요. 헤드헌팅은 그런 점에서 정말 천직인 것 같아요.


물론 이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고객사들과만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가장 어려운 고객사는 어떠한 인재를 찾을지 내부적으로 협의가 되지 않은 곳이에요. 본인들이 원하는 인재상이 확실해야 채용을 진행할 수 있어요. 명확한 인재상 없이 면접만 계속 보다 보면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면접만 보고 진행을 하지 않는 기업으로 입소문이 나 그 후에 진행하는 모든 채용들이 영향을 받게 되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여 장기화되면 저희는 고객사가 아직 채용을 진행하실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더는 후보자 추천은 어렵다고 말씀드려요.


Q. 그간 정유경님 통해서 이직한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은 누구인가요?


A. 최근 헬스케어 업계 특히 외국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시니어 경력직을 저희가 이직하는 데 도움을 드린 적이 있어요. 보통 그 정도의 경력을 갖고 퇴사를 하시면 내부 강령을 위반하였거나 성희롱으로 퇴사하는 때도 많고 사내정치로 내부의 적을 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이 분은 전 직장동료들의 평가가 멘토로 의지할 만큼 한결같이 긍정적이었던 분이에요.


그런데 그분이 굳이 한국 기업으로 이직을 고집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외국계 기업에 오래 다니셔서 외국계 기업에서 능력이나 경험을 인정받고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데 왜 굳이 문화나 처우가 다른 국내 기업에 위험을 무릅쓰고 가시려고 하느냐고 여쭤봤어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동안 외국계 기업에서 많이 배웠고 경험도 쌓았으니 이제는 국내 기업들에 그간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눠주고 싶어요. 굳이 연봉이나 처우를 지금보다 높게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이 일을 하다 보면 흥미로운 게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명의 이직 사유가 조금씩 다르고 100명의 성향이 전부 달라요. 제가 로버트 월터스를 입사를 앞두고 다니던 스쿼시장과 도보거리 내 위치했던 것인 중요했던 것처럼 회사를 정하는 개인의 동기와 선택의 기준은 모두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 분의 입사를 진행하면서 상당한 영감을 얻었고 저 자신도 한 번쯤 제 커리어를 돌아보며 저도 그분처럼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Q. 비교적 어린 나이에 팀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는데 혼자 일할 때와 비교하면 어떻게 다를까요?


A. 천지 차이죠. 혼자 일할 때는 저만 잘하면 됐어요. 실적이 목표만큼 나오지 않으면 제가 조금 더 시간을 쏟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매니저가 되니 팀원들에게 야근을 강요하며 실적을 압박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개인의 목표보다는 조화로운 팀을 구성하고 성장시키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정유경


저는 원래 경영에 관심이 있어서 매니저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저와 잘 맞는 부분도 있지만 제가 조금 더 수련해야 하는 부분도 발견하였어요. 사실 성격이 엄청 급한 편인데 매니저가 되면서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있어요.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보다 한 번 더 기다리고 지체되더라도 다각도에서 바라보며 책망하기보다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Q. 일 년 전 로버트 월터스 내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하였는데 이전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라졌나요?


제가 팀장으로 컨설턴트들을 직접 관리하는 것은 몇 년 해보니까 익숙해졌는데 임원이 되고 나서는 이제는 팀장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이거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어요. 제가 팀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팀원들을 관리하면 팀장들의 위신도 서지 않고 팀원들도 팀장이 아닌 저를 더 의지하고 따르게 되면 사실 전체 조직이 흔들릴 수 있어요. 물론 직접 보고하는 팀장들에게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면 팀 내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고체계를 굳건히 하면서 구성원들을 한 명 한 명 챙기며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척 중요해요.


그리고 인사 및 조직변경이 있으면 빠르게 교통정리를 하는 게 중요해요. 불과 며칠 전까지 동료이고 상하관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조직이 공식적인 절차를 걸쳐 변경이 완료되면 거기에 맞춰 모두가 빠르게 적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어요.


Q. 잡코리아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가운데 9명은 이직을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직장인은 36.7%에 불과하다고 해요. 그리고 이 가운데 70%는 당시 결정을 후회한다고 하는데 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헤드헌터로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A. 이직을 고려하셔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생각보다 본인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분들이 많아요. 제가 로버트 월터스에서 만족하면서 6년 정도 근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원하는 직장과 직업의 기준이 명확했고 이를 충족하는 회사를 제가 선택하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3년 정도 근속하였으니 남들처럼 이직할 때가 된 것 같고, 단순히 더 높은 연봉만을 위해 이직을 고려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제 개인적인 의견은 커리어를 꾸준히 잘 쌓으면 연봉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으시는 분들은 내부에서 인정을 받아 승진하거나, 혹은 주변 분들이 추천해 주셔서 이직 기회도 많아지니까요. 그래서 연봉이나 적당한 시기여서 이직을 하는 것보다 지금 다니는 곳에서 쉽게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제공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 이직하는 분들이 이직 후 만족도가 높고 후회가 적은 것 같아요.


예로, 지금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만, 현재의 조직 내부에서의 승진 및 업무 범위의 확장이 여의치 않다면 이직을 통한 성장을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현재 야근이 너무 많아 힘들다면 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는 기업으로 옮기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죠. 이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조금 더 내부에서 기회를 찾거나 조금 더 고민을 해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Dziana Hasanbekav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Q. 헤드헌터를 커리어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 무엇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헤드헌터는 솔직히 헤드헌팅 경력이 길다고 해서 실적이 더 우수한 것만은 아니에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인맥이 넓은 사람이 헤드헌터를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 인맥은 어느 순간 동이 날 수 있어요. 그리고 개인의 경력을 통해서 쌓을 수 있는 인맥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20년 경력을 가진 분들도 그간 축적한 인맥을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 헤드헌터로 넘어오셨다가 저희에게 다시 원래 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의뢰하신 분들도 있어요.


개인적인 인맥보다는 사실 신입처럼 일할 용기와 의지가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헤드헌팅은 경력에 상관없이 실적으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는 곳이기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해요. 사실 이 직업은 특별한 자격증이나 경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 진입장벽이 굉장히 낮은 직업이에요. 국내에만 1만 명이 넘는 헤드헌터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반대로 사명감을 갖고 사람들의 커리어 개발에 의미 있는 도움을 드리고 싶고 그만큼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업이 맞을 수 있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하면 목표로 하는 실적은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어느 일도 마찬가지지만 이 일 역시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직업이거든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지난해까지 제가 맡았던 팀이 헬스케어와 B2C였어요. 사실 B2C는 이전에 많이 고전하던 분야여서 저에게 맡으라고 했을 때는 속으로 회사에서 내가 퇴사하였으면 하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보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이보다 더 안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그래서 지난해 해당 팀을 잘 정비해서 안정적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팀을 하나 더 맡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올해 새로운 팀을 잘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목표가 될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저 역시도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대비하여 저 자신의 역량을 계속 키워갈 계획입니다.


ⓒ조인후 브런치 '커리어를 끄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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