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사 직원의 컴퓨터 이야기 #1
어릴 적 학교에는 전산실이 있었다. 2000년대 즈음 '컴퓨터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신기하게도 시대가 많이 바뀐 지금까지 그 이름인 것 같다. (컴퓨터가 이렇게 시대를 오래 버티다니)
당시 나에게 컴퓨터는 미지(未知) 그 자체였다. 집에도 PC통신용 도스PC를 쓰던 시절이니까.
야속하게도 컴퓨터 수업은 영어 수학 수업보다 시수가 적었고 그래서인지
그 시간 만큼은 나에게 체육 시간 만큼이나 기다려지던 시간이었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자, 내 인생에서의 빅뱅은 바로 '인터넷'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컴퓨터실에서 처음 Yahoo.com에 접속하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당시에 홍콩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떠올리면 마치 홍콩 침사추이의 불야성을 보는 것 같은,
수없이 움직이는 GIF 배너들과 화면 가득한 텍스트, 정보들이 나를 네온사인의 별천지로 이끈 것 같았다.
외로움 또는 때 이른 고독이었을까, 머잖아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에 처음 느끼던 혼자라는 기분,
적적한 감정들이 피어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 나에게 처음 인터넷을 접한 순간은, 그러한 감정들의 해방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느꼈던 것 같다 - 끝없이 어디론가/누군가와 연결된 느낌,
그걸 선생님은 하이퍼링크라고 했다.
'마지막 페이지입니다'를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희열이 되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드는 유행이 있었다.
지금은 SNS로 대부분의 역할이 넘어갔지만.
이젠 기억 조차 낡아버린, 나모 웹에디터라는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떨어졌었다.
당시 컴퓨터 선생님의 숙제는, 간단한 자기소개, 몇 가지 사진이 담긴 정갈한 홈페이지 제작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포탈에서 긁어온 gif 배너와 링크들로 홈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그러니 당연히 재시험이었겠지.
어느 날에는, ADSL조차 깔리지 않던 달동네 집 방 한켠에서 끙끙대며 홈페이지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당연히 연결할 맞은 편의 하이퍼링크가 없어서 - 내 홈페이지는 살아 움직이지 않고, 링크는 공허할 뿐이었다.
그 뒤로 나는 알 수 없는 벽을 느끼곤 결국 홈페이지 만들기를 포기했었다.
홈페이지 만들기 수업이 끝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은 생활 필수품이요, 산소와 물같은 녀석이 되어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에 스며들었다.
짜디짠 우리 집에도 나의 성적표를 담보로 거금을 들인 윈도우 컴퓨터,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되었다.
그렇게 인터넷 세상은 눈 깜짝할 새에 당연해지고, 순식간에 나의 삶에서 둔감해져 버렸다.
가끔, 요즘은 그것마저도 잘 하지 않는 - 웹서핑을 하다 보면
낡을대로 낡아버린 누군가의 홈페이지에 닿을 때가 있다. - 마치 산 속에 버려진 통나무집을 발견한 것 처럼.
주인장이 정성들여 만든, 하지만 낡고 빛바랜 홈페이지 아이콘들과 메뉴들을 보면서
문득 하이퍼링크를 처음 접했던 그 시절의 충격이 떠오르곤 한다.
어디에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어둔 밤 배를 타고 가던 나에게 보이던, 등대와 마을의 불빛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홍콩의 랜드마크인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도시 미관 규제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 편리하고 너무나 간결한 구글의 검색 화면을 보며
가끔 그 시절의 침사추이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