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벼랑길에서
며칠 전 무료하게 누워있던 저녁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나이가 들어 이젠 눈물이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럽게도 멈추어지지가 않았다. 살아서 숨쉬고 있는게 허망하고 문득 재미있지가 않았다. 상큼한 향이 나서 내가 좋아하는 레몬 화분 냄새를 맡아도 기분이 나아지지가 않았고 옷 쇼핑몰을 한참 돌아봐도 장바구니에 담을 게 없었다. 게임이나 하면 나아질까 싶어 컴퓨터를 켰는데 한참을 둘러보고 고민해도 하고 싶은 게임이 없었다. 먹고 마시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바짝 말라버린 빨랫감과 쌓인 설거지거리 버석거리는 방바닥이 나를 거슬리게 하지만 아무것도 나는 할 수 없었다. 이런 나태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갑자기 모든 세상이 수렴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나는 이제 더이상 할 수 있는게 없는 사람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숲속도 바다도 동물 친구들도 그립지가 않았다. 그래서.. 막연하게 슬펐다. 더이상 미워할 것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은 너무 많이 흘렀고 너무 많은 시간이 고단했다- 한편으론 즐거웠었겠지만....고단했다. 사는 건 원래 그런거겠지 했었는데, 그렇게 버텨왔는데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무턱대고 세상이 나를 모른척하는 것 처럼, 그럴 때가 나는 참 고독하고 지난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며칠 전은 나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날이었다.
나는 근래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백아가 절현이라고, 언젠가부턴가
글을 적을 이유가 별로 없어졌었다.. 고민 끝에 나는 오늘 生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렇게 생각나는 하루를 그냥 적고 접어보았다. 괜찮다고 자꾸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었는데 가끔 꾸는 악몽에서는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 했다. 오늘은 안 괜찮다고 얘기할 수 있는것도 용기라고, 친구가 공유해준 어느 영상을 보았다. 그래서 그냥 안 괜찮은 나의 모습도 끄적여 본다.
성당을 다니지는 않지만 힘든 시절에 보면서, 적으면서 힘냈던 성경 구절들이 있다.
오늘도, 오래간만에 한 번 적어보면서 하루를 떠나보낸다.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 이사야서 49장 4절
"너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 에제키엘서 2장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