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터널 속에 갇힘
어릴 적 포항 촌놈이었던 나는 양가 할머니댁이 서울에 있었던 덕분에 상경의 경험이 많았다. 눈으로 담는 것이 기억에 새겨질 수 있는 나이가 될 즈음부터 매년 있던 두세 번의 상경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억들로 남아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고속버스로 다섯 시간 반, 당시 포항에서 서울까지의 물리적 거리였다.
다소 특이했던 나라는 어린 아이는 그 지리한 시간을 늘 즐거워했었다고 한다.
특히나 나는 경상도를 벗어나는 고갯길, 추풍령을 지날 때쯤 나타나는 무수한 터널들에 빠져들었다. 황간터널, 옥천터널, 대덕터널, 대전터널.. 구불구불한 고갯길 끝에 극적으로 등장하는 터널에서는 거대한 차도가 산을 뚫고 나가며 그 속은 누런 전등으로 가득했다. 산과 들이 펼쳐지던 풍경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터널, 그 마다의 모습은 조금씩 달랐기에 나는 그것들을 늘 구분해서 보았던 것 같다.
훗날 들은 바로는 그 구간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에서 가장 난공사였던 구간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추풍령휴게소에는 당시 공사 간 순직하신 분들의 위령탑이 있다.
수많은 고속도로가 편리하게 놓인 지금은 그 구간을 지날 일이 사실상 거의 없다.
한참 자라고 활자를 배우고 보니 많은 서사에서 '터널'은 부정적인 메타포로 쓰이고 있었다- 어둠/갇힘/고난 과 같은 - 나 또한 그렇게 학습된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실생활에서 운전을 하게 된 뒤로 터널은 - 어른들에게 눈이 그러하듯 - 어둡고, 지루하고, 졸음을 유발하는 도로의 장애물 정도로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금 다시 생각해본다. 그 어린 시절에 나는 왜 터널이 좋았을까 싶다.
아마도 수많은 전구의 불빛들과, 울려퍼지는 바람 소리들, 광활했던 배경 속에서 한 순간에 많은 자동차들이 밀집해서 달리는 느낌, 주변 경치에 흐뜨러졌던 시선과 소음들이 단숨에 잦아든다.
그렇게 공기가 수렴하는, 모여드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많은 어린 아이들이 그러곤 한다던데, 어린 시절 늘 이불을 텐트삼아 내 세상을 만들었었다.
동굴이라는 개념을 모르던 시절이겠지. 하지만 터널은 동굴처럼 어둡지가 않았다. 어린 마음은 거기서 머물러 있던 것일 게다. 어렸을 적 한 구석이 외로워서였을까.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어서였을까..? 어른이 된 지금의 감성으로는 그것들이 다 헤아려지지 않는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어린 시절에 잠시 다녀온 모양이다.
사실 나는 지금, 살면서 한 번도 통과해본 적이 없는 어느 한 터널 속에 있다.
어쩌면 나는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 삶의 지도 어딘가를 짚으면서, 내가 이런 곳을 지나가리라 무심코 생각했었다.
전구는 틈틈히 깨지거나 꺼져서 깜빡거린다.
다니는 자동차도 사람도, 살아있는 것은 물론 없는 쓸쓸한 여정이다.
구불구불하고 길어 반대편의 햇살이 깃들지조차 않는다.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에서 처럼-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페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의 터널을 지나는 시간은 외롭고 힘든 시간이다.
이 터널의 전구를 하나하나 갈아 끼우고,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과연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엊그제 늘 지나던 출근길,
고속도로의 터널이 문득 길게 느껴졌다.
내심 끝났으면 할 즈음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볕이 비칠 때쯤, 나는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새삼스러움에 소스라쳤다.
세월에 눅눅해져 버린 나에게, 더 이상 극적인 것에의 열망과 떨림은 없는 것일까.
과연 터널 저 반대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보통 터널의 한 귀퉁이에 진입할 즈음 다른 반대편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빠져나가고 싶은 구간일 뿐.
하지만 그것을 지나면 시계/도계가 바뀌고, 눈이나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날씨가 맑아지기도 한다.
내가 어린 시절 열광했던, 터널의 메타포가 아닐까 싶다.
그런 극적임, 그러한 극적임으로
나의 이 지리하고 먹먹한 터널 또한 언제든 끝이 나길 바란다.
밝은 이정표가 기다리는 끝단의 또 다른 눈부심으로.
시작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으로,
오늘 하루도 아주 조금
한 뼘 만큼이라도 나아갔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