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의 이야기] AI와 트로트가 만나면

전자회사 신제품 기획자의 트렌드 이야기

by Extraordinary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인 영상 중 하나는 '유명 힙합 가수들의 노래가사에 AI로 만든 트로트 선율을 입힌' 합성물이다.

나 또한 요 며칠 푹 빠져서 보면서 한참을 웃었고, 주변에 신나게 퍼나르면서 화제에 일조하고 있다.


화제가 된 여러 포인트를 종합하자면

'힙합과 트로트의 결합이 주는 위화감', 인터넷 용어로 '뇌절' 수준의 합성이라는 것과,

그에 반해 노래가 트로트 장르 관점에서 꽤나 들을만 하다는 것이고,

그대로 가져다 쓴 힙합 가사들이 생각외로 트로트의 가락과 찰떡같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푹 익은 젓갈 김치와 피카츄 돈가스의 조합이라고 해야할까.

주로 직설적이고, 라임에 초점을 맞춘 랩이 중점인 힙합 가사의 포인트가

최근 트로트가 지향하는 B급 감성(촌스러움, 직설적 표현, 과장된 퍼포먼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랩에 자주 쓰이는 영어 가사들 또한 AI 트로트 가수의 구수한 발음과 노련한 꺾기(?) 기교를 거치며

갖가지 양식에 김치를 때려부은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대중들은 이것들을 단순히 웃음거리 이상의,

'즐겁게 들을 만한' 음악이자 밈으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채널에서 독보적인 밈이 탄생하고 다른 채널에서 패러디 등 2차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

(예를 들면 최근의 '골반이 멈추지 않는 탓일까?' 밈처럼)과는 달리,

여러 채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러한 창작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 또한 특기할만한 부분이다.

(컨텐츠의 잠재성에 확신을 가진 몇몇 창작자들이 실제로 합심하여 밈으로 퍼뜨리는 것일수도 있다)


[영상 썸네일, 트로트와는 거리가 먼 힙합이나 지드래곤 같은 가수들의 얼굴에 옛날 트로트 가수 무대 모습을 합성해두었다. 반짝이 의상과 촌스러운 헤어스타일, 빛바랜 무대 배경이 위화감과 함께 웃음을 자아낸다]

과거 트로트는 디너쇼부터 지방 행사장, 밤무대 등 프리미엄과 엔트리까지 모든 세그먼트를 아우르면서도, '어른들 중에서도 어르신들'의 음악으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확고한 진입 장벽이 존재하였다.


2010년대 이후 국민MC 유재석의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 트로트의 B급 감성을 적극 활용한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캐릭터를 필두로

개그맨들의 트로트 진출이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단기적인 일탈이나 재미 소재로 소비되었고

결국 기존 영역의 외연 확장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19년 미스트롯, 20년 미스터트롯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트로트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였고

시장 논리에 충실하게 그 인기의 낙수효과는 전 세대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임영웅' 정도는 누구나 알고, 경연 프로그램에서 10대 20대 참가자들이 트로트와 포크를 리메이크한 경연곡을 곧잘 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트로트는

그들에게 '그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는 아니다.

아마도 그들에게 트로트란 명절에 친척집에 가면, 또는 집에서 부모님이 틀어놓은 종편이나

열린음악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이거나, 휴게소의 잡화상에서 빠른 비트로 흘러나오는 뽕짝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트로트+가요 합성 AI 콘텐츠들을 보면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결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거 몰래 듣고 있는데 엄마가 누구 노래냐고 휴대폰에 넣어달라고 했다"
"1시간째 듣고 있다. 내 알고리즘이 다 망가져서 이제 트로트만 추천해준다. 책임져라"
"고속도로 휴게소가 생각난다. 삑삑대는 강아지 인형과 호두과자 냄새가 나야만 할 것 같은"
"왜 이렇게 노래가 좋은 것인가? 이래서 어른들이 임영웅, 임영웅 하는 건가 싶다"

더불어 자신들이 익숙해하는 최신 가수들의 이름을 '지익호 선생(ZICO)', '권지룡 선생(G-dragon)', '옥계선 선생(래퍼 Occasion)'이라 바꿔 부르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랩으로 부르던 가사들이 트로트와 이렇게 잘 어울린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앨범으로 내면 당장 부모님과 듣겠다는 둥 짐짓 열광하는 모습이다.

한편에서는 진짜 어른들 세대인 것 처럼 '읍니다' 같은 그들의 문장을 모사하여 그들인 척 호평의 댓글을 다는데, 모사의 퀄리티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호응이 뜨겁다.

기술이나 맞춤법에 익숙치 않고 옛 표현에 너무나 진지한 어른들의 언어를 모사하며 그들은 즐거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곁에 있는 부모님, 친척, 어르신 누군가를 친근하게 떠올리곤 한다. 마냥 놀림의 대상을 넘어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이들로 치환하면서 마음의 거리는 자연스레 좁아진다.
예전 어른 세대들의 모습을 리얼하고 코믹하게 그려낸 '한사랑산악회(피식대학)', 최근 '낭만부부(김해준)' 콘텐츠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아네모이아(anemoia)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절의 분위기와 문화요소 등에 그리움을 느끼는 감정을 뜻하는 개념이다. 노스탤지어, 레트로와 다르게 해당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그 시절의 그리움을 느낀다는 차이가 있다.


마치 젊은 세대들은, 어른들의 문화를 가볍게 비틀고 꼬집으며 어른들에게 장난을 걸고 있는 듯 하다. 신문의 정치면에서는 그저 어렵고 불편하고 소통의 벽이 느껴지는 인구 그래프 너머의 세대들이지만, 그들의 문화를 풍자하면서도 '아 이래서 그분들이 트로트에 그리도 열광하는구나' 하면서 이해하는 구석이 생겨난다.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과 누군가를 떠올리며 악의없이 웃음짓는다는 것만으로 (창작자가 의도하진 않았을지언정) 그 의도는 성공이다.

갈라파고스 같았던 양 세대 사이에 자그마한 다리가 하나 놓인 느낌이다.



옛 것, 오래된 것.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 것의 느낌, 젊음과 멀어지고 어느 순간 그 사이에는 담이 쌓인다. 과거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세대 차'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것이 자라고 자라 '세대 갈등'까지 다다랐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문화가 섞이는 에너지는 서로간의 골을 메꾸는 듯 하다.

옛 것을 소중히 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것을 이끌어 내라고,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이 있었다.

젊은 이들에게 아무리 주입하려 한들 쉽게 받아들이고 이루어질 일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살짝 비틀어서 접점이 생기고 그들이 '그들의 것으로' 애정어리게 받아들일 포인트가 마련되면 그것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손담비 노래를 부르며

'할담비'로 불리웠던 지병수 할아버지께서 최근 별세하셨다고 한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배운 날 하루종일 이모티콘만 보내시던 우리 부모님을 떠올린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것, 또는 젊은 세대와의 동질감, 그런 걸 원하셨던 것일까.


AI가 잘 빚어준 유사 트로트 음악을 들으며

한바탕 신나게 웃고 뜯고 즐기고 나니

그저 고루하고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어른 세대들의 희노애락에 대해

왠지 모르게 한발 다가선 느낌이다.

AI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기술과 산업을 재편하고자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자아내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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