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산물 미션에 대한 단상 - 우리가 우리의 것을 사랑하기까지
어린 시절, 미디어나 어른들에게서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을 많이 듣곤 하였다. 기원은 불교 용어지만, 근래에는 국산 먹거리나 물건이 우리에게 더 잘 맞으니, 장려해야 한다는 개념 정도로 해석된다. 특히 IMF로 외화가 부족하다고 나라가 아우성치던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는 수시로 필통 검사를 하면서 외제(일제) 샤프와 펜을 적발해냈다. 그땐 그것을 신토불이라고 불렀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한식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며 비빔밥, 불고기, 떡볶이, 막걸리 등을 내세웠지만 (취지는 좋았을지언정) 내국인들에게마저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 시절까지만 해도 국산/우리 것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은 '트렌드보다 한 발 느려 그것을 베끼기 바쁘거나, 촌스럽고 고리타분하거나, 또는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던 것 같다.
'신토불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러했다.
물론 그동안 나라 한 켠에서는 '세계 1위' '한류 열풍'에 광적인 집착을 보여 왔다. 신문에서는 연례행사로 세계 1위 하는 제품이 몇 개며, 영원한 숙적 일본과 체급을 생각하면 비교하기도 민망한 중국과 미국과, 각종 선진국들은 1위 제품이 몇 개인지 비교해가며 국뽕을 일깨우고, 반성하고 채찍질하며 국격을 자평하곤 하였다.
그런데 먹거리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 돈가스, 카레는 일본에서 온 음식이고, 짜장면은 중국(인들)에서 기원한 음식이라고 못박았었다. 그 때 그것들은 온전한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흑백요리사1의 '비빔 인간'처럼..심지어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도 고춧가루는 남미에서 왔다며 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의 '재료'에서도 비슷했다. 한우, 말고 더 떠오르는게 있을까. 그냥 우리 나라에서 나고 잡히니까, 동해안에선 오징어가 잡히고, 서해안에선 꽃게가 잡히고, 강원도에서는 감자랑 옥수수가 수확된다는 것 정도? 하는 무심한 상태였던 것 같다. 지리적인 개념 말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종종 신문에는 한국의 굴과 김이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이 들렸었다.
나 또한 '거 참 신기한 국민들이군'하고 말았던 것 같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예전 어느 날, 가족들과 파인 다이닝이라고 일컬어지는 양식 레스토랑에 갔었다. 처음 방문한 그 곳에서 메뉴판을 보고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모든 음식마다 재료의 원산지를 써 두는 것은 알겠는데, 그 재료가 어떤 고장의 것인지까지 큰 글씨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무안의 낙지'와 '순천의 방아나물'로 만든 애피타이져, '영주 한우', '포항 시금치'로 맛을 낸 메인 요리.. 그 때 나는 메뉴판을 한참 동안 읽어보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재료들이 있었구나, 라는 새삼스러움과 함께 이렇게 해외의 귀중한 산해진미가 아니고 우리 식재료로도 파인 다이닝에서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구나 하는, 사실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대한 충격과 깨달음이 교차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국내 여행을 가서 어떤 지역을 가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특산물을 찾아보고 식당을 가서 먹어보는 취미가 생겼다. 무안에 가서는 낙지를 먹어보았고, 고성에서는 섭국을 먹었다. 자주 가던 안면도에는 꽃게나 새우 말고도 태양초 고추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고, 욕지도에서는 고구마와 고등어를 먹었다. 거제도에는 향이 진한 유자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 지역의 하나로마트를 가면 종종 그 곳에서 나는 식재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좁다면 좁은 대한민국 땅이라지만 다채로운 산해진미들이 있다. 거창한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않아도, 국내여행을 다녀오더라도 이제는 사람들에게 그 곳의 특산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과정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번 흑백요리사2의 지역 특산물 미션을 보면서, 예전에 갔던 그 파인 다이닝 식당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넷플릭스라는 해외 자본이 만드는 컨텐츠이고, 한식 요리사들보다 훨씬 많은 양식, 일식, 중식 등등의 해외 음식 셰프들이 오만가지 요리를 하지만, 그 재료는 우리 나라에서 나는 것들을 활용하고 크게 부각한다는 점에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부르짖었던 '신토불이'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것의 재료로 우리 전통 한식만을 고집하며, 우리의 방송으로....그것만이 우리의 신토불이였던 것일까?
이제는 많은 유명 음식점에서 우리 나라 재료를 쓴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 식재료=가장 신선하고, 맛있고, 제철인 것'을 쉽게 한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것에 많은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마케팅 개념으로 보면 생산자의 의도와 소비자의 니즈가 일치하는 지점,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것을 사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지난 신토불이 운동을 비롯한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들이 헛된 것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사랑하는데 어떤 시간이 필요했던 것 아니었을까. 그 사이에 잃지 않았던 건 끊임없이 우리 땅을 지키며 키우고, 묵묵히 이 땅에서 요리해왔던 사람들의 마음, 그것이 진짜 신토불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적다 보니 문득 예전 광고 하나가 생각난다. '이천의 특산품은 반도체'라는 제목의 SK 하이닉스의 광고이다. 이천에 위치한 자사 공장을 가지고 재미있게 풀어냈던, 화제의 영상이다. 요즘 말로 '뇌절'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네, 우리 고장에서 우리 기업이 만든 우리나라가 제일 잘 만드는 거 - 반도체 아니야? 그걸 특산품이라고 하는게 뭐가 잘못됐지? 좀 사랑해주자!'하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면서 나 또한 재미게 보았던 광고였던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2cm9cYGtLA8
오늘도 우리나라 반도체가 전 세계에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수 많은 나라 사람들이 불닭볶음면을 먹고 있다는,
이제는 당연하고, 다소 식상하게 들릴법한 뉴스를 접하며,
'신토불이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신토불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