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직 세상에 덜 눌어붙어 있던 시절의 글
아침에 출근버스를 타러 조금 일찍 나올 때면
시내버스에서 늘 마주치는 은광여고 학생 두 명이 있다. 그 둘은 단짝인지 서로를 기다렸다가 사이좋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반쯤 졸린 눈으로 머리는 덜 말린 채 단어장을 손에 든 모습이 영락없는 수험생이다.
가끔은 교생 선생님이었던 사람인지 한껏 멋을 부린 대학생이 중간에 타면, 둘은 세상 반갑게 인사를 한다. 부러운 눈길로 "선생님 자꾸 예뻐지시네요" 하며 까르르 웃는 그들의 눈망울 속에는 '어른의 삶'에 대한 선망의 시선과 '우리도 조금만 견디면 저렇게 대학생이 될 수 있겠지'하는 희망의 시선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하다.
나보다 앞선 정거장에 내려 단어장을 읽으며 학교로 걸어가는, 정확히 말하면 빨려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잠이 덜 깬 푸석한 얼굴로 일터로 향하는 나의 모습이나, 수능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할 저이들이나...어찌보면 십수년 전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지만, 세상을 표류하는 느낌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 나에겐 저들의 시절에 가졌던 희망의 시선이 있는가, 반성하며, 아이들이 꿈꾸는 희망찬 미래가 '내'가 사는 현재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얼마 전 모교에 강연을 한답시고 초대받아 귀중한 고3 아이들 시간을 뺏었는데, 마치고 나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도 이전의 나의 선배들이 그리하였듯 외치고 있지 않았던가!
"여러분 젊음은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젊음을 낭비하지 마세요, 젊음을 즐기세요, 젊음을 놓치지 마세요!"..나도 결국 이 핑계 저 핑계로 젊음을 허비해버린 산 증인 중 한명으로서 열심히 언행 불일치 설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나는 살아가는 것인가 죽어가는 것인가, 자문하게 된다. 마치 윤동주의 시詩처럼-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내가 우는 것이냐/백골이 우는 것이냐-나는 생生에의 가능성을 열어나가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끝의 곳으로 수렴하고 치달아가고 있는지 아직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 중심에 서 있는 이 시간이,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마냥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으려면 하루 하루를 아낌없이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지금은 과거의 내 미래였고. 미래는 나의 지금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또 몸을 싣고, 또 몸을 싣다 보면 언젠가는 종착역이 올까. 학생들도 내리고 나도 내리고, 셔틀버스에 타고 나면, 영영 회사에 도착하지 않길 바랄 때가 있다. 지금 나에게 종착역은 어쩌면 그런 것이다. 내가 내릴 그 곳에는 어린 시절 그리던 희망찬 미래가 펼쳐져 있을까?
잠시 머리를 비울 겸 회사 밖을 나오니 맑게 개인 하늘에 별들이 빛나고 있다. 별은 낮이나 밤이나 상관않고 아낌없이 스스로를 태우고 있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낮 동안에도 열심히 태워야만 비로소 밤까지도 그 밝기로 빛날 수 있다.
그림자에 숨어 노닐기만을 바라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