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사 직원의 회사 생활 단상, 그런데 최신 트렌드를 곁들인
며칠 전 김선태 주무관(충주맨)의 퇴사(면직) 소식으로 시끄러웠다. 공무원으로서 100만 유튜버에 근접했고 수많은 유명인들과의 친분, 지상파 프로그램까지 광폭행보를 이어갔던 그였기에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사그러들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자유로운 신분으로서 얼마나 성공할지 감도 안 온다는 사람들과, 그의 짠내나는 성장기가 인기를 끌었던 비결은 단지 공무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비관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중이다.
파란만장한 충주맨의 성장부터 퇴장까지의 모습을 보며, 직장인이 직장 생활에서 겪는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나를 아는데 돈이 없다" - 충주맨의 시청자들을 웃프게 만든 명언이다. 광고도, 수익활동도 쉽지 않고 자칫하면 민원에 시달리지만 매사 몸가짐을 유의해야 하는 '가성비 안 나오는 유명인' 컨셉은 대중들의 짠내 가득한 웃음을 이끌고 소시민적 공감을 자극했다.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안정성'이라는 것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 조직 속에 묻어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기복 없이 무난한 직장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에 노출되는 홍보직 공무원'은 인기가 많으나 적으나 그 장점을 상쇄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새로운 업무, 새로운 프로세스'란 이렇게 기존 업무 대비 많은 리스크를 떠안고 시작한다.
보통 새로운 프로젝트가 겪는 첫 번째 난관은 '기존 프로세스 헤게모니'의 저항이다. 대부분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조직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므로, 나머지 다수가 적응하고 있던 프로세스의 권위에 억눌리기 쉽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는 이들이 의욕적으로 움직일수록 조직 내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기 마련이고, 정치적으로 소외되다 보면, 동력을 잃고 표류하다 Fade-out하는 경우가 많다.
충주맨도 처음 홍보직을 시작하며 '콘텐츠를 결재받는 프로세스'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처음에 그는 대중들이 원하는 포인트(B급 감성)를 콘텐츠에 반영하고자 했지만 실패한다. 결재자들은 당연히 늘공(늘상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진지하고 취지가 명확히 드러나는 재미 없는 홍보 선전물'이 아니었을 때 발생할 리스크(≒왜 국민의 혈세로 그런 B급 컨텐츠를 만드냐는 민원)를 조직이 감수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주맨은 선 조치 후 보고(결재 카톡을 보내면서 콘텐츠를 게시)라는, 사실상 시말서 감이나 다름없는 도박을 한다. 결과는 성공이었고 몇 차례 그런 해프닝이 벌어진 끝에 그의 '프로세스 혁신(콘텐츠 제작 권한을 담당자 재량에 맡김)'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조직이 프로세스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리더, 또는 담당자의 도전이 필요한데 첫 단추가 정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회사로 치면 상위 부서장, 시장(Market)으로 치면 소비자/대중들에게 직접 그 피드백을 얻어내는 전략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담당자가 Target Customer(직해하면 소비자지만, 보고 대상/대중 모두가 포함된다)를 공략할 수 있는 통찰, 성공 방정식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이 되어버린 3선 조길형 시장, 이번 충주맨 퇴사의 배경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임이 불가능한 조길형 시장이 도지사 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사퇴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조 시장은 충주맨에게 직접 유튜브 홍보를 지시했고, 출연도 마다하지 않으며 3선의 재임기간동안 충주를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의 반열에 올려두었다. 김선태 주무관의 활약 뒤에는 시장의 용인술과 크게 재량권을 허용한 신뢰가 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Kick-off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기존의 조직과 프로젝트들은 새로 탄생한 프로젝트를 환영하지 않는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경영진과의 교감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업계 표현으로 '마패 들고 다닌다'고 하는데, 경영진의 피드백을 담보로 여러 유관부서를 설득하고, 다시 그 유관부서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경영진을 설득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보통 일반적인 리더나 중간 관리자들은 소규모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역할이 맞춰져 있으므로 거시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상위 관리자들은 중요한 기로에서 거시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단기적인 효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인 투자와 결단을 하는 것이다. 충주맨 또한 시장의 지시로 유튜브를 시작했고, 12년 남짓한 재임기간 동안 보수적인 조직의 견제와 시기를 받으면서도 조길형 시장의 신뢰와 대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여기에는 담당자의 개인기를 초월하는 리더의 통찰력과 결단력이 기반이 되었다. 사실상 조길형 시장은 3가지의 굵직한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기존 구매체, 페이스북 일변도에서 유튜브로 시정 홍보 채널을 전환하는 것 (신규 프로젝트 착수)
둘째, 김선태 주무관을 유튜브 홍보 담당자로 기용하는 것 (신규 프로젝트 담당자 선정)
셋째, 김선태 주무관(충주맨)이 하고싶은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 (신규 프로젝트의 프로세스 혁신 승인)
충주맨의 괄목할 만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용 사무실과 인력 충원은 조길형 시장 3선 임기 말기가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신규 프로젝트는 쉽게 주류가 되기 힘들기 때문에, 투자 집행은 항상 느리게 이루어진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면서 앞서 언급한 경영진의 신뢰와, 대중들의 지지, 성공의 열매라는 1차 목표를 얻어내더라도 막상 체감되는 효능감이 없는 이유이다. 회사나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성장 속도는 더욱 느리고, 느껴지는 효능감은 더욱 미미해진다.
앞선 과정들을 통해 프로젝트가 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통과하여 본 궤도에 올랐다고 느껴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강력한 위에서의 압력일 것이므로 매우 희소하고, 거기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권도 별로 없다)
이 때 회사는 나에게 로드맵을 그리길 요구하고, 그 로드맵은 서서히 변화하는 형태로 그려지기 마련이므로 내가 당장의 수혜를 누리기는 어렵다. 이 때 나는 결정해야 한다. 계속 키워나갈 것이냐, 여기서 머무를 것이냐. 만약 계속 키워나가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반지원정대와 같은 고난의 행군을 감당해야 한다.
매일 HR을 만나 인력 충원을 호소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기 꺼려하는 다른 팀의 멤버들과 소통하며 인터뷰 릴레이를 벌인다. 물론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만큼 업무량은 더욱 늘어났기 때문에 단위시간당 해야 할 일들은 쌓여만 간다. 삼국지 도원결의하듯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으므로 능률과 사기는 점점 떨어져간다.
여기서 내가 깊이 들여다봐야하는 것은, 경영진들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위에서는 이 정도 수준에서 현상 유지를 원하는데, 나만 안달난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을 잘 둘러보고 발을 내딛는 것 또한 필요하다.
또한 나의 정성에 감복하여 더 많은 리소스가 투입되기로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수혜가 온전히 나에게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그간의 강행군을 겪으며 이 프로젝트를 이어갈 동력을 잃어버렸을수도 있고, HR에서 조직 순환 차원으로 담당자를 변경하거나 또 다른 새로운 프로젝트에 발탁하고자 할 수도 있고, 조직이 확대됨과 동시에 내 위에 새로운 중간 관리자가 신설되어 나는 일개 담당자로 전락할수도 있다. 이러한 정치 변동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거취를 고민해야할지 모른다. 물론 기차 떠난 뒤에 손 흔든다고, 막상 내가 일궈놓은 기반들을 나의 후임이 누리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충주시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양산의 하진솔 주무관, 양주의 정겨운 주무관 등 이미 유명인의 반열에 이른 2세대 홍보직 공무원들이 등장했다. 이어 수많은 지자체, 코레일, 소방청 등 기관들이 비슷한 콘셉으로 유튜브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근 몇년 간 공무원 열풍에 힘입어 우수한 인재들이 공직에 합격한 탓도 있을 것이고, 성공한 사례는 일단 따라하고 보는 지방자치제의 유행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면 그만두겠다던 충주맨, 그의 시뮬레이션에는 대략 지방 선거 전에 100만 구독자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을지 모른다. 앞서 구독자들은 농담조로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면 그가 그만둘 것이므로, 구독을 누르지 말자'같은 이야기를 했었고, 실제로 충주맨이 퇴사를 발표한 시점에 구독자는 97만명을 넘은 상황이었다. 그의 퇴사 발표와 동시에 '충주맨이 없으면 충주시 구독은 필요 없다'며 구독취소가 이어졌고 구독자는 75만명까지 추락했다. 팀장을 잃고 남은 인원들이 올릴 다음 컨텐츠의 귀추가 주목되던 차에, 어제 하나의 영상이 올라온다.
KBS 드라마 추노의 명장면, '장군이와 왕손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대길이'를 따라한 이 영상으로 75만명까지 떨어졌던 구독자가 다시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김선태 주무관이 떠난 상황에서 '노비를 쫓는다'는 드라마 추노의 패러디는 웃음을 자아냄과 동시에 의미심장했다. 네티즌들은 '75만 낙동강 전선에서 멈춰세웠다' '마치 충주맨이 퇴사하면서 위기일때 꺼내보라고 3개의 비단주머니를 주었을 거다'라며 이를 밈처럼 소비하는 모습이다. 후임인 최지호 주무관 또한 그동안의 콘텐츠에서 다양한 (똘)끼를 뽐내며 재미를 선사한 바 있다. 부담감이 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쪼록 충주맨이라는 걸출한 1세대 지자체 유튜브(버)의 성공과 퇴장은 2세대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지루하고 진지하기 일색이었던 지자체 유튜브에 새로운 프로세스 혁신이 있었고, 그 결과 대중들이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작은 나라에서 무슨 지방자치제냐'며 지방자치제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부정적인 이 때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보수적인 조직, 안정 중심의 공무원 사회에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공무원들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