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영.
로봇이 노동을 대신한다는 미디어의 겁박에도 무색하게 기계처럼 일에 미쳐 근 한달을 보냈다.
늦은 밤 귀가 후 뒤늦게 저녁을 우겨넣고 온전히 저전력 모드가 된다. 감정의 움직임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히 착 가라앉은 상태로 잠들기를 거부하며 내일을 미루어간다.
어김없이 오늘도 그러한 일상을 마무리하던 중에 종종 운전하며 들었던 한로로의 노래에
거의 꺼져있던 나는 시스템 에러에 든 것 처럼 새삼 사로잡힌 듯 하다.
노랫말 때문이었을까.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저 너머의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단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
[나]라는 존재, 내가 사는 세상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건 -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성숙하지 못한 시절 늘 버림받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었다-지금도 그것은 각인된 것으로, 버릇처럼 나를 아린다. 빠르게 흩어져가는 삶의 장면들을 허겁지겁 뒤쫓아가며 나는 아직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낸다.
저 너머의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
어린 시절-아마 중학생 시절이었나,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문득 깨우쳤을때 휘몰아쳤던 엄청난 허탈함처럼. 끊임없이 나를 굴려가야 한다는 것은 멈출 수 없다는 두려움과 멈춤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
이 노랫말은 마치 그런,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거스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한편으론 눈물이 왈칵.할것만 같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약간은 나 대신 그걸 해결해주는것만 같은, 이젠 기댈 수 없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찬스와도 같은 무력함 속의 환희같이 느껴진다.
이젠 세월에 꺾여가는 나이지만, 가끔은 부모님 품에 안긴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어진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나의 속마음이 하는 말 같아서
나의 두려움이 하는 말 같아서
건조한 봄공기에 금새 말라버린 눈물자욱 훔치며
한참을,
부끄러워하며, 꾹꾹 눌러 담으며,
가사를 되뇌어 보았다.
영영 잃어버릴 것 같아 꼭 붙잡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