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 흔한데 비싼, 모순된 사람의 값어치
하, 사람이 너무 많다.
수도권에 살면서 수도권에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주제에 배부른 불평일 수 있겠지만
해도해도 사람이 너무 많다.
1970년도에 Universe 25라고, 미국의 생태학자 칼훈 박사가 진행한 연구가 있었다.
이미 매체나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언급된 실험이다.
짧게 요약하면, 쥐에게 충분한 음식과 물이 지속적으로 제공되고, 천적 등 어떠한 스트레스 요소도 없는, 쥐를 위한 유토피아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쥐의 개체수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였고, 공간의 밀도가 높아지자 어느 시점부터 출산률이 감소하였다. 개체가 늘어나면서 충분한 짝짓기 공간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짝짓기 공간을 차지하지 못한 쥐들은 번식 경쟁에서 도태되었고,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쥐들의 공격성이 점차 강화되었다. 쥐들은 수시로 싸우기 시작했고 새끼 쥐들을 물어죽이거나 잡아먹고, 쥐들끼리의 범죄나 동성애 등이 생겨났다.
쥐들의 개체수는 이러한 이유로 빠르게 감소하였고, 쥐 사회에서 여러 암컷을 거느리며 상위계급을 차지하고 있던 쥐들도 다른 쥐의 공격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더 이상 생식활동을 하지 않게 된다. 암컷쥐들 또한 불안한 사회상으로 인해 새끼를 돌보지 않고 방임하거나 새끼를 유기하였다.
결국 개체수가 줄어들고 생활 공간의 밀도는 다시 낮아지기 시작했지만, 많은 개체들이 짝짓기를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털을 다듬고, 경쟁을 포기하였다. 쥐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번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은 멸종하였다.
물론 저 실험에도 일정 오류가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라는 전제 조건 또한 한국 사회와는 안타깝게도 다르다(=한국 사회는 절대 충분한 음식과 물이 제공되는 유토피아가 아니므로.. 더 최악의 조건인가?). 몇몇 옥의 티를 감안하고서라도, 한국 사회와 오버랩되는 부분들을 떠올려 본다면 위 실험의 결과는 섬뜩하다.
당장 나 또한 인류애를 느끼기 어려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람으로 가득한 대중교통을 타고, 사람으로 가득한 회사를 온다. 북적이는 거리에서 뒷 사람은 내 신발의 뒷꿈치를 실수로 밟는다. 매일 아침 화장실 대변기칸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고, 밖에서는 배를 움켜진 이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줄을 서는 것은 일상이다. 점심 시간에 식사를 하기 위해 한참 줄을 서 있어야 한다. 선택권이 없는 구내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줄을 선 시간만큼을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까페에서도 북적북적, 엘리베이터 또한 만원인 경우가 부지기수라 줄을 서야 한다. 담배 냄새와 온갖 음식 냄새로 가득한 엘리베이터에 낑겨, 완행열차처럼 한 층 한 층을 거쳐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공간 또한 대인 관계에서의 거리(Private Distance)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집단에서는 오히려 이런 부분을 '감시의 순기능'으로 장려한다. 내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인상을 찌푸리고, 아파트에서는 가급적 이웃과 마주치지 않는 것이 예의일 지경이다. 주차장, 공공장소, 대중교통, 심지어 산과 바다와 휴양지에서도 부대끼는 사람들로 문제가 생긴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사가 무색할 따름이다.
이런 인구밀도의 생활 환경에서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어렵다. 이미 사회적으로는 충분히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상태다. 세대, 젠더, 계층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공간에서도 이미 '존재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는 것이다. 인프라에 계속 자본을 쏟아붓고 있지만 생각보다 개선효과는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사실 개선이 되더라도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도로는 늘상 막히고, 번화가는 발디딜 틈이 없고, 심지어 바닷가 마을의 방파제도 낚시꾼들의 자리싸움으로 치열하니 말 다했다 싶다.
'메르'라는 유명 블로거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흔싸귀비', 흔하면 싸고, 귀해지면 비싸다는 경제학 개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구밀도가 OECD 국가 중 1위, 도시국가까지 포함하면 16위인데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방글라데시, 대만, 르완다 다음이다. 사람의 존엄성에 값어치를 매길 순 없다지만, 흔하다 못해 발에 채이고 깔릴 지경이다.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인구밀도가 극심하다는 대만의 인구수 만큼이 대만 면적의 1/3인 수도권에 살고 있는 상황이다. 위에서 언급한 쥐 실험과 유사한 사회현상이 나타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저 실험 결과는 오류가 있어, 우리는 인간이고, 쥐들과는 다를 거야'라고 넘어가기에 특별한 해결책이나 돌파구가 없다는게 문제다.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는 결국 그 자체로 사람이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인건비가 싸던 시절에는 사람 목숨에 값어치를 크게 두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소득과 인건비는 세계적인 순위를 다툴 만큼 성장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그 가치를 높게 치는 것에는 거리가 멀다. 이런 모순적인 현상의 원인은 초고밀도 사회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자신의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던 쥐들이 서로를 공격하게 된 것 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영역을 보장받지 못하므로 서로를 경계하고, 적대시하며 존중하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매겨진 값어치는 올라갔지만 상대적인 관계적 존중은 바닥을 친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니 소통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니 화합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서로를 미워하기 바쁘다. 통근 버스의 좌석이 비좁은 것이 문제임에도, 옆 자리의 사람이 덩치가 크고 옷을 껴입었음을 비난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가운데 사회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고 이기심을 내세우는 사람들 또한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주차장의 칸이 좁다고 2칸에 걸쳐서 대충 주차하는 경우, 주차장이 좁은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배려가 없는 사람도 문제다)
또 경쟁하지만 나눠 먹을 파이가 부족하니 서로의 것을 빼앗아 가는 경우가 만연하다. 그것이 '실력'이나 '탁월한 적응'으로 미화된다. 예전에 사업 기획 Role로 미국에서 이직하신 분이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동종 업계 종사자를 만나려면 엄격하게 부서장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게 신기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동종 업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오히려 장려된다. 거기서는 매일 밤 이 시장을 어떻게 더 키워서 서로 부자가 될지를 서로 고민한다. 여기는 배타적이다 못해 폐쇄적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어떻게 시장을 키운다는 건지 사실 좀 의아한 부분이 있다'
성과에 박수쳐주는 문화보다 시기하고 끌어내리는 문화도 마찬가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너무나 비극적인 속담 아닌가? 몇 안되는 혈육이 땅을 샀다는데 축하해주고 종종 놀러도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안타깝기 이를 데가 없다.
문제를 줄줄이 열거했지만 해결책이 없으니 푸념이 되겠다. 그렇다. 지금 나는 사람들로 가득찬 퇴근길이 두렵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치이며, 경쟁하고 으르렁거리며, 하루의 심지를 태웠다. 쾌적한 퇴근길을 위해 내일의 일을 당겨 하며 야근을 해야 할까.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면 유튜브 좀 보다가, 휴대폰 좀 보다가, 지쳐서 잠에 들겠지. 먹고 마시며 털을 다듬고, 경쟁을 포기하며 멸종에 이른 쥐들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