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가 행복하려면

by 민콰이엉

유퀴즈라는 티비프로그램에서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 편을 봤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며 내향인도 다른 사람과의 연결에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일상의 스몰토크가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나에게 부족한 건 스몰토크인가?

뇌졸중과 불면으로 '불안의 뇌'가 나를 점령했을 때, 내가 얼마만큼이나 타인과의 연결을 갈구했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가 별로 없고, 수줍어서 스몰토크는커녕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많고, 핸드폰에 날 찾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전에 없이 불안해졌다.


내 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냥 해 버리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인사만 하던 엄마에게. "OO이, 오랜만에 봤는데 많이 컸어요~"라고 하자 그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네.."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셨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한 번은 헬스장 코치님이 아기 때문에 늦게 왔을 때였다. "아기는 괜찮아요?"하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벤치 프레스 기구에서 일어나서 보니 벌써 어딘가로 가신 모양이다. 나 혼자 괜히 몇 분간 뻘쭘했다. 스몰토크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행복을 위해서 스몰토크를 시도했건만 행복하지 않고 더 초조해졌다.

둘째가 단지 내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하원 후 아파트 안 놀이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는 엄마들을 보면, 왠지 거기에 껴야 될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막상 껴 있으면 기 빨릴 거면서.


"재홍아, 이제 형아 데리러 가야 해.“


더 놀겠다며 떼를 부리는 둘째를 설득해서 초등학교로 갔다. 형아의 하교 시간이 사교의 장인 놀이터를 빠져나갈 좋은 핑계가 되었다. 공원 길을 지나가며 보이는 탁 트인 풍경에 나와 둘째의 마음이 고요해진다. 주머니에 있던 쌀과자를 둘째에게 건네니 둘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쌀과자를 오독오독 씹는다. 천천히 간식을 다 음미하고 후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둘째와 하나씩 내려가 본다. 떼 부리던 둘째도 어느새 방긋방긋 잘 웃는 순딩이로 돌아왔다.


외향인의 방식은 아니어도 난 나름대로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지인들과 밝은 인사만으로 마음이 환해지고, 단골 카페의 익숙한 분위기와 센스있는 음악 선곡에 안도감을 느낀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달린 하트 수와 댓글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5살, 10살 섬세한 형제들과의 대화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연결이었다.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면서 잘 자는 날이 많아졌다. 숙면의 누적은 몸을 회복시키고 몸의 회복은 마음을 안정시킨다. 내 안보다 내 바깥에 주의를 돌리면 마음이 쉽게 충만해진다. 충만한 마음에는 창문이 저절로 열린다. 내가 해야 했던 일은 억지 연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연결들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향인이다. 아마 앞으로도 놀이터에서 엄마들과의 수다보다 둘째와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는 시간이 편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나에게 새로운 모습이 태어난다.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몇 마디의 스몰토크를 하기도 한다. 억지로 문을 두드리는 대신 내 안의 창문을 먼저 열기로 했다. 행복이란 소소한 연결을 모아서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일상 속 연결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기분 그 자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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