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 가족

by 민콰이엉

"원래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하하... 제가 낯을 좀 가려서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낯을 가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익숙해진다고 해서 수다쟁이가 되거나 하진 않는다. 물론 아주 편안한 관계에서는 나도 할 말이 많다. 하지만 그 정도의 편안한 관계는 몇 되지 않는 것 같다. 보통은 편해져도 말수가 많지 않다.


남편과는 대학교 수업 시간에 만났다. 남편도 I성향이라 낯을 가리지만 용기를 내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살며시 옆 자리에 앉고 음료수를 건넸다. 나보다 성적도 좋았으면서 나에게 노트 필기를 빌리고 그걸 빌미로 밥을 샀다. 그때 먹은 연어 스테이크는 너무 퍽퍽하고 맛이 없었지만, 학기가 끝날 즈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연인이 된 후에도 묘하게 거리가 있었다. 남편도 나만큼이나 낯을 가렸던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은 확인했어도 아직 어색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남편은 의도치 않은 몸개그를 발산하며 나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중국집에서 밥을 먹었던 날이었다. 남편이 자기가 계산한다며 계산대로 직진을 하다가 바로 앞의 절대 못 볼 수 없는 기둥에 대자로 부딪혔다. 쿵 소리가 나며 기둥 위의 장식품들이 파르르 진동했고 이목이 집중되었다. 만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에 끅끅끅 웃음을 참다가 식당 밖으로 나와서 빵 터졌다. 웃으면 안되는데 너무 웃겼다. 음, 이 사람 좀 귀여운데? 이상하게도 애정도가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며 우리는 조금씩 더 친해졌다.


시간이 흐르니 날 좋아했던 선배는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서른에 되던 해에 결혼도 했다. I 심은 데 I 난다고 우리의 귀여운 두 아들도 부정할 수 없는 I다. 그리고 공통점이 많다. 우리는 체력이 부족하고 잔병치레가 많다. 모두 비염이 있고 소화력이 좋지 않다. 밖에서는 긴장하고 쉽게 신경이 예민해진다. 순둥순둥해 보이지만 모두 방어기제가 세다. 안에서 비로소 쉬고 본모습을 편히 내놓는다.


한 때 우리는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완벽한 아빠와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안일도 하는 완벽한 아빠가, 나는 화를 참고 아이들의 마음과 감정을 최대한 읽어 주는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때때로 방전되어 날카로워졌고, 나는 종종 쌓인 화가 폭발하였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었다. 완벽한 부모를 잠시 연기할 수 있을 뿐이었다.


뇌졸중이 온 뒤,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남편은 쓰러지기 전에 먼저 침대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나는 화를 내기 전에 아이들에게 경고를 하고 혹시 화를 내더라도 내 자신을 자책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예민해지거나 불안해하면 그 감정이 쉽게 전염되고 확산되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방이 평온하면 우리는 서로에게 정서적 안전기지가 된다. 낯을 가리고 내향적인 우리 가족에겐 그 안전기지가 소중한 안식처라는 걸 이제는 안다.


스스로는 완벽한 존재는 아닐지라도, 우리 가족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완벽한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불완전함은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자주 상처가 된다. 타인의 간섭이 없는 완벽히 통제된 세상에서 안전함과 뿌듯함을 느끼는 우리이다. 남편은 어릴 적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시댁에는 지금도 남편이 만든 동화가 몇 편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는 만화를 그렸고, 고등학교 때는 시 비슷한 걸 끄적였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첫째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터를과 친구들'이라는 만화 시리즈를 그린다. 거실 식탁엔 바닷속 친구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그려진 A4용지가 한가득 펼쳐져 있다. 이제 다섯 살인 둘째는 놀이할 때 항상 똑같은 순서와 방식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뽑기 놀이를 할 때는 카드로 계산을 한 뒤 버튼을 눌러 뽑기 기계를 작동시켜야 하는데 그때 누르는 버튼과 누르는 시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설계되어 있다. 우리 가족에게 놀이와 이야기는 창조된 어떤 완벽한 세계였다. 생각해 보면, 그 창조된 세계는 나를 현실로부터 지켜주고 동시에 다시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나는 극 I이지만 내 '내향성'을 긍정한 적이 없었다. 내성적인 성격은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타인의 평가만을 믿었다. 나와 비슷한 내향적인 남편을 만나고 내향적인 아이들을 길렀다. 나와 함께 있는 가족은 사랑스러웠지만 타인과 만나는 나의 가족은 때론 나를 불편하게 했다. 첫째가 같은 반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불안했고 모임에서 긴장하는 남편의 모습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모두 가족에게서 나의 '내향성'과 닮은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나도 달리 자신을 존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째에게 어렸을 때 항상 이렇게 강박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규홍아,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나는 최고야! 뭐든지 해낼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해."


첫째는 나의 말을 잘 받아들였고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난 최고야! 난 멋져!"를 외치지만, 친구가 많지 않고 말수도 적은 자신을 엄마가 걱정한다는 것을 안다.

"엄마,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조용한 건 아니야."

나를 안심시키려는 첫째의 말속에 조용한 것이 부정적이라는 생각의 심지가 보이는 것 같아 아차 싶다. 육아를 하며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르쳐 주는 대로 절대 배우지 않고 보는 대로 배운다. 부모의 훈계보다 부모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 결국 내가 날 더 사랑해야 한다는 지난한 진리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낯가림 가족이다. 집 밖으로 나서면 긴장한 채 뚝딱대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외부의 자극으로 방전되어 터덜터덜 들어와 쓰러질 것이다. 가족 누구든지 집으로 돌아오면 편히 누울 침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은 아무에게도 평가되거나 공격받지 않고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작고 완벽한 세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를 안아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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