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기도 하세요?"
호칭만 '민경 씨'에서 '규홍 엄마'로 바뀌었을 뿐이지 아이를 낳기 전에도, 아이를 낳은 후에도 자주 듣는 말이다. 나도 내가 화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실상은 아이를 낳기 전에는 화 낼 줄을 몰랐던 것 같고, 아이를 낳은 후에야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휴, 얘들한테 물어보세요.
얘들 생각은 다를걸요?"
라고 하곤 한다.
실제로 끼적이길 좋아하는 첫째가 그린 <엄마 혼남 발생 방지법> 그림을 공개한다. 얼마나 엄마가 화를 자주 냈으면 혼남 발생 가능성을 이토록 상세히 수치화하고 혼남 발생 방지법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했는지. 아주 보고서 수준이다.
육아를 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33세에 시작한 육아는 나도 모르는 나의 민낯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의지할 사람이라곤 엄마밖에 없는 아기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다 사람의 것이 아닌 짐승의 포효에 가까운 내 목소리에 스스로 놀란다. 내가 마흔 평생 뜰 수 있는지도 몰랐던 도끼눈을 호기롭게 뜨고 날카롭게 쏘아붙일 때도 있다.
내 안에서 이토록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화가 도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지금 나오나 의아할 정도였다. 한 번 화내면 그다음 화는 더 쉽게, 더 자주 내게 된다. 이것도 참 무서운 부분이었다. 화를 내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실망스러웠다.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아마도 내 부모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실망감에 이 악물고 보란 듯이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완벽한 부모란,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감정을 읽어 주고, 감정적인 화를 내지 않는 부모이다. 아마 내가 부모에게서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일 거다. 그런데 아이들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하느라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욱하며 화가 터져 나온다.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아이들은 내 노력의 반의 반도 안 하는 것 같다.
왜 내 애씀을 알아주지 않는 거지?
날 무시하는 건가?'
결국 친절했던 내 표정은 싹 굳고, 나는 별안간 소리를 꽥 지른다. 비로소 아이들은 엄마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만 엄마는 번지는 절망감에 허우적대느라 차갑게 굳어버린 용암 속에 갇힌 기분이다. 이미 그때는 아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완벽한 아이가 없듯이 완벽한 부모도 없다. 누군가에게 완벽함을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은데, 우리는 너무 쉽게 나의 부모와 아이의 완벽함을 바란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스스로에게 완벽함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나의 부모와 아이에게 때론 크게 실망하고, 그 실망감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와 꽂힌다. 그런 일이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었다.
10여 년의 육아 끝에 인정한다.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유구한 대물림을 끊을 만한 힘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해야 했던 것은 화내는 나 자신을 허용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이라도 이게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동안 내가 잘한 것이 하나 있다. 화낸 후에는 항상 다시 아이에게 다가가 화해했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점을 사과하고, 왜 화를 냈는지 최대한 이성적으로 설명해 보고 아이를 꼭 안아줬다. 처음에는 사과에 너무 서툴러서 전혀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했다.
"(이를 악물고) 규홍아, 엄마가 화낸 것은 미안한데!" "(눈에 힘주고) 엄마가 화낸 건 ~ 때문이야."
사과를 하는 건지 아이의 잘못을 재확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얌전히 엄마의 말을 들었지만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과를 거듭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조금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었다.
"규홍아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놀란 눈망울로 쳐다보기만 하던 아이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엄마, 내가 아까 그랬던 것은요..."
당연하지만 아이도 나름의 이유와 생각이 있다. 엄마가 화내서 무서웠고 다시 화해하고 연결되고 싶어 한다. 실은 나도 그렇다.
가끔 독박육아가 길어지면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내게 된다.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되는 게 괴롭고 신경을 내내 곤두세우는 것도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는 화내지 않고 무난하게 아이들과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오빠 근데 나 오늘 얘들한테 화 안 냈다. 대단하지?"
순간, 침대 위에 누워있던 첫째의 의아한 얼굴이 순진무구하게 떠올랐다.
"엄마가....?"
정적이 흐른다. 참, 짚이는 장면이 생각나고 말았다.
"근데 아까 재홍이가 그림판으로 그림 그릴 때 화냈잖아."
"그, 그건 그냥 단호하게 말한 거야."
역시... 내가 스스로 화냈다고 판단하는 것과 아이들이 화냈다고 평가하는 것,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엄마 화냄/혼남 발생 방지법'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