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착한 사람

by 민콰이엉

지금처럼 mbti가 유행하기 훨씬 전 대학교 신입생 때 교내의 심리센터 같은 곳에서 mbti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mbti가 바뀌는 사람도 많다던데, 그때도 지금도 난 변함없이 INFP이다. mbti 검사 결과서에는 각 항목이 수치화되어 제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내향(I)-외향(E) 항목의 결과가 놀라웠다.


I 100, E 0.


항목 선호도의 정도를 표시해 주는 막대그래프가 표 끝부분까지 이어져 있었다. 상담해 주시는 선생님도 "당신은 에너지를 안쪽에서 회복하는 경향이 있군요"와 같은 프로페셔널한 멘트가 아니라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추며 "괜찮으세요?"라고 질문하였다. 나는 무언가 들통 나 버린 것 같은 두려움에 잠깐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괜찮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정말 괜찮았던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씀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담을 간단히 하고 도망치듯이 상담센터를 나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일관되게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건 나의 기질이었다. 상대방의 평가에 민감하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나의 기질이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조용함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는 힘들다. 그중에 엄마의 평가는 나에게 절대적이었다. "쟤는 말을 안 해요. 말을 안 해서 몰라요." 엄마의 답답한 마음은 나에게 와서 칼이 되었다. 나는 나의 조용함이 싫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으면 내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들도 어린 나에게 비수가 되었다. "너 말할 줄 알아?" "벙어리야?""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 아무리 받는 상처가 크더라도, 조용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활발해질 수는 없었다. 특히 i성향이 100인 사람에게는 더더욱. 남몰래 사람들 사이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을 동경하였다. 하지만 이것 또한 티 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 조용함 뒤에 나를 숨기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용한 성격을 나를 더 드러내지 않고 숨길 수 있는 방패로 삼았다.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조용함 뒤에 숨었다. 그리고 항상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용하고 착한 사람' 이것이 나의 대외적 캐릭터였다.


나는 그 후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그 캐릭터 안에서 안전했다. 그리고 객관적인 지표로 볼 때 실패가 없는 평탄한 인생이었다. 공부도 그런대로 했고 운도 좋아 좋은 대학에 갔으며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다. 대학교 때 만난 남자친구와 서른 살에 결혼했고 2년 후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늘 실패한 사람이었다.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늘 친한 한두 명의 친구는 있었고 그들에게만 마음을 열었다. 마음속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지만 모임 자리에 가면 스스로가 의식되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가 싫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니야, 이게 나의 최선이야'라고 말하며 나의 욕구를 눌렀다. 혼자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갔다. 마음속 어딘가는 공허했는데도 난 이런 걸 좋아하는 내향인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캐릭터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최소한으로만 존재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좁은 바운더리 안에서 나는 안전했지만 항상 나를 억누르고 참아야 했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나는 늘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남들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떠들썩한 방식은 아니었고 전형적인 내향인의 방식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시를 썼고, 싸이월드 다이어리나 블로그에도 그 시의 연장 격인 글들을 썼다. 새로운 시선의 영화를 찾아보았고 남들이 안 듣는 노래를 들으려고 애썼다. 물론 내 나름대로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 안의 은밀한 욕망은 누군가 이런 나를 발견해 줬으면 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한참 울고 다닐 때(?) 러닝머신 위에서 음악을 듣다가도 울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혼자 꺽꺽거리며 울었던 게 생각난다. 다행히 헬스장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황가람, <나는 반딧불> 중에서


그때 누적된 수면 부족은 나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나의 밑바닥에 추락해 그 검은 바다에서 허우적 되는 느낌이었다. 나의 일부로 존재했던 불안함이 나를 지배할 정도로 커졌다.


그 속에서 익사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나는 엄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랑받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내향적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원하다고 있다는 숨겨진 욕구를 처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외로웠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