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에게 엄마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이야기를 해 봤자 돌아오는 건 "와,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주다니 어머니 대단하시다." "나중에 엄마한테 잘해야겠다"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남편마저도 내가 엄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면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과하신 부분도 있긴 하지만 엄마한테 받은 게 이렇게 많은데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아갔을 때 엄마 이야기를 하면 늘 울었다.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시고 내가 엄마의 작은 간섭과 말에도 과민 반응하는 것은 '묵은 감정' 때문이라고 하셨다. 작은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서 오래되고 진해진 감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가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고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무 데서도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억울함을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불면증을 통해 엄마가 내 불안의 핵심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뇌졸중이 온 후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엄마의 사랑이 감사하고 나도 엄마를 사랑하지만 반복되는 비판과 지시 때문에 내 삶의 주도권을 잃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챗gpt와 대화하며 변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엄마와 대화하며 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그때의 상황과 오갔던 대화를 모두 챗지피티에게 보고했다. 나에게 뇌졸중의 가능성을 처음 알려 주었던 챗gpt는 이번에는 나의 상담사가 되었다. 나의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인정해 주었고 나의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분석해 주었다.
<실제 챗gpt 발췌>
왜 엄마의 '도움'이 너에게 이렇게 힘들까?
1)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 통제로 느껴져서
엄마의 방식은 "너 괜찮아? 힘든 거 아니야? 내가 대신해줄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네 판단은 불안해. 내가 해야 마음이 놓여."
라는 메시지처럼 들릴 때가 많아
그게 너에게
> 내 능력 의심
> 내 선택 무시
> 내 삶은 내가 꾸릴 수 없다는 느낌
으로 이어져
그래서 도움을 받는 순간 '고마움'대신 '무력감'이 전해지는 거야. 이건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이야.
2) 엄마의 불안이 내 삶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엄마는 걱정이 크니까 도움을 '정서적 안전'처럼 느끼셔.
하지만 너는 걱정을 받을수록 더 불안해지고 내 삶의 주도권을 잃은 기분이 들어.
엄마의 불안은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한 행동인데 그게 너에게는 너의 삶을 대신 사려는 움직임으로 보여. 그래서 힘든 거야.
성인의 삶에 계속 손을 얹는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 자율성 침해로 느껴지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챗gpt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엄마의 말에 반응하기보다는 듣기만 했고, 흘려보내기보다는 눌러서 담아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정신과 선생님 말대로 '묵은 감정'을 쌓아 갔다. 엄마의 의도는 비판이 아니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본인 기준의 안전을 지키려는 통제였다. 그리고 엄마의 돌봄이 내 자율성을 침범하는 것 같을 때 불협화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챗gpt는 엄마의 말에 적절히 반응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엄마가 걱정으로 인해 지나친 강요를 할 때 단계 별로 반응을 나누어하는 것이다. 감사와 선 긋기, 그리고 필요하다면 전환이나 한계 표현의 단계까지 갈 수 있다. 챗gpt가 알려준 방법이 실제로 도움이 됐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께 공유하고 싶어 그대로 옮겨 본다.
<실제 챗gpt 발췌>
1. 감사+ 선 긋기
EX. 신경 써 줘서 고마운데, 이건 내가 직접 조율하고 싶어
부모님의 마음은 인정하되 스스로 지켜내는 방식
2. 간단히 답하고 전환
EX. 응, 의사와 상의해서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근데 엄마, 지난번에 가 본 그 식당 어땠어?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짧게 주고 분위기를 바꿔버리기
3. 한계 표현하기
EX. 궁금한 건 알겠는데 이건 내가 이야기하면 오히려 불안해져. 엄마의 걱정하는 마음은 알아. 근데 같은 얘기를 자꾸 들으면 내가 지쳐
엄마 문제가 아닌, 내 한계를 솔직히 말하기
핵심은 걱정-> 감사로 짧게 받되, 그 이상은 내 선을 지키는 문장을 준비해 두는 거야.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 보겠다.
엄마가 애들 감기로 무배즙을 만들어 주라고 할 때
1차) "엄마, 규홍이 걱정해 줘서 고마워 (감사)그런데 병원에 다녀왔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선 긋기)"
그렇지만 엄마가 무배즙을 만들기 위한 재료와 슬로우쿠커를 우리 집에 놔둔다면?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2차) "엄마, 이렇게까지 챙겨줘서 고마워(감사)그런데 이걸 만들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선긋기) 참, 운동은 잘 다녀왔어? (전환)"
그래도 계속 반복된다면?
3차)"엄마, 계속 이렇게 하면 내가 너무 부담돼(한계 표현)"
실제로 나는 2차 반응까지 하였고 엄마는 말없이 직접 슬로우쿠커를 우리 집에 가지고 와 무배즙을 만들기를 시도하셨다. 그러다 슬로우쿠커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냥 본인이 무배즙을 만들어서 가져다주시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무배즙을 만들 순 없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존중한다. 그래서 애들에게 최대한 먹이려고 노력한다. 할머니는 손주들 감기에 뭐라도 해 주고 싶으신 것이다. 엄마가 슬쩍 가끔씩 집에 무와 배를 가져다 놓는 것이 무슨 의도인지 알지만 내가 꼭 그 의도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 예전 같으면 엄마 말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괴로웠을 텐데 지금은 마음이 평온하다. 엄마가 은연중에 한 요구를 거절했지만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대화 기술(?)은 이렇게까지 발전했다.
<실제 카톡 대화>
엄마: 내일도 추우니 등원 도와주러 갈게~ 잘 자^^
나: 낼은 괜찮던데~~? 좀 올라가는 것 같아.
내가 가 봐도 괜찮을까? 혹시 너무 추우면 연락할게^^
엄마: 재홍이가 감기라.. 네 뜻대로 해
나: 따뜻이 하고 가볼게 10시쯤에는 8도네~ 엄마도 쉬는 날이 있어야지 ^^
정말 대단한 발전이 아닌가. 엄마의 걱정도 다독이고 나의 자율성도 지키고 우리 둘의 관계도 따뜻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반복해서 엄마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경계를 지키는 말하기를 연습할수록 놀랍게도 나 안에서 새삼스레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나에 대한 공격과 지시로 느껴졌던 엄마의 말들은 엄마의 사랑과 걱정이었다. 엄마의 사랑과 걱정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은 불안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감정은 엄마의 몫, 나는 내 감정을 지켜내면 되는 일이었다. 내 자신이 늘 엄마의 서사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무력한 존재가 되는 것이 괴로웠지만 엄마의 서사 안에 있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면 나는 내 이야기를 쓰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그럴 수 있었다. 엄마 상자를 벗어던지는 힘은 전적으로 엄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었다.
또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견디기 어려웠던 엄마가 자식을 바라보던 시선은 사실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았던 그 시선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엄마의 또 다른 자신이어서 엄마는 자신을 끊임없이 고치고 단련했던 것처럼 나를 당신보다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했던 것이다.
대학병원 외래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오는 길, 차 속에서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그 더운 날 등원을 도와줬더라면.. 네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나는 절대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의 모든 결과가 엄마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엄마가 울음을 애써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른 척했다. 지금은 엄마도 엄마만의 상자에 갇혀 있다는 게 어렴풋이 느껴지면서 측은한 마음이 든다. 뇌졸중이 온 건 엄마의 잘못이 아닌데...
낮에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자애 명상을 했는데 '내가 행복하길'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거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엄마는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엄마도 행복하길. 엄마와 나에게 오늘이 어제보다 평안한 밤이길. 온 마음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