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어린아이인 나는 침대에서 뒤척뒤척하다가 참았던 기침을 컥컥 몇 차례 한다. 멀리서 다가오는 쿵쿵거리는 발소리에 흠칫 놀라 이불을 파고든다.
"웬 기침이니?"
다그치는 것 같은 엄마의 한마디에 자는 척하지만 마음속은 잘못한 것처럼 주눅이 든다.
시간이 흘러 감기보다 훨씬 심각한 병이 많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지금도 감기만 걸려도 큰일 난 것처럼 나를 걱정한다.
"너 저번에 춥게 입더니 감기 걸렸구먼! 너는 감기 걸리면 기침을 많이 하더라. 기침약 해다 줄게"
"아니 별로 심하지도 않은데 왜"
나는 큰소리를 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 내 속에는 아직 그 어린 소녀가 있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아도 엄마의 말 한마디에 기가 죽어 버린다.
이제는 나도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비염이 심하다. 비염이 심한 날이면 큰 아이는 잘 때 코를 골며 뒤척거리고 작은 아이는 콧물이 뒤로 넘어가 기침을 한다. 내가 아이 적에 나를 웅크리게 했던 쿵쿵대는 발소리가 이제는 내 가슴에서 들린다. "어떡하지? 비염이 심해졌나. 감기에 걸리려나" 내 심장이 쿵쿵거리며 뛴다.
엄마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얘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거야." 그렇지만 아이들이 아프면 할머니는 엄마보다도 더 걱정한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숨을 쉰다. 물론 나도 걱정이 되지만 내가 걱정할 자리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아니야, 엄마 걱정하지 마. 애들 금방 나올 거야."라며 엄마의 걱정을 다독이는 역할이다.
또, 엄마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섬세하게 지도한다. "옷을 이렇게 입히고 잘 때는 이렇게 해 주고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해." 많이 걱정스러울 때는 같은 말도 다그치는 말투가 된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니? 너는 왜 엄마 말을 듣지를 않니?" 엄마가 머물다간 자리에는 내가 없다. 엄마의 걱정과 염려만이 가득했다. 나는 번번이 다시 숨죽여 기침했던 그 어린 소녀로 돌아가서 웅크리고 있다. 또다시 무력해지는 기분이다.
엄마는 유독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리는 나는 늘 엄마의 걱정 대상이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녔다. 물론 큰 이상은 없었다. 엄마를 따라 수지침도 맞아보고 뜸도 뜨고 한약도 많이 먹었다. 엄마는 건강을 위해 뭐든지 열심이었다. 엄마만큼 건강에 열심이지 않은 무신경한 나는 늘 타박의 대상이었다. 한 번은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친구와의 약속을 못 가게 해서 소파에 누워있었다. 엄마가 비로소 사랑스럽게 나를 쳐다보는데 그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의 건강 염려에 숨이 막히면서도 나는 내 의견을 말할 줄 몰랐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자신의 건강에도 불안해했다. 내가 대학생일 때 엄마는 건강검진에서 유방암을 발견했다. 엄마가 최고로 불안했을 그 시기에 나는 엄마에게 큰 도움이 안 되었던 것 같아 죄송하다. 뇌졸중을 겪고 나니 불확실한 시기를 지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겠다.
또한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잠을 잘 못 자고 자꾸만 잊어버리고 종합적인 사고가 잘 안 된다며 걱정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나도 그래"라며 위로했다. 실은 30대가 넘어서 내게 찾아오는 몸의 이상 들-예를 들어 생리 전 증후군, 소화불량, 어깨결림, 등 통증 같은 것에 불안했으면서도 엄마 앞에서는 아닌 척했다. 엄마의 걱정 더미에 짐을 더 올려놓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보다는 엄마의 걱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뇌졸중이 오기 전 해에 제대로 자는 날이 많지 않았다. 잠이 부족하니 불안함이 극에 달했다. 그리고 불안함이 내 자아를 지배했을 때는 이성적인 사고가 잘 안 된다. 상처받기 쉽고 자기 방어적인 내면 아이에 가까운 모습이 된다. 엄마와의 관계로 인한 상처가 불면의 증폭기에 들어가 부풀려지고 커져 갔다.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는 말들은 한 귀로 흘리는 척했지만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도 어느새 엄마처럼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고 내 건강을 걱정했다. 엄마처럼 되어 가고 있음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었다. 그 와중에도 나와 아이 걱정에 집에 드나드는 엄마의 존재가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의 잔소리 하나하나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아픈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내가 아파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예전에 기침이 나올 때 엄마에게 들킬까 봐 숨죽였던 어린 나로 자꾸만 돌아갔다. 아픈 게 죄를 지은 것같이 괴로웠지만 아픈 것을 바꿀 수 없으니 좌절스러웠던 어린 소녀가 된다. 뇌졸중이 왔을 때 제일 먼저 남편에게 했던 말도 "뇌졸중이 온 건 내 잘못이 아니야."였다.
환절기가 되어 첫째의 비염이 시작되면, 나는 "코세척해 볼까?" "약 먹어 볼까?" "병원에 가 볼까?" 첫째를 채근하기 시작한다. 노력과 관심에도 여전한 코 상태를 볼 때면 첫째의 잘못이 아닌데도 화가 솟구칠 때가 있다. "엄마가 병원에 가자고 몇 번을 말했잖아. 왜 말을 안 듣니?" 첫째를 타박하는 내 모습은 예전의 그 누군가를 닮아있다. 코 때문에 불편하면서도 애써 아닌 척하는 첫째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과 겹친다.
부모로서의 관성은 무섭도록 강력해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가끔 내 안에서 어떤 용감한 부분이 갑자기 우뚝 일어서면서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뇌졸중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자꾸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규홍아 코가 막혀서 힘들지. 금방 나을 거야."
내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규홍이의 감정을 공감해 주었다. 그런 마법 같은 순간에는 아이를 다독이면서 어린 시절의 나도 같이 다독이게 된다. 그 아이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아픈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를 치유하기 위해 하늘에서 보내 준 천사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정말 그렇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이 안정될수록 아이들이 덜 아프다. 아이들은 너무 쉽게 부모의 감정에 물든다. 예민하고 불안에 떨며 아이들을 지켜볼수록 아이들의 마음은 더더욱 흔들린다. 특히 나를 닮은 규홍이 같은 아이들은 더 그렇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고 내 불안을 내려놓던 그날 밤이 생각이 난다. 앞으로도 조금씩 이런 선택을 하는 날들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