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상자

by 민콰이엉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그 실망은 도둑맞은 신발 같은 사소한 사건 때문에도 비롯된다는 것, 누구도 그걸 피할 수 없고 나처럼 어떤 아이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그 사소한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기억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이해하면서도 아쉬워한다.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나는 오랫동안 엄마 상자 안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는 엄마를 늘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착한 딸이 되어서 칭찬을 받았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노력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동생에 비해 고분고분했고 바꿔 말하면 엄마가 다루기 쉬운 아이였다. 칭찬도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갈 때는 엄마의 바람들은 잔소리로 바뀌어 들렸고 내가 느꼈던 것은 족쇄 같은 통제였다. 엄마가 내 삶에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던 동생이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내 의견을 표현하지 못했고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반감을 조용히 쌓아 갔다.


타인과도 깊게 관계를 맺으면 엄마와의 관계에서처럼 나는 늘 상대방의 표정과 감정을 살폈다. 상대방이 불편해하면 그 감정의 곱절을 느꼈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맞추려고 노력했다. 타인의 무리한 부탁도 잘 거절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자식에게 헌신하는 부모였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늘 불안 위에서 갈팡질팡했다. 자식의 모습은 언제나 수정 대상이었다. 엄마에게 있어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고치고 깎아내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자식은 늘 어딘가 부족했기 때문에 늘 걱정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습관처럼 이렇게 키운 자신을 자책했다. 나는 그러한 엄마의 시선에 담겨 두 번씩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부끄럽지만 마흔 살이 될 때까지도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했고 엄마 역시 나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헌신에 대한 감사를, 나는 나의 자립에 대한 존중을 바랐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인정을 바라면서도 서로를 절대 인정해 주지 않는(혹은 인정해 주면 내 존재가 부정될까 봐 그럴 수 없는) 그런 사이였다.


결혼을 했을 때 잠시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의 도움이 필요해지자 엄마의 애정 어린 간섭이 다시 시작됐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직장에 복직하려고 했을 때에도 엄마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봐줄 테니 집에서 키워라." 라며 첫째의 가정 보육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첫째를 이미 어린이집에 등록을 한 상황이어서 취소해야 했다. 엄마가 그 연세에 아이를 봐주는 것도 힘든 일이고 큰 희생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 등록을 취소하고 나오는 길의 감정은 화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무력감이었다. 그것도 예전부터 여러 번 반복되었던 아주 익숙한 무력감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자, 엄마는 "직장에 한 학기만 쉰다고 그래. 애를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라며 휴직을 권고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도 직장에 휴직 요청을 했고 복직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휴직을 했다.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에게 적대감이 쌓여갔다. 엄마의 도움은 내 삶의 주도권을 넘기는 대가로 따라오는 것 같았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엄마는 수시로 확인하듯 물었다. "거봐, 그때 어린이집을 안 가길 잘했지? 엄마 말 듣길 잘했지?" 엄마가 가정보육을 결정할 때도, 휴직을 강요했을 때도, 한마디 못했던 것처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뇌졸중 이후에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가 아이들 등하원을 도와주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엄마와는 별 말 못 했는데 시어머니와 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어느 날은 "나도 내 삶을 살고 싶어요!!"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님께 그럴 수가 있었을까. 뇌졸중과 불면으로 나약해지고 무너져있었다고 구차하게 핑계를 대본다. 어머님은 가만히 안아 주시며 "그래, 꼭 네 삶을 살아."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며칠 뒤 차 안에서 이렇게 이런 말을 건넸다.


"아가, 나도 엄마 상자가 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내가 상자 안에 있더라. 그때 비로소 느껴지더라고. 상자는 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게."


엄마가 상자를 단단히 지키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상자를 '감옥'으로 완성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처음부터 상자에 자물쇠는 없었다. 내가 독립하지 못한 것은 엄마의 구속 때문이 아니라, 상자 밖의 찬바람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나의 두려움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스스로 상자 밖에서 모든 책임을 지지 않고, 안락한 엄마 상자 안에서 별 볼 일없는 나의 인생을 엄마 탓이나 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을지 모르겠다.


정신과 선생님이 내게 말해 준 것처럼, 내가 평생 붙잡고 있던 가장 큰 불안은 결국 엄마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었다.

이전 08화정신은 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