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이 온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축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몇 개월 만에 신은 구두는 불편하고 아팠다. 그래도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으니 설레었다. 잠시나마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잊을 수 있었다.
이제 직장을 그만둔 지 3년, 9살과 4살의 남자아이를 키우는 일에 매진하는 주부로 살고 있다. 두 남자아이를 키우는 것은 귀한 일이고 현재 생활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부로 살아가면서 나의 세계도 좁아지고 나 자신도 희미해져 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떠나면 남은 나 자신이 초라할 것 같았다.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도 '내 것'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솔로였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넌 네 것(가족)이 있잖아. 난 내 것도 아닌 것(회사)에 묶여있는 느낌이야. 결혼하고 애 낳은 친구들이 부러워. 나의 뿌리를 내리는 거잖아"
나의 뿌리? 나는 엄마로서의 삶에 그런 큰 의미를 부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의 시각이 신선했다. 동시에 아이가 없어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니까 결국, 가정도 직장도 자아실현을 완벽히 보장해 주지는 않는 것 같다.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나를 잃을 것 같은 불안은 항상 있다.
게다가 마흔이란 나이가 주는 위기감이 있다. 직접 마흔이 되고 보니,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어딘가 아파도 치료하면 원상 복귀되는 젊은이는 아닌 것 같다. 기억력도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내가 가진 책임은 늘어나서 때론 그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정신없이 삶을 꾸려가는 와중에 마흔이라는 나이가 경종을 울린다. 나는 내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뇌졸중이 오기 전 2025년 봄, 불안은 잠 못 드는 밤을 만들었고 수면 부족은 다시 불안을 불러왔다. 불안과 불면의 악순환이었다. 힘들 때 상담이 도움이 됐다던 주변인들의 말을 듣고 심리 상담센터를 예약했다. 나는 내 불안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래야 불면증이 해결될 것 같았다.
말주변이 없는 나는 막상 가서 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까 봐 빈 종이에 먼저 나에 대해 끼적여 보았다.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았고 나 자신에게도 없는 척 숨겼던 비밀의 서랍을 여는 느낌이었다. 절대 소중하거나 귀중해서 숨겨 놓은 서랍이 아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조차 숨겼던 보잘것없는 서랍이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앞뒤 잴 것이 솔직해질 수 있었다.
A4용지 한 장을 들고 가서 1시간여의 상담 시간 동안 나는 내내 내 이야기만 했다...기보다 읽었다. 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언어화된 내 불안의 정체를 비로소 마주했다.
첫 번째, 나의 불안의 근원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엄마의 과잉보호와 통제, 그리고 나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엄마와 나 사이에 건강하지 않은 유착 관계를 형성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절대 서로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두 번째, 건강염려증이 심하다. 몸의 작은 변화와 불편함에 크게 불안해한다. 이것은 첫 번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엄마는 내가 아플까 늘 걱정했다. 그리고 엄마의 불안은 내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도 그토록 싫어하던 엄마의 행동을 반복했다.
세 번째, 나는 극-내향인이면서도 표현 욕구가 있는 성격이다. MBTI로 INFP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수가 없고 과묵하며 생각이 많은 성격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표현 욕구가 많았지만 항상 필요이상으로 자제했다.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건강염려를 멈춰야 했다. 나를 고립시키지 말고 타인과 연결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어야 한다는 판단 말고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했다. 상담 결과가 가리키는 바는 명확했지만 행동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오래도록 나는 홀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고립된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불면증이 작은 대미지를 축적하는 잽이었다면 뇌졸중은 제대로 맞은 어퍼컷이었다. 나는 그대로 K.O 되어 링 위에 쓰러졌다. 카운트 다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벼랑 끝에 떠밀려 오히려 살고 싶은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제대로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