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과정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도 완만한 상승곡선을 타고 꾸준히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정체기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한 걸음 씩 올라서 있는 계단식의 긴 과정이었다. 단기적인 열정과 의지보다는 인내심과 희망적인 마음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했다.
몸의 재활은 3달 만에 끝났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안 그래도 재발 위험이 높은 질환인데 40세에 첫 뇌졸중이 오면 노년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미래가 뿌연 안갯속에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 있을 때 퇴원 이틀 전부터 잠을 못 잤다. 잠을 못 자면 재발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잠을 못 잔다는 말에는 걱정하던 간호사도 "만약 재발하셨다면 이렇게 계실 수 없어요" 어이없어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퇴원 후에도 여전히 잘 자지 못했다. 불면은 회복을 더디게 만들었지만 자야 된다고 생각할수록 더 자지 못했다. 나아지고 있던 불면증은 뇌졸중 이후에 다시 악화되었다. 게다가 잠을 못 잔 날은 뇌졸중 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컨디션 난조가 심했다.
소화가 안 되거나 어깨가 경직되고 눈이 뻐근하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부가 가려운 증상들은 뇌졸중이 오기 전에 시달렸던 증상들이었다. 그런 증상들이 곧 재발을 암시하는 것 같은 무서운 느낌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혼자서 찬양을 듣다가 눈물을 흘리고, 카톡 하면서 울고, 샤워하면서는 엉엉 오열했다. 서 있다가 쓰러질 까봐 욕조 안에 앉아 샤워기를 틀어놓고 오열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두서없이 기도했다. 어떤 때는 통성으로 기도하기도 했다. 신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털어놓고 울부짖어야 했다. 퇴원 후 1~2달은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런 바닥에 홀로 웅크려 있었던 것 같던 시간도 구름이 걷히듯이 결국엔 지나갔다. 어느덧 일어서서 샤워를 하게 되고 제법 잘 걷게 되었다. 이제는 가족을 위한 요리도 할 수 있고 아이들 과자 봉지도 어렵지 않게 뜯어 줄 수 있었다. 홀로 우는 시간보다 가족들과 대화하고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렇게 일상을 되찾은 것 같다가도 다시 작은 좌절을 하는 순간들이 온다.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후의 일이었다. 이제 제법 잘 걷게 되어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 동네를 산책하고 있던 중이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10초 남았다는 표시가 있었을 때 나는 여느 때처럼 뛸 생각으로 횡단보도 건너기를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픈 뒤로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시간은 8초, 7초, 6초... 이렇게 줄어들었고 가슴은 타 들어가는데 몸은 얼어붙었다. 이미 온 길을 되돌아갈 순 없었고 나는 오른 다리를 약간 끌며 뛰는 듯 걷는 듯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혹시나 시간 안에 건너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하고 머리에 땀이 났다. 다행히도 빨간 불이 되기 전에 횡단보도 건너편에 도착했지만, '나는 아직 뛸 수 없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에 어깨와 고개가 축 쳐졌다.
어떤 날은 또 유달리 어지럽다. 특히 피곤한 날은 더 그렇다. 그런 날은 침대에 누우면 술에 취한 것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이제 글씨가 잘 써진다고 생각했는데 무심코 서명란에 적은 내 이름의 획 하나에 힘이 빠져있을 때가 있다. 입원 수속 때 서류에 기입했던 비뚤어진 내 서명이 갑자기 떠오른다. 나는 다시 손가락과 손목에 힘을 주어 다시 서명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처럼 작은 좌절과 근거 없는 불안이 나를 괴롭힐 때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지 말고 지금의 나와 한 달 전의 나, 두 달 전의 나, 세 달 전의 나를 비교해 본다. 내가 올라온 계단들을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내가 많이 회복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회복의 과정은 기나긴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정체와 발전을 반복하며 이루어졌다. 기다리면 더디지만, 잊고 있으면 어느새 몇 계단 더 올라와 있는 식이었다.
뇌졸중이 온 지 3개월이 되었을 때는 걷는 것은 물론이고 가볍게 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약간 남은 후유증이 있다면 피곤할 때 어지럼증이 강하게 느껴지거나 오른쪽 다리나 손이 툭-하고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또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다. 8개월 차에는 오른쪽 힘이 풀리는 느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어지러움의 정도도 그때보다 약해졌다.
몸의 상태가 뇌졸중이 오기 전과 똑같지는 않다. 조금만 무리해도 지나치게 피곤하고 가끔 어지럽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아직 못 해 봤다. 가끔 사람들이 많고 자극이 많은 곳에 다녀오면 기빨림을 넘어선 에너지의 소진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남은 것들을 후유증이라기보다 전쟁을 치르고 남은 영광의 흉터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영광의 흉터는 뇌졸중이 왔었다는 사실을 잊히지 않게 주고 나를 돌보게 한다.
몸은 서서히 회복이 되었지만 가끔 머릿속의 불안은 실체도 없이 그 존재가 커진다. 그럴 때는 누군가에게 내 불안을 실체화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퇴원 후에는 결국 재발에 대한 불안이 많았다. 감사하게도 남편과 챗gpt는 나의 염려를 지루한 기색도 없이 들어주었다. 그들은 이미 너는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약도 먹고 있고 생활습관도 바꾸고 있다며 안심시켜 준다. 남편은 따뜻한 눈길과 포옹으로 위로해 주고 챗gpt는 실제의 재발 증상을 나열하며 지금이 객관적으로 염려할 상황이 아님을 알려준다. 나의 불안의 목소리에 침잠하지 않기 위해 그들의 피드백을 동아줄처럼 꼭 붙든다.
뇌졸중이 왔을 때는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었는데 지금은 쌀쌀한 겨울의 끝 무렵이다. 어쨌든 지금 나는 일상을 되찾았고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면 제자리걸음 혹은 악화되는 것 같을 때가 많지만 그럴 때는 오늘과 지난달, 이번 달과 몇 달 전을 비교해 본다. 나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고 회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