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가 있다. 특히 서울에서 속초로 갈 때 타는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산악지형에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터널이 많다. 그중에 약 11km라는 국내 최장 육상터널인 인제터널도 있다. 터널이 무서운 4살 둘째 아이가 묻는다.
"언제 토놀이 끝나요?"
"이제 곧 끝날 거야"
터널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이내 아이는 울먹울먹 하며 소리를 높인다.
"응. 곧 끝날 거야. 걱정하지 마"
나도 내심 생각보다 긴 터널에 짜증이 난다. 드디어 터널을 나왔다 싶었는데 다시 터널이 또 시작된다. 아이의 울음이 터질까 조마조마하며 도로를 달린다.
뇌졸중이 오기 전부터 있었던 불면증은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끝없이 이어지는 터널 같았다. 분명 끝날 것 같다가도 다시 새로운 터널로 들어가고 며칠 좀 잤다 싶으면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금 불면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수면 부족이 쌓이니,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거나 예전에 재미있었던 일들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아 졌다. 사람이 무기력하고 불안해졌다. 가족들과 저녁 외식을 하고 돌아올 때 어둑한 도로를 지나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는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잘 흘려보내지 지도 않는 불쾌한 기분이었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사소한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고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요가를 등록하고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음 달에 다시 등록을 하러 갔다. 한 달 전에 내가 관리사무소에 직접 와서 등록을 했다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기 전 책을 읽어줄 때도 책의 내용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계처럼 책을 읽어줄 뿐이었다.
가끔은 엉엉 울었는데 실컷 울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정신과 선생님과 대화하면서도 울고 남편과 이야기하면서도 울었다. 혼자 일기를 쓰다가도 울고 드라마를 보면서도 울었다. 그 당시 유행하였던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도 내 울음벨이었다. 지나치게 무덤덤한 내 자신을 울어내면 조금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러닝을 하고 감정을 해소하다 보니 이따금 잘 자는 날도 생겼다. 그렇게 불면의 터널의 반대편 저 끝에서 빛 한 줄기가 비추는 것 같았는데...
2025년 7월 14일 내 뇌가 멈춰 버렸다.
'터널의 끝은 뇌졸중이었어.'
퇴원 후 잠이 오지 않는 밤 침대에 누워서 흐느끼며 생각했다. 내가 너무 불쌍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나의 불면에 전환점이 일어난 것은 그토록 자제하려고 노력했던 수면제를 매일 복용하고 나서였다. 물론 수면제를 복용해도 자주 깼다. 12, 2, 4, 5, 6시... 불면증에 시달려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시간 깨는 날도 있다. 그래도 약의 진정 효과 때문인지 다시 잠들 수 있었고 수면의 누적이 가져다준 회복 효과는 엄청났다. 무엇보다 사람이 달라졌다. 예전의 나로 돌아오는 반가운 느낌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다. 자기 전에 악령처럼 나를 뒤쫓던 불안한 생각들은 자고 나면 놀랍게도 사소해져 있었다.
그런데 2주쯤 지났을까.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1알로는 잘 수 없었다. 수많은 불면의 날들이 떠오르며 나는 또다시 두려워졌지만 수면제를 증량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면제는 도울뿐 나 스스로 자는 법을 다시 터득해야 한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불면보다 큰 문제는 불안이다. 불안이 커지면 그것의 존재감이 커지고 어느 순간에는 불안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하다. 하지만 수많은 불면의 밤을 지내본 결과 불안을 애써 무시하는 것보다 불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불안을 다독이는데 효과적이다.
불안을 언어화하는 것도 불안을 받아들이는 한 가지 방법이다. 내 불안에 대한 짧은 글을 쓰거나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말로 나온 불안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때가 많다.
누운 채 정신이 말똥해지고 몸이 긴장되는 게 느껴지면 4-7-8 호흡을 하며 천천히 충분한 호흡을 하고 짧은 기도를 하며 몸을 이완해 본다. 밀려드는 생각을 접어두고 호흡과 이완에 집중한다. 이 단계에서 감사하게도 잠들기도 한다.
혹시 잠들지 않으면 억지로 누워있지 않고 밖으로 나온다. 책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차를 한 잔 마시고 창밖을 바라본다. 마음이 평온해지면 들어가서 다시 잠을 청한다. 하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지체 없이 약을 먹었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밤보다 낮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는 애쓰는 모든 노력은 숙면에 독이 된다. 밤에는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낮을 나답게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은 하루 종일 열심히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아기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알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1~3시간마다 깨서 엄마 젖을 찾고, 보통은 1년이 되어도 통잠을 자진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유난히 잠에서 자주 깨서 3년까지는 통잠을 잘 안 잤던 것 같다. 그랬던 아이들도 지금은 비교적 잘 잔다.
나 역시 다시 배우는 중이다. 재활 센터에 다니며 걸음마를 다시 익혔듯이 다시 밤에 자는 것을 배우고 있다. 밤중에 깨었을 때 나를 다독일 엄마 같은 포근한 절대자는 없지만, 아기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포근하고 안락한 둥지를 만들어주었던 엄마에게 감사하다. 이제 스스로 그 둥지를 만들어 본다고 생각한다.
요즘 제법 잘 잔다. 간혹 7~8시간씩 푹 잘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잠이 안 오는 날도 더러 찾아온다. 그래도 그런 날이 조금은 익숙해지고 덜 무서워졌다. 지금은 터널의 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터널은 길게 이어지기도 하고 한동안 없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터널의 끝보다 도로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