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정신력으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술자리에 있을 때도 정신력으로 버티다 보면 술이 깨고 멀쩡해졌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스스로 그 우울을 파고 들어가 밤을 새웠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 정신이 은화같이 맑아지고 내가 새로운 사람으로 리셋되는 느낌마저 받았다.
나이가 드니 '정신력'이라는 것은 건강한 몸 안에서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밤을 새우면 정신이 은화같이 맑아지기는커녕 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머리가 멍하고 심장이 뛴다. 해야 할 일을 자꾸 놓치고, 굉장히 불안하고 무너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
나는 늘 정신과 몸은 별개의 것이며, 굳이 따지자면 '나'는 몸보다는 정신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 믿었던 것 같다. 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릴 때도 내 마음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지 이걸 몸의 문제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김주환의 <내면소통 명상수업>에서는 감정은 몸의 문제라고 명쾌하게 말한다. 그중에서도 불안감은 마음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편도체가 활성화 됐을 때 생기는 신체의 변화(심박수와 호흡의 증가, 내장과 근육의 긴장 등)를 우리의 뇌가 불안이란 감정으로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불안의 해결 방법이 아니고 몸의 내부감각을 처리하는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운동과 명상을 통해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불면증을 겪으며 이런 생각에 누구보다 동의하게 되었다. 생각은 생각보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의 이완은 어떠한 결심이나 생각의 전환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몸의 이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몸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러닝, 요가, 줌바 등을 해 보았지만 나에게 가장 효과가 컸던 운동은 PT였다. 뇌졸중 이후, 난생처음으로 그룹 PT를 받아 보았다.
운동이라고는 근처 체육회관에서 하는 요가 정도만 해 본 나에게 그룹 PT를 등록한 것은 과감한 시도이자 투자였다. 뇌졸중 후유증 회복이 다 되지 않았을 때라 내 몸으로 이런 운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뇌졸중이 아니었다면 PT는 내 인생에 없었을 선택이었을 것 같다.
헬스장에 들어가면 땀과 오래된 수건이 섞인 익숙한 냄새와 빠른 박자의 음악 소리가 나를 반긴다. 처음에 내가 하는 스쿼트나 플랭크 자세는 엉거주춤했고 가장 가벼운 5kg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데도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매트와 덤벨을 들고 하는 단체 운동에서는 제일 먼저 한계가 왔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회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체력은 내가 제일 약했다. 뇌졸중 환자라는 핑계가 없었다면 심히 민망할 뻔했다(?). 힘이 빠진 종이 인형처럼 펄럭거리거나 칠을 하지 못한 로봇처럼 삐꺽거렸다.
그러나 어색하고 불편한 내 자신을 견디고 그날의 운동을 해내고 땀을 흘리면 뿌듯해졌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 몸과 마음이 가뿐해졌다. 운동을 마치고 나온 뒤의 바깥의 공기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일상을 충실히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었다. 운동이 변화시키는 마음의 모습이 신기했다. 정신력으로 화를 누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더 다정한 사람이 된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 쌀쌀해진 바람을 느끼고,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4살 아이의 애절한 눈에 빠져본다. 공개 수업에서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는 첫째의 표정을 감상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들어온 남편의 축 처진 어깨를 안아준다.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고 충분히 느낀다. 나를 순간순간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잠이 조금 수월해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