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정

by 노엘

누구나 그런 음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왜 있잖아, 잊고 있다가도 우연히 들으면 쿵! 하고 시간을 거슬러 날아가서 지난 공기의 감촉까지 생각나는 그런 음악. 비웃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임 OST가 있어. 자주 듣게 되는 건 아니지만 스치듯 다시 만나게 되면, 한참 동안 몇 시간이고 듣고 있게 되더라.


그날의 나는 아직은 교복을 입고 있었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든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라든가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것들 뿐이었지만, 딱히 외롭거나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 밥을 먹지 않아도 항상 기운이 넘쳤고, 많은 친구를 사귄 건 아니지만, 얼굴은 몰라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었어. 아마 그때부터 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조금씩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작은 아버지가 집에 보내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매일매일 보고 또 보면서 지냈어.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것과 다르게 흑백의 미키마우스가 나오는 것부터 거의 모든 디즈니 캐릭터들이 주인공이 되어 나오는 것들이 많았어. 나는 그 시간 동안 얼마간 안심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 디즈니의 세계에선 모두가 행복하거든.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이란 걸 하게 됐지,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엔 일본 문화가 들어오는 건 불법이었고, 그야말로 어둠의 경로를 통해야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어. 게임, 음악, 영화, 드라마 모두.


그래도 이 돈이 되는 산업은 나 같은 어린 소년의 마음을 충분히 빼앗았고, 그때부터 읽지도 못하는 구불구불한 대사들이 나오는 게임들을 하게 됐었어. 작은 픽셀로 움직이는 주인공들의 정황만을 어림짐작으로 보면서 얼마나 울고 웃고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았는지, 현실에서와는 다르게 나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 말수가 적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았던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면 늘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어. 마치 이쪽이 현실이고, 저쪽 세계가 꿈인 것처럼.


좋아했던 것들은 모두 RPG 장르였어. 그래서 그런지 적게는 몇십 시간, 길게는 백 시간도 넘게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어. 그래서 그랬는지,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가진 가장 처음의 꿈은 게임 잡지의 기자였어. 그때는 매달 게임 잡지가 나오자마자 서점에 달려가서 사는 일도 너무 큰 즐거움 중 하나였거든. 자주 다니던 동네 서점에 새로운 책들이 들어오면 포장되어 있는 노끈을 직접 풀어서 계산을 할 만큼 기다리기도 했던 것 같아. 그런 게임 잡지를 만드는 기자분들은 당시의 내가 생각하기엔 꿈의 직업 같은 거였지, 가장 먼저 마음껏 게임도 하고,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이런 직업은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었어.


물론 나의 첫 번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0대 후반까지도 헤비 게이머였던 나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많은 부분 정서적 영향을 받은 것 같아. 20대가 되면서는 또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소설들을 읽기 시작하면 다른 방향의 변화를 겪지만, 그래도 가장 처음 나를 이루었던 마음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만났던 수많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의 음악을 들을 때면 그 무렵의 기억이 한 번에 뒤엉켜 돌아오더라. 단순히 게임을 하던 그 순간뿐만 아니라 내가 겪었던 10대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불안함과 설렘 같은 것들 모두 말이야.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고 나중에 OST를 듣는 거랑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해.


사실 일찍 자려고 했는데, 잠들기 직전에 들었던 오래전 음악 덕분에 왠지 뭉클해져서, 이런 일기도 쓰네. 거울 속의 나는 이제 어디를 보아도 아저씨 같은 모습이라, 한편으로 슬프지만, 코끝이 찡할 만큼 추억할 것이 있다는 건 그런대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 부디 너에게도 좋은 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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