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by 노엘

형태를 가지지 못한 단어들이 허공을 맴돌다 이내 사라져 갔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처럼 무엇 하나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떠한 단어를 내려놓아도, 문장 구조는 온통 앞뒤가 맞지 않았고, 제대로 된 생각이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이란 건 없었다. 이미 입술을 떠난 말들은 한겨울의 차가운 비처럼 서글프게 느껴졌다.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한 형태만이 존재했고, 그것은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고, 그럴 때면 얼마간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음날이면 늘 후회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바꾸고 싶다는 강박에 운동만큼은 거르지 않았다. 그런 반복이었다.


무언가 변해야 한다.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해서 새로운 일들을 몇 개인가 벌려 놓았다. 필연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해야만 하는 것들 뿐이지만 오랜만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다. 새로운 일들이 부디 더 좋은 곳으로 발걸음을 이끌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평소의 스스로답지 않은 근거 없는 막연한 바람도 가지게 됐다.


잠들지도 않았으면서 잠이 든 척 몇 번인가 같은 전화가 울리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먼저 말을 거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몇 번이고 마음을 먹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다 녹색 통화 버튼을 누른다.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한편으론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무의식 너머의 자아는 어딘가 한구석에서 온기 있는 기대 같은 걸 하게 된다. 나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하는 선택을 했다.


언제쯤 다시 전화가 울릴지는 알 수는 없다. 어쩌면 영원히 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글을 쓰다 보니 조금은 더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이어트 보조제 중에 なかったことに(없었던 일로)라는 것이 있다. 언제 보아도 대단한 제품명이다. 무슨 일을 저질러도 저 약을 먹으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있었던 일은 하나의 문장처럼 쉽게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했고, 존재하게끔 만들었던 사건들이 반드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각자의 형태는 다르지만 결코 간단하게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 번쯤은 무엇이든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사실은 먹어 보고 싶다. 서너 개쯤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겨울이 끝나간다. 무미건조한 구정 연휴가 지났고 벌써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2월이 됐다. 얼마간 떨어진 붉은색을 좋아하는 나라에선 최악의 동계 올림픽을 하고 있고, 그 건너편에 있는 유럽의 경계에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와 화합의 상징의 행사를 치르는 동안 선전포고에 가까운 말들이 오간다. 펜데믹은 여전히 막막 하지만, 정권이 바뀌는 시기가 다가오면 여러 정세가 변하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감이 있다.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고, 여전히 모든 계절을 기다린다. 가장 처음 꿈을 이루기로 마음먹었을 때 다짐했던, 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둘러보아야겠다. 갈 길이 멀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고,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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