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비는 시간에 다른 일이 하고 싶어서 했던 일은 일본어 학원을 다니는 일이었다. 딱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흥미가 있었던 언어라 적당히 이 정도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회화 초급 무렵의 일이었다. 클래스에서 눈에 띄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자꾸만 수업 전후의 동선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여자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일부러 나의 동선과 겹칠만한 곳을 다녔다고 고백했다.
그리 오래 만남이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여자아이의 적극적인(?)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사건이라 그런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아이는 때때로 생각이 난다. 기묘한 건 사귈 때의 일 보다도 우연히 마주쳤던 자동판매기 앞이라던가 그녀가 계획했을 것 같은 그런 불확실한 상황들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이었다.
물론 나도 그런 짓을 했던 적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중반 무렵까지 좋아했던 첫사랑의 여자아이가 있었고, 방과 후에 그 아이가 다닐만한 동선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같이 집 앞까지 몇 번이고 데려다주는 부지런한 일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째서 제대로 고백하지 못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여름방학 때 여자아이가 밤늦게 집에 전화를 걸어서 고백을 해왔는데, 결국은 이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마치 징크스처럼 여자아이가 먼저 다가온 경우에는 제대로 오래 만난 기억이 없다. 지금 보다도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이었던 나는 어디를 두고 보아도 별로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늘 머뭇거리다가 많은 일들을 놓쳤다. 유감스럽게도 현재라고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만 쓰고 보면 인기라도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보기 좋게 차인 일도 당연히 있다. 자세히 쓰기엔 슬프고 속상하기 때문에 쓰지 않을 뿐이다. 생각만 해도 속상하기 그지없다. 그 사이엔 적잖은 오해도 있을 것이고 더 제대로 설명하고 싶은 것들이 이틀 밤을 새울만큼 있지만, 다시 만나기라도 해야 변명이라도 할 텐데, 그럴 수 조차 없는 것이다. 남은 건 쓸쓸한 마음과 외로움이다.
예고라도 했던 것처럼 낮잠을 자고 수영을 다녀왔다. 그리고 거실 책상 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두고,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다.
나는 여기에 존재하지만 당신들이 없었다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