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레이스 촬영이 끝나고 호텔에 돌아와 잠깐 눕는다는 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두 건의 부재중 전화가 도착해 있었다. 저녁을 함께 한다 해놓고 보이지 않았기에 걸려왔던 전화였다.
시간은 오전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벌써 해가 뜬 여름의 아침은 이미 놀라울 만큼 환했다. 왠지 이대로 집에 돌아가는 게 아쉬웠다. 짧은 고민을 하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양양을 향해 차를 몰았다.
7시 무렵 해변에 도착했다. 트렁크에서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파도가 가까운 해변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파도소리를 듣다, 파도소리와 함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작은 문고본이 하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행복했다.
오랜만에 신발을 벗고 해안가를 걸었다. 짙은 바다 냄새가 났다. 밀려온 파도가 발끝에 닿으면 아직은 놀라울 만큼 차가웠다. 햇볕에 그을린 하얀 모래사장에선 그리운 냄새가 났다.
이른 시간에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잠버릇이 그대로 남은 표정으로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이었다.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싶었지만 이런 시간에 문을 연 곳은 편의점 정도밖에 없었다. 모래를 털고 신발을 갈아 신고 다시 서울을 향해 달렸다. 여전히 이른 시간이라 큰 정체는 없었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모든 일들이 지난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창밖에선 한여름의 냄새가 났다. 이따금 비가 내렸고, 일기예보엔 우산 그림이 제법 늘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