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에이전시 실장님은 이달은 안 바쁘다며 어딜 또 이동 중이냐고 채근하듯 물어왔다.
"아, 저 수영장 다녀오는 길이에요. 너무 한가해서 낮에 수영 갔어요. 아하하."
"진짜 무척 한가해요. 큰일이에요. 이번 달은 굶어야 할 것 같아요."
볼 멘 소리로 시작한 전화 통화에 에이전시 실장님은 대외적 이미지 관리 좀 하라며 웃으며 나무랐다.
"그렇게 한가한 척하면 안 돼요! 바쁘고 잘 나가는 척해야지. 전화도 바로바로 받지 말고 좀. 촬영 중이니 끊었다가 다시 걸고 그렇게 말이야."
"아이고 그래야 하는 걸까요? 그래도 실장님이니까 이렇게 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죠! 하하"
새삼 고마웠다. 많은 현장들을 다니고 겪지만 일로서 함께 오래오래 편안한 사이가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항상 결과를 내야 하고, 끊임없이 선택받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게 남고 남고 또 살아남아야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동시대의 동료(?)가 된다.
기분은 매일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동안 시야에서 멀어진 것들에 집중을 해보려 하다가도 중간중간 정리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나면 다시 산만해져서 금세 많은 것들을 놓친다.
실망감이 하나 둘 쌓여 어떠한 사건이 트리거가 되었고, 그로 인해 얼마간 제대로 설명이 안 될 만큼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몇몇 작은 칭찬들과 응원의 말들에 심연의 먼지를 털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도, 결국은 누군가의 관심과 온기 어린 말들이 오늘을 살게 한다.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