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글루스를 본다. 지금이야 이글루는 에스키모인이 사는 그거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가장 오래 사용했던 블로그 플랫폼이기도 하고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사용자도 상당히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일기처럼 남겨둔 기록이며 사진들이 2003년부터 있는데, 오늘처럼 저녁에 잠들었다 밤늦은 시간에 눈이 떠지면 다시 둘러보기 딱 좋은 그런 곳이다. 자정을 넘긴 지금은 시간여행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고.
이젠 유저 유입도 없고 서비스가 언제 종료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이 큰데, 마땅한 백업 방법이 없어서 사진이며 글을 전부 수동으로 정리해야 하는 수고로움에 쉽게 손을 대기가 어렵다. 이 방법에 대해선 운영진 쪽에도 문의를 했는데, 역시 직접 수동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최근에는 포스팅이 없지만 초중반에 한창 열심히 했던 덕분에 어림잡아도 1800개 이상의 포스팅이 있고, 많지는 않아도 덧글도 함께 정리하려고 하면 아마 몇 주는 족히 걸릴 것 같다.
03년이면 17년 전이다. 오래도 됐다. 체감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숫자다. 나에게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는 게 영 피부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집은 멀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주로 혜화동과 종로, 인사동, 삼청동 같은 곳에서 생활을 했다. 모두 걸어서 한 번에 다닐 수 있을만한 동선이고, 특히나 혜화동 - 인사동 -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참 좋아했다
걷는 길엔 창경궁과 창덕궁이 있어서 마음만 내키면 얼마든지 예쁜 풍광을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늘 튼튼한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도 물론 얼마든지 주머니에서 꺼내 쓸 수 있었다. 그 시기의 삼청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훨씬 전의 모습이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 아니었고, 도로 정비며, 그럴듯한 레스토랑 같은 것은 적었지만, 마음 편히 평화롭게 산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물 같은 장소였다. 지금은 물론 명소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아쉬운 기분이 든다.
혜화동엔 값싸고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 바가 있었고, 기분을 내고 싶으면 재즈 라이브를 하는 펍에 갈 수도 있었다. 돈이 없을 때면 낙산공원에 캔맥주를 사들고 올라서 밤새 마시기도 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면 종로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때때로 성균관대 근처의 구석진 술집 같은 곳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이 근처에선 별로 성공했었던 기억은 없다. 그보다 혜화동 4번 출구 뒤편의 미로 같은 골목골목엔 아지트처럼 좋은 곳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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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을 계속하다 보니 06년의 귀여운 일기가 있어서 잠깐 첨부. 시기는 2월이다.
8일. 우체국에 우편물을 보내러 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편 창구 앞에 서서 보낼 우편물을 접수하고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구석에 있는 소포 전용 창구에 있던 여자아이가 판매하는 작은 소포 상자를 들고 일반우편 쪽으로 다가왔다. 뭔가를 써야 한다고 직원이 말하는 게 얼핏 들렸다. 아마도 그 소포는 일반적인 우편이랑 뭔가 다른 사유가 있었나 보다. 조금 특별한 장소에 간다던가 하는.
여자아이의 키는 155 정도였고, 작고 흰 얼굴에 동그랗고 검은 눈, 얇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어깨에서 살짝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에 층을 낸 스타일이었고 염색은 하지 않았다. 나이는 많아도 17살 정도로 보였다. 데님으로 된 스커트 차림이었고, 그 아래엔 겨울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레깅스와 눈에 띄지 않는 캔버스화를 신고 있었다. 계절감이 있는 후드가 달린 재킷을 입었고, 장갑이나 머플러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체국 직원은 여자아이에게 내용물을 물어봤고 "초콜릿이요!" 하고 여자아이는 두근두근하고 설레는 톤으로 답했다. 그제야 난 '아.. 오늘이 8일, 곧 밸런타인이구나...'하고 알아챘다. 그리고 저 예쁜 아이가 주는 초콜릿을 받을 주인공이 부러워졌다. 부러워 죽겠다. 샘난다.
결론은 여자아이는 예뻤고, 부럽다는 것.
* 우체국 직원이 써야 한다던 그 무엇은 다시 생각해보니 밸런타인 날짜에 맞춰서 보내는 우편에 대한 정보 기입(같은 것이 있다면) 같다.
7일. 어제 아침.
"눈이 와요... :)"
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상태라서 두꺼운 옷으로 꽁꽁 둘러싸고 코트를 입은 상태였는데, 문자를 받고 코트를 벗어두고 새로 입을 옷을 찾았다.
움직이기 편한 반팔 티셔츠 위에 다크 브라운의 폴라티셔츠를 입고 후드가 달린 니트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 움직이기 편한 봄, 가을용 재킷을 입었다. '눈이 내리는 날은 덜 추우니까 괜찮아'하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챙겼다. 리더기에 꼽힌 CF를 빼내어 카메라에 넣고 빌링햄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출근시간 따위 생각도 안 하고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출근했다.
그리고 15분 정도 지각.
뭐, 가끔은 이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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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한 기억으론 8일의 일기를 보고 여자 친구는 화를 냈었고(지금 보니 그럴 만도 하다) 7일의 나는 호기로웠다. 무엇을 입었는지에 대해 집착이(?) 있었고, 옷을 상당히 레이어드 해서 입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예전엔 정말 몇 겹씩 입으면서도 레이어드가 된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어서 옷을 살 때면 항상 그런 부분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내가 사진가가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때 이기도 하다. 늘 카메라와 함께 했지만 그저 주변의 사람들의 표정과 기울어지는 빛, 반짝이는 풍광들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가끔은 스스로가 써 놓은 일기들이 정말 이랬다고? 싶을 정도로 느껴질 때가 있다. 사진도 물론이고, 특정한 시기를 지나면서 그 순간들을 남길 수 있었다는 건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최근에도 아주 가끔씩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 덧글을 남길 때가 있었다. 나조차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문득 사진과 글이 생각나서 왔다고 여기저기 보물을 숨겨두듯이 몰래 남기고는 사라진다.
그곳엔 우리가 함께 느꼈던 어렴풋한 온기가 남이 있었다. 온 세계가 막연하고 불투명했지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희미한 예감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