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일정 동안 거의 매일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를 서울에 돌아와서도 이따금 틀어둔다.
늘 듣던 곡도 아니라 크게 귀에 익은 것도 아닌데도 플레이가 시작되면 그날의 일들이 조각조각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침 커튼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지던 햇살과 나른한 표정으로 웃는 카나의 표정, 침대 옆에 기대앉은 채로 초콜릿 맛 크루아상을 졸린 눈으로 먹는 얼굴. 전쟁이 없던 오래된 시대의 영화를 틀어 놓은 것처럼 믿을 수 없이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얼마 전에 후배와 술을 마시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하게 됐다. 이런 대화는 실로 무척 오랜만이었는데, 아마 10년 전 정도는 된 것 같았다. 그사이 그는 결혼했고,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그리 멋진 사진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이런 감정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따금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해진다. 확실한 행복과 어떠한 불안들 사이에서, 가을이 깊어지고 따뜻한 겨울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