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제 그러면 안돼, 상대방 기분도 생각을 해야지" 안타깝다는 듯이 j가 말했다. "알아, 나도 아는데... 이게 나로선 어떻게도 할 수 없었어."
"네가 나이가 든 만큼 마음도 함께 나이가 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 같아 슬프다" 며칠 전 전화를 걸었던 j로부터 나는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다그침을 받고 있었다.
"그나저나 요즘 네 포트폴리오가 궁금한데 많이 바뀌었어?" 그는 더 이상 그 일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말을 돌렸다.
"물론이지, 마지막으로 보여준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제법 많이 변해 있을 거야, 예전에는 어떻게든 페이지를 늘리려고 했다면, 지금은 무얼 빼야 하나 고민하고 있거든"
"혹시 그 사진 아직 들어가 있니? m의 사진 말이야" 순간 어리둥절했다. 설마 그 m을 지금 갑자기 물어보는 건가 싶은 마음에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혹시 정말 그 애를 말하는 거야? 나는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응 맞아 그 m” 붉은 신호가 꺼지고 녹색 신호가 들어왔다. 집까지는 앞으로 5분 정도면 도착한다.
"응 빼게 된 지 좀 오래됐어, 그리고 그 일이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야, 정확히 10년 전 이맘때였어, 나는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매일이 천국 같기도 지옥 같기도 했었는데, 그리고 앞으로 10년 정도가 흐르고 나면 조금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완벽한 착오였던 것 같아, 여전히 멍청한 일들을 늘어놓기만 하고, 불안하고 여유도 없고 서글프기만 한 사람이네"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고 있어?"
"아니 전혀 몰라, 연락조차 닿지 않는데 알 길이 없지. 그래도 잘 살 거야 아마, 눈에 띄는 미인이고,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인기도 많았는 걸, 그랬으니까 지금쯤이면 결혼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아이가 하나 둘 있어도 이상한 나이는 아니지, 아님 죽었을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백이야."
문득 10년 전 여자아이의 생일 같은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계절 정도는 떠오르지만 정확한 날짜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당시엔 평생을 가도 잊히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들도, 이젠 많은 부분이 무뎌졌다. 함께 했던 거리도 몇 군데를 제외하곤 몰라볼 만큼 변했고, 나의 모습도 함께 변했다.
어떠한 힘겨운 날들이 지났다 했어도 거짓말처럼 봄은 다시 찾아왔고, 어쩌면 마음에도 조금은 시간이 쌓여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모른 척, 괜찮은 척하며 스스로를 속여왔던 시간이 속상할 뿐이다. 사실 조금도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곧 망가질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주차장 셔터가 열렸다. 차문을 열고 내리자, 바람이 불었다. 그날과 같은 봄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