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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Kim Oct 10. 2017

과거를 기억하는 두가지 방법

일본 드라마 <게게게의 아내>와 <벳핀상>

게게게의 아내(2010)

주연: 마츠시타 나오(松下奈緒), 무카이 오사무(向井理)

장르: 아침드라마

편성: NHK

편수: 156부작


벳핀상(2016)

주연: 요시네 쿄코(芳根京子), 나가야마 켄토(永山絢斗), 렌부츠 미사코(蓮佛美沙子)

장르: 아침드라마

편성: NHK

편수: 151부작


 아사도라(朝ドラ)라고 불리는 일본의 NHK 아침드라마(이하 아사도라)는 한국의 그것과는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아침드라마가 막장성의 표본이라고 불린다면 아사도라는 매우 건전한 이야기가 주제로, 1961년부터 지금까지 연속TV소설(連続テレビ小説)이라는 이름으로 56년간 97편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한국이 이를 따서 1987년부터 KBS에서 TV소설이라는 이름으로 1950~1970년대를 다룬 작품을 9시부터 방영하고 있다.) 일본 드라마 중 아사도라는 NHK 대하드라마와 더불어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두 드라마 모두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고,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이나 다른 행사가 있더라도 이 드라마는 결방된 적이 없었으며, 국가적 재난이나 속보가 더해질 경우에는 결방이 되는 정도이다.(최근에는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가로질러가는 바람에 2차례 결방 <사실은 다음날에 연속방송했다.>된 적이 있으며, 일문판 위키백과에 보면 전 드라마의 결방이 된 적을 따로 정리해놓을 정도로 드물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8시부터 15분간 방영되는 아사도라는 일본의 아침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일본의 현실과 문화와 변천 그들의 가지고 있는 생각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민영방송사가 아닌 공영방송사에서 방영되는 작품인 만큼 정권에 따라 어떻게 과거에 대하여 바라보고 있는지, 주요 국가시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나마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소개할 아사도라의 두 작품인 <게게게의 아내>와 <벳핀상>은 2010년 이후, 일본이 어떻게 과거를 보고 있고 그 인식이 어떠한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은 모두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1930년대 전전(戰前) 시기로부터 시작해 전후 혼란상과 고도경제성장 시기를 거쳐 1980년 버블경제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전후 혼란상을 극복하여 성공하는 인물을 다루거나(벳핀상), 그 조력자를 다룬다.(게게게의 아내) 또한 두 작품의 주인공은 직접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당사자의 주변 인물(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아내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게게게의 아내>의 경우 민주당 정권 초기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 시기에 구성(2009년 하반기)되어 하토야마 내각과 간 나오토(管直人) 내각 시기에 걸쳐서 방영되었다는 것이고(2010. 4~10) , <벳핀상>의 경우, 자민당 재집권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시기의 황금기(2015~2016)에 구성, 방영되었다. 이 두 작품의 소개를 통해서 2010년대의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일본의 과거를 보는 시각이 바뀌어왔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게게게의 아내>의 과거를 보는 방법

 

다소 특이한 만화가인 미즈키 시게루를 돕는 아내 후미에

 <게게게의 아내>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게게게의 키타로>를 그린 일본의 대 만화가인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와 그의 아내 무라 누노에(武良布枝)의 삶을 모델로 한다. 원작 자체가 2008년에 출판된 무라 노누에의 동명의 수필이기 때문에 주인공인 아내가 남편인 미즈키 시게루를 돕고 바라보는 전형적인 조력자 포지션이다.

 주인공인 이다 후미에(마츠시타 나오)는 시마네현 오오츠카 마을의 술도가집의 3녀로 태어난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키가 매우 커서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가 중매로 39세의 노총각이자 대여 만화를 그리고 있던 무라이 시게루(무카이 오사무)와 결혼하게 된다. 무라이 시게루는 미즈키 시게루라는 필명을 가지고(미즈키 시게루는 본명이 무라 시게루다.) 그림연극의 그림부터 시작하여 대여 만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한때는 돈도 꽤 벌었었지만 대여 만화가 출판만화에 밀려 사양산업이 되기 시작하고 전형적으로 음침하고 괴기스러운 요괴 이야기를 주로 썼던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 스토리와 화풍을 독자들이 외면하면서 곤궁한 생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급하게 결혼한 후미에는 이러한 곤궁한 생활과 별난 시게루의 성격에 적응을 못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조력자로서 활약을 시작한다.

다소 당신의 유행과 거리가 멀었던 시게루의 화풍.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그림을 은연중에 감동하고 있었다. 

 시게루가 특이한 스토리와 화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요괴와 원초적 현상에 관심이 많은 성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평양전쟁에 징용됐던 기억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고 관심도 없었던 시게루는 남방 라바울 전선으로 배치를 받았다가 원주민 아이들과 교류를 했고, 이것이 상급자에게 걸려 구타 후에 징벌방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연합군의 폭격을 맞아서 왼팔을 잃게 된다. 그것도 의약품이 없어 마취 없이 왼팔을 잘라내야 했던 끔찍한 기억이 미즈키 시게루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러한 기억이 그의 특이한 화풍과 성격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또한 당시 남자들이 남아있던 전쟁의 트라우마들도 작품 속에 잘 담아져 있다.


팔대신 왼 어깨로 종이를 누르고 몰두하여 만화를 그리는 시게루의 모습을 보고 후미에는 감동한다.

 미즈키 시게루는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전쟁만화도 그렸는데, 그의 무기에 대한 지식이 매우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만화는 전혀 인기를 끌지 못한다. 멋있고 항상 이기는 일본군대가 아니라 전장의 비참함과 처참함을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름 자체가 <패주기>와 같은 이름이기 때문에 당시 일본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한다. 멋있는 전쟁만화를 그리지 못해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비아냥을 받곤 했지만 그가 후미에에게 "나는 멋진 전쟁만화를 그릴 수 없어."라는 말로 전쟁의 끔찍함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일부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게 바로 진정한 전쟁만화야.", "전장을 그대로 다루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다.


인기만화가가 되고 난 다음 시게루는 이렇게 남방의 토속물품을 모으는데 여념이 없다.

  <게게게의 키타로>와 <악마군>의 대히트로 인기 만화가로 자리 잡은 시게루는 난데없이 남방의 물품을 모으거나 토속음악을 듣고 라바울을 다녀오는 등 토속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심에 대하여 후미에를 비롯한 가족들과 어시스턴트들은 다소 희한하게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전쟁만화 한편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전원 옥쇄하라!>(総員、玉砕せよ!)이다.  


시게루는 태평양전쟁의 자신의 실화를 토대로 <전원 옥쇄하라!>라는 만화를 그리기로 한다.

 극 중에서는 시게루가 인정을 받기 전 가난한 생활을 다루기 위해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이 만화가 나온 것으로 각색되었지만 실제로는 1973년에 이 만화가 나왔다. 드라마에서는 군대 내에서 모두 자신을 싫어했지만 유일하게 인정해주었던 군의관을 만나고 그때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 당시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전부 전사했다고 전해오면서 그것으로부터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그 당시로 돌아가서 군의관이 전투를 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전멸을 당한다고 울면서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중대장은 국가와 천황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병사들에게 '전원 옥쇄'를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대장은 개인의 꿈, 희망은 무시하고 국가와 천황에 대한 충성만을 요구하면서 전장에 뛰어들게 만든다.

 이 장면은 시게루가 팔을 잃은 장면과 더불어 나오는 두 가지의 전쟁에 관련된 장면인데, 첫 장면이 보편적인 전쟁의 참혹함과 시게루의 운명을 이야기한다면 두 번째 장면은 국가주의에 대한 허구, 전쟁의 종반에 다다르며 점차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해가는 일본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전원, 옥쇄하라>는 당시 시게루가 겪었던 전쟁의 참상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마지막 장면은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유골이 모아져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전쟁에서는 그들이 외쳤던 국가주의, 충성, 대동아공영 등의 구호가 하나도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것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반성하는 모습을 미츠키 시게루라는 인물과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방영되던 2010년은 패전 65주년이었으며, 이 에피소드는 패전의 기억이 무르익는 8~9월에 방영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와 공영방송 NHK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게게게의 아내>는 이러한 반전과 반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청률의 저조로 전통의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던 아사도라의 위기설을 잠재우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평균 시청률의 상승은 방송시간의 변경, 일본인이라면 누구라도 봤을 작품을 그린 대만화가의 인생을 다루고 1950~1980년대의 대중문화를 드러내어 추억을 불러일으켰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전쟁의 참혹한 진상을 드러내고 생각했다는 여지를 주었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벳핀상>의 과거를 보는 방법


<벳핀상>은 4명의 친구가 위기를 넘기고 유아의류 전문 메이커를 만들어서 성공시킨다는 이야기이다.

 <벳핀상>은 일본의 유명한 유아의류 메이커 <패밀리아>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반노 아츠코(坂野淳子)와 그의 동료들의 삶을 모델로 하는 드라마이다.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4명의 친구들은 전쟁 후 각자의 현실 속에서 좌절하다가 다시 만나게 되고 아이들의 옷을 만들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주 내용이다. 주인공인 반도 스미레(요시네 쿄코)는 전쟁 전에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몸이 약했던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의류회사로 상당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던 반도 영업부의 창업자 반도 이소야였으며 자매간의 우애도 좋아서 유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 반도 이소야는 전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던 1942년에 귀족원의 의원으로 선임되어 정치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바느질과 의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스미레는 여학교에 가서 자신의 뜻과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어울리게 된다. 좋은 옷을 디자인하여 만들고 싶다는 친구들의 꿈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서 무너지게 된다. 그나마 스미레는 축복받는 결혼과 임신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15년 연상의 남자와 급하게 결혼을 한다거나 몸이 약해 몸져눕는다거나 전쟁 과정에서 어머니가 사망한다거나 하며 꿈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또한 남편들을 전장으로 보내게 된다.


공습이 격해지자 반도가의 여자들은 규슈로 피난을 가서 고단한 생활을 한다.

 살고 있던 고베에 연합군의 공습이 심해지자 아버지와 집사를 제외한 반도가의 여자들은 종가가 있는 큐슈로 피난을 가게 된다. 전쟁으로 팍팍하게 살던 시기고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좋지 않게 결별한 관계로 괄시를 받으면서 살게 된다. 나가서 밭일을 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거나 스미레의 딸인 사쿠라가 간밤에 울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함부로 양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뺨을 맞는다거나 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패전 이후에 돌아간 고베의 저택은 공습으로 산산히 무너졌다.

 1945년 패전 이후, 큰아버지의 압박을 받으면서 돌아간 고베의 본가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산산이 무너져있었다. 전쟁으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아버지의 회사인 반도 영업부도 전쟁 전에 강제적인 합병으로 없어졌지만 공습을 통해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상황인 것이다. 이곳에서 스미레는 타다 남은 자신이 결혼할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의 유품이기도 한 타 다남은 웨딩드레스와 폐허가 되어버린 자신의 본가를 보면서 스미레는 자신의 아이를 안고 굳건히 살 것을 다짐한다. 


스미레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면서도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전쟁의 혼란상은 좌절을 만들어낸다.

 그 이후에 보이는 전후 혼란상은 일본이 얼마나 혼란했는가도 느끼게 해주지만 전쟁에서 진 자신들도 당연히 피해자임을 드러내고 있어 상당히 언짢게 느껴졌다. 배급을 받기 위해서 선 줄, 엄청난 인플레이션 거리에 픽픽 쓰러져 있는 귀환병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모습이나 그들에 대한 원망은 하나도 들을 수 없다. 특히 성공한 사업가에 귀족원 의원으로 정치까지 하여 이 혼란의 책임이 있는 반도가의 사람들마저 폐허가 된 집터 등을 통해 같이 자신들도 피해자로 나오게 되는 것은 공감하지 못할 내용이다.


미군정은 각 은행의 예금 인출을 금지하고 세금을 걷자 혼란에 빠진다.
패전 이후 미군들을 접대하던 카페 앞에서 일가족을 잃고 먹고 살기 위해 접대부로 일하던 여학교 동기를 만난다.

 회를 거듭할수록 "일본인은 피해자"라는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장 먹고살건 없지만 그동안 모아놓았던 예금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스미레는 미군정이 은행의 예금인출을 정지시킴에 따라서 또 한 번 좌절하게 되었다. 또한 여학교 때 매우 도도하고 자존심이 높았던 동기가 일가족을 잃고 미군을 접대하는 카페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만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의 광기는 없어지고 점령군인 미군정이 일본인을 착취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들이 식민지에서 벌였던 착취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나 장면도 없이 이러한 모습만을 강조하는 것은 식민지의 역사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굉장히 꺼려지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던 아버지 이소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쟁중의 자신의 정치행위를 합리화 시킨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느꼈던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었다. 귀족원 의원이었던 이소야가 스미레의 간이주택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귀족원 의원이 된 것은 "이 나라를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전쟁에 패하고 나니 미군에게 괴롭게 취조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귀족원 의원으로서 전쟁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좋게 만들기 위해 의원이 됐다."는 말로 자신의 정치행위를 합리화시킨다. 이는 "일본인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말을 넘어 "일본의 지도층들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범위로 확산이 된다. 그들에게는 전쟁으로 인해서 젊은이들이 청춘과 목숨을 잃고 식민지 사람들이 엄청난 착취와 학대를 당하고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도 "이 나라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드라마 내용 상 반도가의 몰락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이 장면이 들어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식민의 역사를 안고 사는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스미레와 그 동료들의 꿈이 출발하는 장면인 드레스를 만드는 장면.. 하지만..

 스미레는 자신의 바느질 솜씨를 이용하여 소품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하나의 사치품으로 인식되어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인 기자가 그 모습을 보게 되고 임신한 자신의 아내와 태어날 아기를 위하여 기저귀를 만들어줄 것을 부탁받는다. 스미레는 열심히 기저귀를 만들어가지만 미국식 기저귀가 아니라 일본식 기저귀를 만들어가는 바람에 퇴짜를 맞게 된다. 스미레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집에서 메이드로 일하던 사람의 딸이자 산부인과 간호사인 아케미를 만난다. 아케미는 전쟁 전에 도둑으로 몰리기도 했었고 어머니가 전쟁 중에 죽어 스미레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미레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해서 앙금을 푼다. 아케미가 가르쳐준 지식을 이용하여 다시 미국식 기저귀를 만들어가자 부인은 너무 반가워하면서 저번에 했던 무례에 대해 사과하게 된다. 그리고 출산 이후에 자신의 딸이 입을 드레스를 부탁받게 된다. 재봉기술과 디자인이 뛰어났던 여학교 동기 2명을 만나고 설득 끝에 드레스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 드레스는 어머니의 유품이자 자신이 입었던 웨딩드레스로 만든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연합군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자신의 저택에서 발견한 타다 남은 드레스이다.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담겨 있는 물품을 자신이 혼란에 빠지게 만든 국가의 상대에게 선물로 준다는 것은 간단하게 보면 상처를 씻고 관계를 복원하며, 자신의 행복했던 순간만큼 아이들도 잘 살길 바란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만든 당신들을 용서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스미레는 자신의 동기와 아케미와 함께 '키아리스'라는 유아의류업체를 설립하게 되고, 나중에 일본 최고의 유아의류 업체로 성장시킨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들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지만 키아리스를 운영하는 아내들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목표를 삼는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1970년 오사카 엑스포를 통해서 스미레와 동기들의 꿈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간단히 본다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지만 2010년의 반전과 반성의 메시지에서 벗어나 2016년에는 "일본인 자신들도 피해자이며 이것을 딛고 고도성장을 이루어내었다."는 메시지로 크게 변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정치적 우경화가 드라마의 메시지의 변화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사실, 두 개의 관점


 2010년의 <게게게의 아내>, 2016년의 <벳핀상>은 똑같은 시기를 다루고 있지만 역사를 보는 방법은 정반대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무의미한 전쟁의 참상과 비참함 그리고 반성을 담고 있고, 다른 하나는 그때 당시에 살아가고 있던 전범국가도 결국에는 피해자임을 담고 있다. 공영방송인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이렇게 불과 6년 만에 메시지가 정반대로 변화한다는 것은 결국 당대의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바뀐 것은 리버럴 정부에서 보수 정부로 바뀐 것이며, 과거에 대한 인식 역시 6년 새에 크게 보수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변화가 결국 과거에 대한 관점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드라마도 이렇게 정치적 관점에서 읽어야 하느냐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당대 사회의 문화만 담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드라마가 될 수는 없다. 당대의 모습 전반을 담는 드라마는 정치적인 메시지도 결국엔 담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례는 2016년 촛불 혁명 이후 나왔던 드라마가 무능하고 위헌적인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드라마가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아사도라의 각 작품들은 결국 아사도라라는 한틀로 묶여서 시대상의 변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기존에 보여주었던 메시지가 보수적 메시지로 변화하고 과거의 하나의 사실을 다른 관점으로 덮어 사실을 흐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보니 상당히 우려스럽다. 과거를 뛰어넘고자 한다면 결국에는 자신들의 과오를 제대로 바라봐야 하는 과정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아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그 메시지를 드라마에 까지 담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일관계가 나아지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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