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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Kim Aug 31. 2016

내 마지막 쉴 곳은 행복한가?

일본 드라마 <마지막 거처>

일드 <마지막 거처> 공식 포스터

마지막 거처(2014)

주연: 키리타니 미레이(桐谷美玲), 오카다 요시노리(田義德), 히라이즈미 세이(平泉成), 카토 토라노스케(加藤虎ノ介)

장르: 사회물, 추리물

편성: NHK BS 프리미엄

편수: 2부작


 인천지하철 2호선 개통 이후에 버스노선이 2호선을 타게끔 바뀌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언젠가 무인운전에 2량 경전철인 그 열차에 올라서니 상당히 놀랐는데, 바로 앉아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노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개통한 지 얼마 안 되었고 게다가 무인운전이기 때문에 구경하러 오신 분들이 많았겠지만 좌석에 앉아있는 분 대부분이 노인인 것을 보고서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길어졌고 1954년부터 1963년까지의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령화 사회가 시작되었다. 급격히 늘어가는 노인 인구에 비해서 노인들에 대한 복지에 대해 쓰이는 비용은 상당히 정체되어 있고 이들을 부양해야 할 청년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거리나 지하철에서 보이는 행실이나 언행들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것은 급격하게 변화한 사회의 단절 현상이기 때문이지 '노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의 '노인'과 앞으로 노인이 될 '우리'들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과 죽음을 영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접한 드라마가 바로 <마지막 거처>이다.


주인공인 아사쿠라 토모코(키리타니 미레이)는 '자택간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아사쿠라 토모코(키리타니 미레이)는 의욕이 넘치는 신입기자이다. 미국에서 MBA를 전공하였으며 다이니치 신문의 스폰서인 아사쿠라가의 큰손녀 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신문사 기자들 사이에서는 낙하산으로 여겨져 무시를 당하거나 데스크는 대놓고 현장 대신 경영기획실로의 이동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토모코는 자신만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바로 첫 번째가 '자택 간호'에 관련된 기사였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 병원에서 벗어나 자택에서 요양을 하는 이른바 '자택 간호'는 시설이나 병원보다 안정적인 집에서 가족들과 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토모코 역시 미국 유학 중 잠깐 들어와서 본 자신의 할아버지의 '자택 간호'를 보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택 간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기사를 기획하기 시작하지만 '자택 간호'의 현실을 접하게 된 다음 이 기억은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토모코는 이키모토 간사와 자택간호 현장을 방문하며 현실을 깨닫는다.

  토모코는 자택 간호 전문시설인 은사랑회의 간사인 아키모토 나오미(오카다 요시노리)의 협조를 얻어 3군데의 자택 간호 가정을 방문하게 된다. 첫 번째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부인인 할머니가 간호하는 이른바 '노노간병'가정, 두 번째는 척추를 다쳐서 움직일 수 없는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서 가게가 잠시 한가해지는 낮시간대에 왕복 3시간을 소비하며 오가는 딸, 세 번째는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를 두고 나고야로 전근을 가서 수시로 오가는 아들이 그것이다. 이들에게는 법적으로 제도화된 등급이 매겨져서 간병인 서비스를 받지만 그들이 24시간 그들을 돌볼 수도 없거니와 '더 많은 노인'을 돌본다는 명목 하에 간병서비스 시간을 1회에 60분에서 45분으로 줄이는 법이 통과되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할 수도 없다. 또한 실질적으로 따로 살고 있지만 딸의 집에서 할머니 집까지의 통근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동거'로 분류하는 법의 불합리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간호가 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토모코가 생각했던 가족과 자신의 집에서의 '행복한 자택 간호'는 없어지고 서비스를 받는 노인에게나 부양을 해야 하는 가족에게나 서로 상처를 주고 불편함이 끝까지 지속되는 '지옥 같은 자택 간호'가 펼쳐지게 된다.


자택간호를 받는 노인들은 '자택간호가 편하다', '사람은 제 집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자택간호에 대해 만족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얼굴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이러한 '지옥 같은 자택 간호'는 외적인 현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의 마음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노노간병 가정에서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간호하기도 벅찬데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다. 간병을 받는 할아버지는 제대로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집은 점점 어질러져 가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고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움직이지 못하는 할머니는 매일 생업과 동시에 자신을 돌보러 멀리서 오는 딸의 조급함과 짜증을 보고서 뭐라 할 수 없고 죄인과 같아진다.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는 사람도 좋고 성격도 긍정적이지만 자신이 한 어떤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먹고 또 할 때 비참함을 느낀다. 차라리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노인을 돌보는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를 낳아준 부모이고 나를 위해 고생했던 부모에 대해서 효도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간병을 하게 되면 너무나 힘든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자신의 생업을 온전히 하기에도 힘든데 간병이라는 짐까지 지게 된다면 그야말로 사람으로서 극한에 내몰리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극 중에서도 매일 먼 거리를 오가며 생업과 간병을 동시에 하던 딸은 급기야 할머니의 목을 조르게 된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바로 노인 대상 왕진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 히라바야시(히라이즈미 세이)이다. 


의사 히라바야시는 수많은 노인의 집에 왕진을 다니면서 목도한 여러가지 현상들을 보고 '가족을 지탱하지 못하는' 간병서비스를 안타까워 한다.

   히라바야시는 치매기 있는 할아버지의 아들이 나고야에서 도쿄까지 매번 간병을 하러 오가고 아버지를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려 할 때도 '자네까지 생업을 포기하면 가족이 공멸하게 되는 거야.'라고 하면서 말리기도 한다. 그는 가족의 짐이 돼버린 노인들을 보살피지만 가족들과 노인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둘 다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지 알고 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간병서비스가 보편화되면 되지만 정작 국가는 효율성이나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보여준다. 히라바야시는 노인들이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보내지 못하고 동시에 가족들이 파탄이 되는 이 현실에서 차라리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을까?'하는 칼럼도 쓰게 된다. 


언론은 연쇄살인사건 등의 선정적인 사건이 아니면 나머지 사회현상에는 관심이 없다.

 <마지막 거처>는 노인 간병의 현실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언론의 비정한 현실에도 비판을 하고 있다. 언론이 사회의 약자를 대변하거나 사회의 여러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정적인 사건이나 정치 사건 등의 권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 아키모토가 토모코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 현실을 보고 신문지상에 실어줄 것을 부탁하지만 토모코는 "신문사는 연쇄살인사건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고요!"라고 답을 한다. 토모코가 취재한 3명의 노인들이 며칠 간격으로, 또 한날에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히라바야시의 칼럼과 연결시켜서 살인사건이나 자살방조 사건으로 의심되자 그때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나선다고는 하지만 과연 자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만 기자들이 움직이는 현실과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세 명의 노인은 가족도 없는 곳에서 혼자 쓸쓸히 숨을 거둔다. 

 <마지막 거처>는 분명히 픽션이고 드라마이지만 현재 겪고 있는 간병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제대로 되지 않은 복지서비스와 법적 체계, 가족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 그리고 가정 붕괴. 이것은 화면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점점 나이 들어가는 우리의 부모들이 그 현실 속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길지 않은 시간 후에는 우리 역시 그 현실 속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일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노인 간병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비교적 노인 복지서비스가 잘되어 있다는 일본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빠르면서 복지와 법적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가족들의 노오력만 요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각한 일이 나중에 벌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리고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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