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리뷰
과거 신에게 고용되었던 솜씨 좋은 장인은 현대에 들어 모두 해고됐다. 편리하고 값싼 물건들로 인해 한 번 해고되었고, 도시로 나가 편리하고 값싼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해고되고 있다. 타의에 의해 해고된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현대 이전엔 솜씨 좋은 목수가 집을 지었고, 그들이 아니더라도 집 짓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마을에 하나쯤은 다 있었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혼자 집을 지을 수 없다. 기술이 있더라도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온갖 규제에 맞춰 집을 지어야 관청의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생산에 필요한 도구가 직장에서만 얻도록 사회 기반시설이 조직’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정지용의 시구처럼 집집이 술을 빚어 마셨던 시대 역시 지나버려 개인이 함부로 술을 빚어 팔지도 못하는 사회. 영화는 이렇게 현대성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무기력하고 쓸모없어지는 아버지(마일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시에 나가 돈을 벌어 마을에서 가게를 연 형은 끊임없이 아버지를 자극하며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에 처음 버스가 들어오던 날. 마일라의 부인이 축하를 하기 위해 애써 만든 꽃목걸이. 마일라는 버스를 타고 쉼 없이 도시로 나가 자신의 가족이 만든 물건을 팔기 위해 나선다. 처음엔 멀미하며 구토를 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그것은 다름 아닌 현대 문명이다.
지난 6~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은 모습들. 네팔의 농촌 마을을 보여준 이 영화를 통해 점점 붕괴하는 우리의 마을 공동체를 떠올리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내가 일하고 있는 면 역시 마찬가지다. 인구 1,700명 남짓의 마을은 대부분이 노인 인구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시골에 남아 있는 노인들. 하나 있는 초등학교는 폐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아이들이 줄어들고, 노인들로 가득한 마을들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얼마 전엔 홀로 사는 노인이 기르던 개에 물려 죽는 일도 일어났다.
아마 네팔의 3~40년 후의 모습이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면 더욱 서글퍼진다. 홀로 사는 노인들만 쓸쓸히 마을을 지키며 마을의 쇠락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그런 농촌의 모습을 누군가는 지켜야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그 안에서 아이를 키우는 소수의 사람 역시 사람이 크려면 큰 물로 나가야 한다며 아이들이 성장하기 시작하면 도시로 나간다. 우리 역시 그런 농촌의 모습을 쓸쓸히 지켜볼 뿐이다. ‘쓸모’ 없어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