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작품 리뷰
‘영화는 동시대적 사유의 은유’라는 바디우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현실을 영화는 영화만의 문법으로 드러내고, 그 문법이 창조해야 할 세계는 동시대라는 말일 것이다. <해야 할 일>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상화된 해고 위협이 어떻게 노동자들의 목줄을 잡고 흔드는지를 그린다. 특히 이 영화의 미덕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초라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는데 있다. 한 중견 조선사에서 벌어지는 구조조정을 책임진 인사팀 막내 준희의 시선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감독이 직접 겪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세밀하다. 결정해야 하는 사람과 그 결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사람. 결정해야 하는 사람 역시 기업의 대리인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게 준희가 ‘해야 할 일’이다.
구조조정이라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점점 피폐해지는 인사팀장. 자신의 직장동료에게 명예퇴직 신청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뭘 잘못”했냐며 소리치는 노동자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준희.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그 책임이 전부 노동자의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자극적이지도 않고 구호를 앞세우지도 않으며 잔잔하게 파고든다.
그렇다고 영화가 여기서 그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절망하며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비극적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건 그저 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로 구조조정이라는 행위가 합리화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건 노동자를 잘 부려 먹기 위해서고, 거기에 길드는 순간 우리는 이 괴물 같은 체제의 쉬운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렇게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우린 너무 많이 봐왔고, 그게 기업의 작동방식이라는데 대부분 사람이 쉽게 동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건 너무 익숙한 자포자기고 그 시스템에 저항할 힘도 사라져 버린 우리의 씁쓸한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선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 현장을 찾아 시위에 동참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화제가 됐다. 미국 현대사를 통틀어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지지 발언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부럽기도 했다. 자본주의가 더 발전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쩌면 그 모습이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그래서 준희가 학교 선배인 기자와 만나는 술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청계천 8가’. 그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살아남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 이 글은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