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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 Jul 23. 2023

희생, 그리고 추모마저 막는 사회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리뷰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메인 포스터

 ‘상실의 아픔 속 홀로 남겨진 이들을 위한 다정한 위로’라는 문구에 매료됐다.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 위로가 다정할까 생각을 했다.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더 망가져야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나라는 질문으로 혼란스러운 요즘, 어쩌면 나도 위로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비극을 맞이한 이들이 겪게 되는 아픔은 조용했고, 그걸 극복해 내는 과정 역시 잔잔했다. 

 

 남편을 떠나보낸 ‘도경’이 폴란드에서 맞이한 바르샤바 봉기 추념일 장면은 이 영화가 단순히 명지의 남편 도경 한 사람의 희생만을 그리고 있진 않음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위해 희생을 한 사람과 남겨진 사람. 영화는 무언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을 쫓는 대신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단짝 친구인 ‘지용’의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홀로 남겨진 ‘지용’의 누나 ‘지은’을 돕는 ‘해수’. 그리고 엄마를 일찍 여읜 ‘명지’에게 아들을 보내고도 끊임없이 반찬을 챙겨 보내주는 시어머니. 위로의 의미는 일상을 다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테고, 며느리의 폴란드 여행길에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돈봉투를 챙겨주는 시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 아닐까.


  언제부턴가 우린 누군가의 죽음에 무뎌지고 있고, 공감하는 능력 역시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비극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죽임을 당하는 이들보다 더 많은 유가족이 생기고, 슬픔에 빠지는 사람 역시 나날이 늘어만 간다. 


상실의 아픔 속 홀로 남겨진 이들을 위한 다정한 위로


  ‘명지’는 폴란드라는 도시에서 추모의 공간을 돌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다. 남편의 영정을 안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멍하니 있던 ‘명지’가 그제야 남편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김희정 감독은 왜 다른 공간도 아닌 ‘폴란드’라는 나라를 선택했을까? 폴란드에서 재회한 ‘명지’와 ‘도경’의 동창 ‘현석’은 폴란드라는 나라가 과거 독일과 소련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침략을 당한 역사를 들려주며, 우리나라와 닮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외세에 맞서 봉기했지만 도시 전체가 폐허가 돼버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그리고 맞이한 바르샤바 시민들 전체가 그들을 추모하는 8월 1일이라는 시간. 

 

 실은 누군가의 죽음은 그래서 ‘사회적 상실’이며, 그 사회적 상실을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의 마련은 그 상실을 이겨내기 위한 남겨진 이들의 의지다. 우린 과연 ‘사회적 상실’에 대해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사회적 죽음에 대해 ‘시체팔이’라는 말로 몰아세우며, 추모마저 막고 있지는 않은가? 추모 마저 막아 세우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 고통 속에서 자살한 초등학교 선생님과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 수색을 하다 죽은 해병대원과 안전시스템의 부재로 침수된 지하도에서 죽은 이들, 그리고 이태원과 세월호. 여전히 산재로 죽음을 당하는 노동자들. 이제 눈을 뜨고 그들을 제대로 애도하고 추모하자. 그게 우리들이 제대로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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